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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미 욕망 알고 다리 놓아준 일곱 형제, 별이 되다

중앙일보 2019.06.28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36)
2018년 1월 31일 슈퍼문·블루문·개기월식이 함께 일어난 '트리플 우주쇼'의 모습. 달과 별이 보여주는 특별한 모습은 우리가 숨 가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중앙포토]

2018년 1월 31일 슈퍼문·블루문·개기월식이 함께 일어난 '트리플 우주쇼'의 모습. 달과 별이 보여주는 특별한 모습은 우리가 숨 가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준다. [중앙포토]

 
정신없이 땅만 보고 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아란 하늘과 하이얀 구름이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때로는 블루문, 레드문이니 유성우 등 신기한 천문 현상이 예고되면 일부러 시간 맞추어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물론 한 손엔 스마트폰을 준비한 채. 그런 날엔 SNS가 덩달아 바쁘다. SNS 덕분에 하늘을 올려다보고 살게 된 게 다행이랄까. ‘찍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하늘을 ‘보겠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하늘, 구름, 달 덕에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할 수 있는데, 별을 찍겠다는 생각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 않나 싶다. 하늘이나 구름은 변화무쌍하고 한창 활동하는 시간에 수시로 볼 수 있다. 반면 별은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고 역동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피사체는 아닌 것 같다.
 
옛날에 별은 방향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길을 잃었을 땐 북극성을 찾으라는 지침이 있었고, 동방박사는 길을 잃었을 땐 북극성을 찾으라는 지침을 따라 예수를 찾아갔다.
 
최근에는 하늘, 구름, 달이 찍기 좋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동안 별은 별똥별 정도나 떨어져야 관심을 끌까. 뭔가 소외된 느낌이다. 그래서 요새 우리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 옛이야기에서도 별과 관련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숱하게 보아 온 별자리 이야기가 왜 우리에겐 없을까 궁금해진다.
 
그나마 발견되는 것이 북두칠성과 관련된 것이다. 무속, 불교, 도교의 습합으로 형성된 칠성 신앙의 덕이다. 농경사회 전통 속에서 북두칠성은 하늘을 상징하고 천체 기상을 관장하는 신으로 생각됐다.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인간의 명과 복을 관장하는 것으로 믿은 것이다.
 
북두칠성 관련된 이야기 ‘효불효교’
메디치 저택 기도실에 걸린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 행렬' 그림. 별은 서양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는 예수를 찾아 떠난 동방박사가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만 해도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쌍둥이자리 등 다양한 별자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네 옛이야기에서는 별자리 이야기가 많지 않다. [사진제공=문학동네]

메디치 저택 기도실에 걸린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박사 행렬' 그림. 별은 서양 이야기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는 예수를 찾아 떠난 동방박사가 길을 잃었을 때 북극성을 보라는 지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만 해도 북두칠성, 오리온자리, 쌍둥이자리 등 다양한 별자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네 옛이야기에서는 별자리 이야기가 많지 않다. [사진제공=문학동네]

 
가장 흔한 북두칠성 관련 이야기로는 ‘효불효교(孝不孝橋)’라고 알려진 것이 있다. 한 홀어머니가 일곱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이 홀어머니가 밤마다 이웃 영감을 만나러 가느라 맨발로 개울을 건넌다는 것을 알게 된 아들들이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놓아준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리를 '칠형제 다리' 혹은 '칠성교'라 일컫기도 한다. 일곱 아들이 물속에 엎드려 스스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도 있다.
 
밤마다 징검다리 노릇 하느라 지쳤던 넷째가 “좋은 일도 아닌데 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며 불평하자, 큰아들이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해드리는 것이 효도”라며 달랬다고 한다. 나중에 이 일곱 아들이 북두칠성이 되었는데, 네 번째 별만 유독 작고 흐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일곱 아들의 마음은 ‘효’라고 할 것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서는 ‘불효’라고 할 수 있다는 시각이 효불효교라는 이름의 배경이 되었다.
 
예전 시대라고 해서 무작정 관습에만 얽매여 살았던 것만은 아니다. 홀로 일곱 아들을 키우며 고생한 어머니가 외로워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외간남자를 만나는 일에 오히려 자식들이 나서서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어머니의 욕망을 인정하는 아들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하고 이들에게 효자비를 하사하였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채워지지 못한 욕망을 내포한 불완전한 존재로서 홀어머니는 부모로서는 결격사유를 가졌다. 그러나 이를 아들들이 훌륭하게 극복해 내었기에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한다. 여기 좀 더 모자란 부모의 이야기가 있다. 그 모자람은 처음엔 숨겨져 있다가 일곱 아들 때문에 확연해진다는 재미난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에 소개할 이야기는 ‘칠성풀이’로 전해지는 한국신화이다.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교량의 구조 및 축조기술을 보여주고, 효불효교 혹은 칠성교 등으로 불렸다. 춘양교의 경우 일정교지로도 불렸다. 사진은 일정교지의 전경 모습. [사진 문화재청]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는 통일신라시대 교량의 구조 및 축조기술을 보여주고, 효불효교 혹은 칠성교 등으로 불렸다. 춘양교의 경우 일정교지로도 불렸다. 사진은 일정교지의 전경 모습. [사진 문화재청]

 
천하궁 칠성님과 지하궁 매화부인이 부부 연을 맺었지만 오래도록 자식이 없었다. 갖은 치성을 드린 끝에 드디어 출산에 성공했는데, 일곱 아들이 줄줄이 나왔다. 칠성님은 “개, 돼지도 한 배에 일곱 마리나 낳지는 않거늘! 아이고 나는 징그러워서 못 보겠다” 며 훌쩍 나가 천하궁으로 가버렸다.
 
그러고는 옥녀부인과 새살림을 차렸다. 칠성님이 느닷없이 떠나 버리자 매화부인은 시녀에게 일곱 아들을 연못에 갖다 버리라고 명했다. 시녀가 분부대로 했다. 그러나 아기들을 버리면 벼락을 치겠다는 하늘의 목소리 덕에 도로 올 수밖에 없었고, 매화부인은 어쩔 수 없이 일곱 아들을 홀로 키웠다.
 
일곱 아들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서당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매우 총명해 서당 아이들이 시기했다. ‘아비 없는 호래자식’이라는 놀림을 들은 일곱 아들이 아버지에 관해 묻자 매화부인은 칠성단을 모셔두고 하늘에 빌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곱 아들은 치성을 드리다 하늘에서 내려온 바구니를 타고 올라가 칠성님과 재회했다. 매화부인은 어느 날 갑자기 일곱 아들이 한날한시에 사라지니 진이 빠져 목숨을 다했다.
 
칠성님은 일곱 아들에게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한 방울씩 떨어뜨리게 하고 자신도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여덟 방울의 피는 뱅그르르 돌다 한 덩어리가 되었다. 일곱 아들이 자기 핏줄임을 확인한 칠성님이 아들들만 예뻐하니 옥녀부인이 시기해 일을 꾸몄다. 꾀병을 부린 후 점괘를 받아오게 했다. 점쟁이와 미리 내통해 일곱 아들의 간을 내어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점괘를 주게 한 것이다.
 
칠성님이 일단 아이들을 산에 보낸 후 고민에 싸였다. 그러던 중에 금사슴으로 환생한 매화부인이 나타나 자신의 배를 가르라고 하였다. 칠성님이 금사슴의 간을 내어 옥녀부인에게 주자 옥녀부인은 이제 병이 나았다며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 일곱 아들이 나타나 장도칼을 앞에 놓았다. 일곱 아들은 칼날을 물고, 옥녀부인은 칼자루를 물게 했다. 그랬더니 칼날은 배꽃이 되고 칼자루는 조화를 부려 옥녀부인을 찌르니 옥녀부인은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금사슴으로 환생한 매화부인이 일곱 아들을 살리며 매화부인과 칠성님의 연이 이어졌다. 2018년 8월 17일 오후 울산시 남구문화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제17회 칠석날 한마당'에서 견우와 직녀가 공연을 펼쳤다. [연합뉴스]

금사슴으로 환생한 매화부인이 일곱 아들을 살리며 매화부인과 칠성님의 연이 이어졌다. 2018년 8월 17일 오후 울산시 남구문화원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제17회 칠석날 한마당'에서 견우와 직녀가 공연을 펼쳤다. [연합뉴스]

 
나중에 일곱 아들은 각각 동두칠성, 서두칠성, 남두칠성, 북두칠성, 화강칠성, 용궁칠성, 삼신칠성이 됐다. 칠성님과 매화부인은 각각 견우성, 직녀성이 되어 칠월칠석마다 만나 그간의 원한을 풀고 별이 된 일곱 형제를 사랑하며 복도 주었다.
 
칠성님은 한 번에 주루룩 태어난 일곱 아들이 끔찍해 집을 나가 버렸고, 매화부인은 이에 좌절해 일곱 아들을 그저 버리려고 했다. 칠성님은 나중에 옥녀부인의 잔꾀에 넘어가 점괘대로 일곱 아들을 죽일 뻔했지만, 이 위기에 매화부인이 환생해 아이들을 구했다.
 
모자란 부모 품고 별이 된 자식들
이 이야기를 두고 성인 한국신화 읽기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저씨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실제로 아기를 처음 낳았을 때 ‘이게 뭔가’ 싶은 어벙벙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종일 힘들게 일하고 들어오면 집안은 어지럽고 아기는 빽빽 울어대니, 가끔은 일 핑계 대고 늦게 들어가기도 했단다. 그러다가 아기가 방긋방긋 웃으며 재롱도 부리고 조금 인간 모습을 갖추게 되니까 ‘내 아이’라는 느낌도 들면서 정신이 차려지더란다. 칠성님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결국 열띤 토론 끝에 이 일곱 아들이 별이 되었다는 것은 곧 자식들이 부모에겐 별처럼 인생의 길을 인도하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겠냐는 결론에 다다른다. ‘효불효교’나 ‘칠성풀이’의 자식들이 모자라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를 품고 넘어서며 성장했다. 그 성장 덕분에 부모도 성장하는 이야기였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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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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