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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앞세우지 않은 ‘녹두꽃’, 만듦새는 빼어난데…

중앙일보 2019.07.01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드라마 ‘녹두꽃’. 주인공은 전봉준(최무성, 왼쪽부터 두 번째)이 아니라 그의 오른팔이자 천민 출신인 백이강(조정석, 오른쪽 세 번째)이다. [사진 SBS]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드라마 ‘녹두꽃’. 주인공은 전봉준(최무성, 왼쪽부터 두 번째)이 아니라 그의 오른팔이자 천민 출신인 백이강(조정석, 오른쪽 세 번째)이다. [사진 SBS]

“보시오, 새 세상이오.”
 

동학혁명 다룬 시대극 높은 평가
비극적 결말 탓인가, 시청률 저조

썩어빠진 세상을 바꾸려 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결연한 외침이 안방극장에선 크게 메아리치지 못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소재의 SBS 대하사극 ‘녹두꽃’ 얘기다. 드라마의 만듦새는 호평을 받는다. 100억원대 제작비를 들인 작품답게 동학군 봉기와 전투 장면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지고, 고증도 사실적이다. KBS 사극 ‘정도전’을 썼던 정현민 작가의 필력과 조정석·윤시윤·한예리·최무성 등의 연기도 빼어나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동학군이 승리한 황토현 전투를 그린 6회(5월 11일 방영)가 9.1%(닐슨코리아)로 정점을 찍은 뒤 종방을 2주 앞둔 현재 4~6%대에 머문다. TV화제성 부문(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서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녹두꽃’의 성적표는 왜 이리 초라한 걸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대 스포일러인 실제 역사가 시청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미와 재미가 충분한 드라마이지만, 실패한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만들어내는 우울한 정조가 시청 장벽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역시 “패배의 결말을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24부작의 너무나 긴 호흡으로 펼쳐놓다 보니 지루함을 느낀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버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혁명의 리더 전봉준이 아닌,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략이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다. 윤석진 드라마평론가(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동학혁명이 지닌 민중성을 부각하기 위해 민초들을 전면에 내세운 의도는 이해하지만, 영웅 서사가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드라마 현실에선 너무 앞서간 전략”이라고 말했다. 혁명가 전봉준(최무성)의 고뇌와 인간적 면모 등을 자세히 알고 싶은 대중의 욕구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해온 이방 백가(박혁권)의 배다른 두 아들이자 운명이 엇갈리는 동학군 별동대장 백이강(조정석)과 일본군 앞잡이 백이현(윤시윤), 민족의식에 눈뜨게 된 보부상 송자인(한예리) 등 격동의 시대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과 심리를 역사적 사실에 꿰어낸다.
 
시청률은 아쉽지만 의미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윤석진 평론가는 “반드시 재조명돼야 할 동학혁명을 소재로 했다는 것부터가 커다란 성취”라며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무능한 조선 조정, 일제의 치밀한 조선침탈 전략 등 당시 시대상이 세밀히 묘사된 점도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드라마 속 125년 전 상황은 지금의 문제들과 공명하는 부분도 많다. 강혜경 숙명여대 교수(역사문화학과)는 “구한말 동학 농민들이 외쳤던 사회 정의나 경제 정의가 과연 지금은 얼마나 개선됐느냐는 묵직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평했다.
 
드라마는 우금치 전투라는 비극을 향해 내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지휘를 받는 조선 관군의 현대적 전술과 신식 기관총 총구 앞에 동학군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져갔던 최후의 전투다. 이후 전봉준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일제의 한반도 침탈이 가속화된 건 익히 알려진 역사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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