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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 미술] 아스거 욘과 ‘다른 사회’를 향한 실험

중앙선데이 2019.06.29 00:21 642호 31면 지면보기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예술로 사회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이 존재하던 시기, 북유럽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도 했던 아스거 욘(1914~1973)의 존재는 낯설지만 특별하다. 회화와 판화, 도자와 직물에 이르기까지 그가 행한 다양한 실험들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이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3의 사회형태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대안적 언어 - 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우리는 철저히 자본화된 사회에 전하는 작가의 뜨거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덴마크의 유틀란트에서 태어난 욘은 십대에 공산당원이 되었으며, 1940년 나치의 점령을 경험한다. 나치는 스칸디나비아의 전통을 하위문화로 폄훼했으나, 욘에게서 북유럽 문화란 ‘이미지’를 기반으로 ‘행동’지향적 특성을 갖추고 있어, 성경과 ‘문자’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후 독일에 산업과 예술의 협업체로서 울름(Ulm) 조형대학이 세워지고, 바우하우스의 공산주의적 성향과 결별한다는 조건으로 미국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자, 이에 반발한 욘은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를 조직했다. 이는 정치적 힘을 발휘하기 위한 국제적 조직이자 자유롭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네트워크였다. 전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투박한 도자기들과 화려한 태피스트리는 이 시기 제작된 것으로, 생산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기계생산품과 달리 작가의 노동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예품들이다.
 
아스거 욘, ‘68학생운동 지지 포스터’, 석판화, 1968, 플루이트 아카이브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스거 욘, ‘68학생운동 지지 포스터’, 석판화, 1968, 플루이트 아카이브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욘의 예술적 이상은 1957년 프랑스의 기 드보르와 조직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들은 ‘원자력과 전기와 자동화로 인해 인간의 욕구가 쉽고 저렴하고 풍족하게 제공되는 산업사회’에 도달했음을 선언했다. 합리성을 기반으로 고안된 현대도시를, 단절되고 추상화된 공간의 집합체로 간주하고, 이 도시 공간을 무계획적이고 우발적으로 떠돌아다니는 ‘표류’라는 행위를 통해 장소성의 회복을 실험했다.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열망은 욘이 스웨덴의 농장에 건립한 자급자족의 예술가촌, ‘상황주의자 바우하우스’를 통해 표출됐다.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나흘간 일한 후 자유롭게 예술실험을 행했으며, 노동의 소외를 막기 위해 기계가 아닌 육체노동이 권장됐다. 전시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6각형의 대형 설치작품 ‘3면축구’다. 작가는 양극화된 냉전체제를 축구경기에 비유하면서, 세 개의 팀이 세 개의 골문을 향해 가장 적은 골을 기록하면 우승을 하는, 새로운 ‘방어적’ 축구를 제시한다. 제3세력은 양대 체계의 ‘공격적’ 충돌을 ‘수비적’으로 전환할 것이며, 이러한 역할을 인간사회에서 예술이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작품을 통해 드러난 작가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무한경쟁 속에 내던져 진 채, 자본이 생산해 낸 이미지에 열광하고, 자본이 매개한 수동적 소통방식에 익숙해져 삶의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스거 욘이 예측했던 그 모습인 것이다. 예술이 자본주의의 파괴적 속성을 직시하고 제3의 대안 찾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아스거 욘은 이같이 드러내고 있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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