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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향해 한국만의 길을 뚫는 극지 전사들

중앙일보 2019.06.30 05:00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2020년을 목표로 독자적인 남극 내륙진출로 코리안루트를 탐사하고 있다. 코리안루트는 장보고과학기지에서 남극점까지로 직선거리는 1700km, 총 육상주행 거리는 3000km에 이른다. 남극의 심부빙하 등 과학적 가치가 높은 대상을 연구하려면 내륙 깊숙이 들어가야 한다. 후발주자들은 대부분 장보고과학기지처럼 남극대륙의 해안에 기지를 두고 있다. 한국은 코리안루트를 개척한 뒤 세계 여섯 번째 내륙기지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K-루트 사업단'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한 달여의 탐사활동을 통해 총 720km 구간에 걸쳐 안전루트를 확보했다. 5개 크레바스 위험구간을 안전하게 통과해 내륙으로 진출할 길을 확보하고, 90km와 232km 지점에는 장비와 유류를 보관할 수 있는 전략거점을 확보했다. 또한 탐사구간 내에 빙저호 시추 후보지에 대한 항공레이더 탐사도 완료했다. 올해는 기동성 확보를 위해 개조한 싼타페 차량을 동원하는 등 장비와 인원을 늘려 약 1400km 지점의 심부빙하 시추 후보지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⑪ K-루트 사업단
 
8월 초, 극야(極夜)의 겨울이 끝나고, 날이 밝아지면서 월동대의 외부 활동이 시작되었다. 하계 인력과 물자 수송을 위해 해빙(海氷)의 두께도 검사하며 해빙활주로를 만들었다. 드디어 10월 21일 비행기로 12명의 하계 연구원들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모두 남극점을 향해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는 K-루트 사업단의 연구원들이었다. 이종익 단장님과 크게 포옹을 하면서 반갑게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 사업단은 장보고기지를 전초 기지로 삼고 남극 내륙 진출을 위한 코리안 루트 개척과 빙저호 심부 빙하 연구를 위한 시추 장비 운영과 개발, 그리고 관련 다학제 융복합 연구를 한다. 극지연구소의 남극 연구를 위한 장기 인프라 구축의 최종 방점은 남극내륙기지 건설이다. 만약 세종과 장보고에 이어 세 번째 우리나라 내륙기지가 건설된다면, 남극 연안에 위치한 장보고기지는 내륙기지에 물자와 인력ㆍ인프라를 수송하는 전초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남극내륙기지의 하늘에는 구름이 거의 없어 우주천문 연구에 매우 적합하다. 내륙에 분포하고 있는 빙저호(subglacial lake) 연구와 두꺼운 얼음을 뚫어 얻어진 빙하 코어에서 기후 변화 연구도 할 수 있다.  
 
 
남극 대륙은 다른 대륙과 비교해서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도로다. 남극 대륙의 거점은 모두 기지인데, 영어로 ‘station’ 또는 ‘base’를 쓰는 이유는 기지들이 가장 하위에 위치한 기반 시설을 뜻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극 내륙에 상주기지를 보유한 나라는 미국ㆍ러시아ㆍ프랑스ㆍ이탈리아 4개국이다. 일본과 중국은 임시 기지를 운영 중이다. 이 나라들도 자국의 연안 기지를 경유해 소형비행기로 인력과 소형 물자가 내륙 기지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그들도 육로로 들어가는 길이 있을까. 이 나라들은 이미 내륙기지로 들어가는 루트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대규모 물자 수송을 하였다. 
k루트 사업단

k루트 사업단

 
남극내륙기지 건설과 시추 사업은 대규모 물자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기에 장보고기지에서 내륙기지 후보지까지 가는 루트 개척이 필수이다. 추위와 활강풍을 맞서야 하는 극한 환경과 크레바스, 울통불퉁하거나 칼날 같은 얼음들을 뚫고 나가려면, 특정 중장비들이 필요하다. GPR 탐사 장비를 장착한 선두의 설상차는 루트 개척의 가장 큰 장애인 크레바스를 탐지한다. 안전대원와 의사, 중장비 기술원 등이 생활하는 모듈형 숙소 컨테이너와 유류탱크를 끌고 가는 트랙터도 주요 수단이다. 작년에 사업단은 장보고기지에서 총 720km 구간에 걸쳐 안전한 루트를 확보했으며 90km와 232km에 거점 포인트를 정해 일부 장비와 유류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전략 거점들은 내륙 깊숙한 곳까지 육로로 갈 경우 사막과 같은 남극 대륙의 오아시스와 같다.  
 
 
남극 내륙은 두꺼운 얼음층과 빙저호를 탐사할 수 있는 영역이다. 3000m급 심부빙하 시추가 가능해지고, 루트 구간을 따라 육상 지구물리탐사와 항공 레이더 탐사로 심부빙하와 빙저호 후보지가 탐색된다. 빙저호의 형성은 오래전 남극의 얼음 확장부터 시작된다. 수천 만 년 전 남극은 고위도에 있었기 때문에 얼음이 없는 따뜻한 대륙이었다. 남극대륙이 점차 남극점으로 이동하면서 눈이 쌓여 지금과 같은 두꺼운 얼음층으로 덮였다. 남극 대륙의 해수면 아래 깊은 분지는 두꺼운 얼음으로 인해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 년 전의 퇴적물이 그대로 갇혔다. 빙저호는 지구 내부의 열과 빙하 하중에 따른 열과 압력, 그리고 빙하의 움직임에 의한 마찰열 등으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남극대륙을 헤쳐가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 'K-루트 사업단'이 남극대륙을 헤쳐가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1977년 러시아의 심부시추 장소에서 빙저호(보스토크)가 발견되었고 이후 다양한 지구물리탐사를 통해 남극 대륙에 약 400개의 빙저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음만 확보하는 빙하 시추와 빙저호 후보지 시추는 시추 방식부터 다르다. 심부빙하 시추는 드릴링 방식이지만, 빙저호의 퇴적물 시추는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열수 방식이다. 불순물 제거와 멸균으로 시추에 따른 오염이 전혀 없다. 또한 빙저호 시추의 모든 현장 시설은 멸균과 노출이 통제된 상태에서 연구하기 때문에 새로운 박테리아의 노출로 인한 위험성을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보스토크 빙저호 시추 자체가 오염되어있어 과학자들은 연구 결과를 믿지 못하고 있다. 2013년 1월에 미국 연구팀이 휠란스 빙저호에서 오염 없이 물과 퇴적물을 채취하여 그 결과 담수 1mm당 약 1000마리의 박테리아가 존재한다고 보고하였다. 빙저호는 고대 타임캡슐이나 마찬가지이니 당시 광물질이나 유기물ㆍ미생물 등의 신비가 밝혀질 수 있다. 생명체 진화는 물론 기후변화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이다. 나아가 극저온에 빛도 없는 환경에서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얼음으로 덮인 태양계의 다른 천체에 생명체 존재를 가늠할 수 있다. 
 
⑫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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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최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