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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혐의 관련없는 수집 증거는 위법” 또 별건수사 제동

중앙일보 2019.06.28 00:06 종합 10면 지면보기
방위사업체 직원들의 비리 사건에서 법원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했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혐의와 관련없는 컴퓨터·서류 등을 ‘별건 압수’하고 이를 또 다시 별건 수사에 활용한 게 드러나면서다.
 

방위사업체 직원 6명 모두 무죄
기무사, 기밀누설 수사하면서
혐의와 무관한 방산 자료 압수

최근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판결문에도 같은 지적이 등장하는 등 사법부가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 관행에 대해 칼을 빼든 모양새다.
 
27일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 차문호)는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6명에 대해 항소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앞서 1심도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가 된 사건은 지난 2013년 3월 국방부 기무사령부가 한 방위사업체 직원 A씨가 특정 사업의 군사 기밀을 수집하고 유출했다는 제보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기무사는 2015년 9월 그의 사무실과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런데 당시 기무사는 A씨의 군 기밀 누설 혐의와 관련없는 다른 방산물자 관련 자료들까지 모조리 압수했다. 해당 업체는 군에 방산물자를 조달하면서 2급 기밀을 취급하던 터였다. 당시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는 없는 ‘별건 압수’였다. 혐의와 상관있는 자료만 압수할 수 있게 한 형사소송법 원칙에 위반된다.
 
기무사는 해당 업체가 예전에 다른 사건으로 수사받은 자료까지 무단으로 들여다봤다. 해당 업체는 앞서 뇌물 사건으로도 압수수색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압수한 컴퓨터 외장하드와 서류철들이 국방부 조사본부에 남아있었다. 이 때도 검찰이 뇌물과 상관 없는 자료를 통째로 가져왔기 때문에 온갖 정보가 다 들어있던 것이다. 기무사는 조사본부에서 일부 자료를 열람한 뒤 뒤늦게 영장을 발부받아 이를 압수했다.
 
이 과정에서도 기무사는 또 별건 압수를 했다. A씨 말고 다른 직원들의 자료를 영장 없이 가져왔다. 이 때문에 중간에 압수물을 다시 돌려줬다가 영장을 재발부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관련 없는 자료가 불어나면서 피의자는 6명으로 늘었고, 수사도 끝없이 확대됐다.
 
결국 법원은 이같은 수사를 통해 기소된 직원 6명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저장장치,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하여 가져간 다음 장기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독이 있는 나무(과정)를 통해 열린 열매(결과)에도 독이 있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 원칙을 법원이 분명히 한 것이다. 최근에도 법원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로 기소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1심 판결문에 ‘위법수집증거는 증거 능력이 없다’는 점을 판시했다.  
 
특정인이나 기업에 대해 수사기관이 관행처럼 벌여온 별건 압수수색을 이제 허용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법원이 이제서야 이런 원칙을 강조하는 배경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에서 고위 법관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피고인들은 “검찰의 법원행정처 문건 압수수색 과정이 위법했다”며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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