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3000㎞ 걸으며 만난 건 결국 나" IT 성공신화 버리고 걷기 나선 박재희

중앙일보 2019.06.29 11:00
 
 
 
바닥에 펼쳐진 것은 도보 여행가 박재희 씨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물건들이다. 차곡차곡 넣으면 하나의 배낭에 빼곡하게 찬다.

바닥에 펼쳐진 것은 도보 여행가 박재희 씨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물건들이다. 차곡차곡 넣으면 하나의 배낭에 빼곡하게 찬다.

 
2004년에 박재희라는 기업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그는 한국 EMC의 첫 여성 임원이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EMC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업마케팅 총괄 상무가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소식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인컴브로더 주식회사 대표,
주식회사 모모인 대표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액티피오 아시아·태평양지역 16개국 마케팅 총괄대표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배낭을 맨 박재희 씨, 박 이사보다 박 작가로 불러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다.

배낭을 맨 박재희 씨, 박 이사보다 박 작가로 불러주는 게 더 좋다고 했다.

 
15년이 지나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분명 15년 전에 만났으나,
다시 본 그는 예전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인이 아니라 여행 작가로서 만났습니다.
그 업계의 신화였던 사람이,
그것을 다 내려놓고,
여행 작가가 되어 나타난 겁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남부럽지 않던 기업인이었는데 왜 그만둔 겁니까?”
“2014년 12월 그만두었습니다.
만 28년 2개월 했습니다.
친구가 갑자기 하늘로 갔습니다.
내게 언제나 위로가 되었던 친구입니다.
과로사였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만둔 겁니다.”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여섯 달 동안 고민했습니다.
생각보다 내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 만이라도 내게 안식년을 주자는 생각으로 관둔 겁니다.”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요?”
“남편은 당시 내가 이렇게까지 놀 줄 몰랐으니 반대가 없었고요.  
게다가 내가 늘 세 걸음 이상이면 차를 타던 사람이니 걷기는 뭘 걷겠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런 나를 잘 아는 동료들이 반대를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답을 들으며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04년 당시 그와 식사 약속을 한 적 있습니다.
주차장이 있는지를 먼저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도보 여행 작가가 된 겁니다.
더군다나 쉽지 않은 도보여행을 
우리 나이 쉰을 넘겨 시작한 터니  
좀처럼 와 닿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중간 퇴로가 없는 산길 60km다. 글로벌 회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16개국 마케팅 총괄대표 자리를 버리고 여행자로 살게 된 첫발이 예서 비롯되었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 중간 퇴로가 없는 산길 60km다. 글로벌 회사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16개국 마케팅 총괄대표 자리를 버리고 여행자로 살게 된 첫발이 예서 비롯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2015년 처음 걸은 게 어디입니까?”
“뉴질랜드 밀포드 트랙입니다.
'인생 리셋 원정대’라며 모두 일곱 명의 친구들이 함께 갔습니다.”
 
“평상시 안 걷다가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산을 많이 다니는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겠지만,
걷지도 않던 제가 배낭을 지고,
음식까지 짊어지고,
쓰레기도 되가져오며,
산길 60㎞를 걸었습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루에 15㎞ 못 걷겠어’
이런 맘으로 간 겁니다.
가서 해보니 딱 죽을 정도였습니다.”
 
 
걷다 보면 걷는 게 명상임을 알 게 된다. 생각이 비워지고 내가 나를 온전히 만나는 순간이 온다.

걷다 보면 걷는 게 명상임을 알 게 된다. 생각이 비워지고 내가 나를 온전히 만나는 순간이 온다.

 
그는 밀포드를 다녀온 뒤 그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숲에서 다시 시작하다』(꿈의지도)를 출간했다. 
 
“그렇게 힘들었어도 좋았다고 책에 밝혔던데요.”
“밝은 대낮에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 풍경을 태어나서 처음 겪었죠.
모든 게 완전자연이었습니다.
걷다 보니 걷는 게 명상이었습니다.
생각이 비워지면서 명상체험이 저절로 되는 겁니다.
밀포드 트랙 끝나고 케플러 트랙을 걷는데,
그때 비가 온 거예요.
비가 오면 있던 약속도 취소할 판인데,
여기는 어쩔 수 없이 가야잖아요.
그런데 내가 나를 온전히 만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런 경험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스페인의 메세타, 나흘 동안 보이는 건 밀밭과 지평선뿐이다. 걷다 힘에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 만난 화살표, 위로와 격려가 된다.

스페인의 메세타, 나흘 동안 보이는 건 밀밭과 지평선뿐이다. 걷다 힘에겨워 주저앉고 싶을 때 만난 화살표, 위로와 격려가 된다.

 
“우문입니다만, 회사를 관둘 때 생활 여유가 있었습니까? 먹고 살 만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습니까?” 
“사실 꽤 큰 보수를 받는 것,  
그것을 포기하기 어려워서 그만두는 데 오래 걸렸습니다.
매달 통장에 찍힌 걸 보면서 좀 더 해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로서 나를 증명한다며 회사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증명하고 하고 싶은 건 다 했는데,
계속 다니는 이유가 결국 돈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제일 소중한 사람인데,
그럼 내가 나한테 월급을 주듯이,
내가 나한테 시간을 못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관둘 수 있었습니다.”
 
  
3보 이상 승차했던 그가 두 발로 걸으며 일군 건 새 삶이다.

3보 이상 승차했던 그가 두 발로 걸으며 일군 건 새 삶이다.

 
“여성 최초의 이사, 초고속 이사 승진,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마케팅 대표, 이런 것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한 번도 소속이 없어 본 적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직장 다녔고,
그랬으니 항상 어디의 누구였지
그냥 박재희인 적이 없었습니다.
완벽히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고 결심했는데도,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젠 어디의 누가 아니라 그냥 박재희로 살아보자,
오롯이 박재희로 사는 게 어떤 건지 1년간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그만뒀습니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탕 길, 돌아서 갈 길은 없다. 고난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다. 결국 지나가야할 길이니 그저 한 발을 떼는 것뿐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탕 길, 돌아서 갈 길은 없다. 고난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다. 결국 지나가야할 길이니 그저 한 발을 떼는 것뿐이다.

 
그렇게 일 년만 안식년을 당신 자신에게 주고자 했던 그가
그다음 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왔던데 얼마 동안 얼마나 걸은 건가요?” 
“40일 동안 900㎞ 정도 걸었습니다. 딴 사람에 비하면 느리게 걸은 겁니다.
제가 워낙 느리고 잘 못 걷는 사람이잖아요.”
 
 
“하루에 20㎞ 내외인데 발이 많이 아팠을 것 같은데요” 
“너무 아프죠.
첫날 죽을 뻔했습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제일 험한 일정이었는데,
우박에,  
비에,
바람에,
눈에 온갖 풍상을 다 겪었습니다.
사실 제일 힘든 게 매일 걷는다는 겁니다.
오늘 힘들어도 낼 좀 쉬면 괜찮을 텐데,
매일 걸어야 하는 줄 알고 무식하게 걸었습니다.
온 뼈가 다 아파요.
내 뼈가 어디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아픕니다.
약을 먹으며 바르며 걷습니다.
기본적으로 무게가 있는 상태로 걸어가니 소진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다음 날 또 걷습니다.
이른바 ‘단무지’입니다.
단순, 무식, 지랄 이요.”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눈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존 러스킨의 시다. 늘 비와 함께했다. 그 덕에 늘 녹색 비옷 차림이다. 이로 인해 얻은 닉네임이 '배추벌레'다. 서로 다른 좋은 날씨, 비 덕이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햇빛은 달콤하고, 비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눈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세상에 나쁜 날씨란 없다. 서로 다른 좋은 날씨만 있을 뿐이다.' 존 러스킨의 시다. 늘 비와 함께했다. 그 덕에 늘 녹색 비옷 차림이다. 이로 인해 얻은 닉네임이 '배추벌레'다. 서로 다른 좋은 날씨, 비 덕이다.

 
이 말을 하며 그가 한참 웃었습니다.
웃고 난 후 또 말을 이었습니다.
군대 다녀온 사람이 군대 이야기하듯,
산티아고를 다녀온 그 고통이 어느새 무용담이 된 듯했습니다.
 
 
부르고스 Burgos 를 향해 걷던 날, 폭포처럼 퍼붓던 비가 멈추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나타났다. 우리 삶도 이러할 터다.

부르고스 Burgos 를 향해 걷던 날, 폭포처럼 퍼붓던 비가 멈추자 거짓말처럼 무지개가 나타났다. 우리 삶도 이러할 터다.

 
“이게 인생 같은 겁니다.
날씨도 내 맘대로 안 되잖습니까.
산티아고에서 하루도 비가 안 온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내 사진이 항상 비옷 복장입니다.
내 친구들이 녹색 애벌레 같다며 ‘배추벌레’ 샷이라고 했습니다.
그 바람에 ‘배추벌레’가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옷도 안 마르지,
몸은 아프지,
비는 또 오지,
그런데도 또 걷게 되는 걸 보면  
인생과 다름없는 거죠.”
 
 
순례길 숙소, 성당, 쉼터에서 그 길을 지났다는 증명으로 순례자의 여권에 하나씩 스탬프를 찍어준다. 900km 프랑스 루트와 800km 포르투갈 루트를 걸은 증명으로 두 여권 양면에 스탬프가 빼곡하다.

순례길 숙소, 성당, 쉼터에서 그 길을 지났다는 증명으로 순례자의 여권에 하나씩 스탬프를 찍어준다. 900km 프랑스 루트와 800km 포르투갈 루트를 걸은 증명으로 두 여권 양면에 스탬프가 빼곡하다.

 
“그렇게 아프면 그만두면 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게요.
길에 약 탔나 봅니다.
처음 걸을 때,
산이 아니라서 좀 편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막 울었어요.
그때 울고 있는 저를 보고  
어느 가톨릭 수사가 말했습니다.
‘재희야, 여기는 3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육체적 단계,  
그다음에는 정신적 단계,
마지막엔 영적인 단계가 있다.
지금은 네가 육체적 단계에 있어서 아픈 게다.
이게 지나면 하나도 안 아프다.
부르고스까지는 보름인데 거기까지만 가면 안 아프게 된다.’
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죠.
빨리 걸어서 부르고스까지 가야겠다며
매일 매일 엄청 걸었습니다.
가서야 알았습니다.
아픔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란 걸요.
그렇게 2016년 4월,
매일 비를 맞고,
약 먹고 바르며,
매일 배추벌레가 되어,
꿈틀꿈틀 40일 동안 걸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긴 두 번째 발가락 발톱이 빠지고 나고 쪼개지고 갈라지기도 했다. 충격 때문에 뿌리가 상해서 생긴 증상이다. 의사가 영양제를 바르라고 권유했지만, 페디큐어를 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둔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긴 두 번째 발가락 발톱이 빠지고 나고 쪼개지고 갈라지기도 했다. 충격 때문에 뿌리가 상해서 생긴 증상이다. 의사가 영양제를 바르라고 권유했지만, 페디큐어를 할 필요도 없으니 그냥 둔다고 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겪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표현들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
그는 그렇게 담담하게 경험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뭘 찾았습니까?” 
“처음 갈 때는 뭔가 답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찾을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편해졌습니다.
사실 나를 만나게 된 건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무도 못 보고 혼자 걷잖아요.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가 되니 내가 나를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별의별 게 다 떠오릅니다.
중2 때 아빠에게 했던 말,
그런 상처가 떠올라 난데없이 엄청 우는 겁니다.
눈물, 콧물 대여섯 시간 다 빼며 걷고 나서,  
눈이 퉁퉁 부은 데도 기분이 엄청 좋은 겁니다.
아마도 내가 나를 용서해준 거 같았습니다.
착한 척하지만 착하지 않고,
너그러운 줄 알았지만, 완전 밴댕이 속이었고,  
욕심 다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사실 그런 거 아니었고,
그러면서 내가 나를 만나는 겁니다.”
 
걷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는 것이다. 끝 간데없는 홀로 길에서 함께한 그림자조차 위로가 된다.

걷는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나를 만나, 나와 함께 걷는 것이다. 끝 간데없는 홀로 길에서 함께한 그림자조차 위로가 된다.

 
여기를 다녀온 후 그가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디스커버리미디어) 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각오했던 것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다. 진통제를 먹지 않고 잠든 날이 드물었다. 그런데도 나는 걷고 있었다. 혼자 갔으나 언제부턴가 나는 함께 걷고 있었다. 내 안의 나와 같이 걸었고, 내 옆의 순례자와 함께 걸었다. 아직도 길은 문득 다시 살아나 그리움에 사무치게 한다. 지금도 까미노가 그립다.’
 
  
그의 배낭에서 나온 라면 하나, 도보 여행 끝낸 후 목적지에서 먹을 하나의 라면을 보며 긴 시간 고통을 견뎌낸다고 했다.

그의 배낭에서 나온 라면 하나, 도보 여행 끝낸 후 목적지에서 먹을 하나의 라면을 보며 긴 시간 고통을 견뎌낸다고 했다.

 
2018년 이 책이 나오던 날,
그는 다시 산티아고로 떠났습니다.
포르투갈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또 걸었습니다.
 
다녀와서는 제주 올레길을 걷고,
일본 시코쿠 길도 총 1200km 중에
600㎞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가서 띄엄띄엄 걸은 게 600㎞였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없어지지 않을 도보여행, 그렇다면 녹색 비옷의 '배추벌레' 모습 또한 없어지지 않을 터다.

그의 인생에서 없어지지 않을 도보여행, 그렇다면 녹색 비옷의 '배추벌레' 모습 또한 없어지지 않을 터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앞으로도 쭉 걷기만 할 겁니까?” 
“도보여행하는 건 내 인생에서 없어지지 않을 거 같습니다.
다만 운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그 운을 돌려주는 시간을 가져야 할 거 같습니다.
이를테면 보육원을 갓 나온 젊은 친구들이나, 삶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최근 청소년 상담심리 코스를 등록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에 셀프 매니저 리더십(self management leadership) 교육 과정이 있습니다.
그게 원래는 CEO를 위한 과정인데,  
그 교육을 다섯번 이상 받았습니다.
받으면서도 CEO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다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뭔가 전환기를 맞은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불행했던 이유가 내가 나에게서 떨어져 있어서 그랬으니,
그런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맨 처음 길 한가운데에 돌을 놓아, 길을 갈 누군가에게 돌려받지도 못할 인사를 건넨 건 누굴까? 도보여행가 박재희, 그가 두발로 새 삶을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맨 처음 길 한가운데에 돌을 놓아, 길을 갈 누군가에게 돌려받지도 못할 인사를 건넨 건 누굴까? 도보여행가 박재희, 그가 두발로 새 삶을 걷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도보 여행가로 3000㎞를 걸었다고 했습니다.
수십 년간 도보여행한 사람들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거리라 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길,
그는 걸으며 자신을 만나고,
자신과 함께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발로 새 삶을 써 내려 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길에서,
그는 두발로 다시 쓸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글·동영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입니다
기자 정보
권혁재 권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