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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약 권하는 사회

중앙선데이 2019.06.29 00:21 642호 31면 지면보기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의 차이를 경험해보세요.” 유명 종합비타민 제품 광고에 나오는 이 문구는 프로야구팬 사이에선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스테로이드 등 금지 약물 복용 이력이 있는 선수가 평소보다 뛰어난 타격감을 보이는 날 조롱하기 위해 주로 쓴다. 이런 선수가 치는 홈런은 ‘약런(약+홈런)’으로 불린다. 금지 약물 선수를 향한 팬들의 시선이 이렇게 싸늘한 건 불법 약물 복용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징계가 미미해서다. 고작 10~30경기 출장정지를 당했다. 연간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이 정도 징계는 징계라 부르기도 뭣하다. 수억원대의 고액 연봉을 받거나, 리그 최고 선수에게 주는 MVP나 국가대표팀의 코치라는 영예를 거머쥐는 데도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 야구계 내부에선 “반성했으면 됐다”며 감싼다. 이쯤 되면 약을 안 먹는 선수가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약 한 선수’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은 나쁜 시그널을 던진다.
 
선수들이 주로 빠지는 금지 약물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다. 근육을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키우고, 근력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하고 체력을 회복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이렇게 효과가 뛰어난데도 금지 약물이 된 건 그 부작용이 심각해서다. 우울증·불임을 부르고,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유발해 돌연사에 이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부작용은 스포츠의 생명인 정당한 경쟁을 무력화시킨다는 점이다.
 
최근 전직 프로야구 선수가 운영하는 유소년 야구교실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스테로이드를 불법 투약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돼 식약처가 수사에 나섰다. 일부 선수들에게서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식약처에 비슷한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 5년간 도핑 검사에서 적발된 유소년 선수는 25명이다. ‘안 걸리면 좋고, 걸려도 그만’이라는 독버섯이 프로선수뿐 아니라 어린 선수들에게까지 퍼졌다니 참담하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건 만루홈런이나 완봉승만은 아니다. 비선수 출신의 신인이 프로 무대에 서거나,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육성 선수가 4번 타자로 성장하는 기적이 있기에 사람들은 스포츠에 열광한다. 능력과 노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싶어서다. 인생의 축소판 같은 야구 경기마저 부정행위로 얼룩지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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