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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고층 CCTV서 찍힌 '점' 하나로도 쓰레기 투기 잡는다

중앙일보 2019.06.30 11:16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음식물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붉은 원안). 영상분석을 통해 위치가 특정됐다. [경찰청]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음식물쓰레기가 담긴 비닐봉지(붉은 원안). 영상분석을 통해 위치가 특정됐다. [경찰청]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아파트단지 내 고층에서 갑자기 검은색 물체가 밑으로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단지 안을 거닐던 주민이 이 물체에 맞아 다치기까지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살펴보니 누군가 축축이 젖은 음식물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넣은 뒤 몰래 버린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층에서 떨어졌는지 확인이 어려웠다.
 
이 아파트 고층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는 광각렌즈다. 광각렌즈는 원근감이 과장된다. CCTV가 비추는 화면 속 단지 바깥쪽이 둥그스름하게 촬영되는 왜곡현상이 일어난다. 사건 관할 경찰서는 즉시 경찰청 법과학분석계로 영상분석을 의뢰했다. 
 
현장 실험까지 더해져 투척위치 특정 
분석에 나선 정서윤·최영호 요원은 어느 시점에서 ‘작은 점’이 하나 찍히는 것을 포착했다. 투척물이었다. 이를 토대로 대략적인 위치 값을 얻었다. 이후 현장에서 반복된 실험을 통해 오차를 줄여나갔다. 마침내 투기지점이 ‘13 XX 호 주방 쪽 창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경찰이 찾아가자 입주민 A씨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각종 범죄현장에서 영상분석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08개 통합관제센터와 연결한 CCTV는 95만4200여대(2017년 기준)에 이른다. 민간이 설치한 CCTV까지 더하면 1300만대가 넘는다고 한다. 차량용 블랙박스는 포함하지도 않은 수치다. 이처럼 곳곳에 자리한 ‘눈’은 사건의 결정적 증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실제 CCTV를 활용한 범인검거 건수는 4년 사이 15배 이상 늘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행자의 무단횡단 여부를 가리는 것도 영상분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횡단보도 밖인 A위치에서 사고순간에는 횡단보도쪽(C위치)으로 이동했다. [경찰청]

교통사고 현장에서 보행자의 무단횡단 여부를 가리는 것도 영상분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횡단보도 밖인 A위치에서 사고순간에는 횡단보도쪽(C위치)으로 이동했다. [경찰청]

 
횡단보도 경계서 무단횡단 여부도 가려내  
올 3월 경남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가 차량에 치인 사고가 발생했다. 보행자는 횡단보도를 걸었다고 주장했지만, 가해 차량 운전자는 사고가 횡단보도 밖에서 일어났다고 맞섰다. 무단횡단 여부에 따라 서로의 과실책임이 달라질 수 있다. 법과학분석계로 영상분석이 의뢰됐다.
 
법과학분석계는 사고현장 주변에 설치된 CCTV 영상 외에 발품을 팔아 사고 순간 주차돼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까지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 특수프로그램을 통해 보행자의 동선을 표시할 수 있었다. 최종 분석결과 보행자가 도로를 건널 때 처음에는 횡단보도 바깥쪽에서 시작해 점차 횡단보도 안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 경기도 안산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수 씨 [연합뉴스]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김성수 씨 [연합뉴스]

 
흐릿한 도주차량 번호판도 딱 걸린다 
이밖에 지난해 서울 강서구 PC방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김성수(30)가 어느 시점에서 흉기를 휴대했는지, 흐릿한 범인의 도주차량 번호판 숫자가 정확히 몇 번인지, 극단적 살인예고 현장이 합성인지 여부 등도 영상분석으로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중 차량의 경우 속도가 빠르다 보니 대게 CCTV에 번호판이 정확히 찍히지 못한다. 잔상이 남는데 이를 모션 블러(motion blur) 현상이라고 한다. 흐릿한 번호판 숫자의 윤곽을 잡아내기 위해 끈질긴 보정작업이 요구된다. 정서윤 분석요원은 “사진 파일은 저마다의 미묘한 압축률의 차이가 난다”며 “합성 사진의 경우 각 이미지 간의 압축률의 차이로 판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강력사건 현장서 광역 영상분석팀 운영 
경찰청은 주요 강력사건, 대형 재난사건 등 현장에서 정밀한 영상·현장 분석의 필요성이 커지자 현재 ‘광역 영상분석 TF팀’을 운영 중이다. 영상분석뿐만 아니라 훼손되지 않은 현장의 모습을 특수프로그램 등으로 구현해 수사 단서도 찾는다.
 
경찰청 오훈 법과학분석계장은 “영상분석을 통해 주요 사건의 수사 진행과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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