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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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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500만 달러 주고도 못 가져온 북 모래…경협 지렛대 될까

중앙일보 2019.06.28 00:06 종합 24면 지면보기
대북제재 속 꿈틀대는 경제협력
국내 골재업체인 수양광업㈜ 소속 화물선인 태천1호(688t급)가 2010년 2월 북한 장전항에서 싣고 온 모래 1390여㎥를 울산항 부두에 하역하고 있다. [중앙포토]

국내 골재업체인 수양광업㈜ 소속 화물선인 태천1호(688t급)가 2010년 2월 북한 장전항에서 싣고 온 모래 1390여㎥를 울산항 부두에 하역하고 있다. [중앙포토]

남북 관계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개 속이다. 북한은 어제 관영매체를 통해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언론 인터뷰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기가 무르익었다”며 남북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를 표명한 걸 일축한 것이다. 지난 2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불똥은 남북관계에도 튀었다. 북한은 연일 속이 꼬인 모습을 보이며 우리 정부 당국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에게까지 폭언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자칫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서명된 공동 선언이 백지장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런 표면적 기류와 달리 남북 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트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북측 관계자들이 그런 시그널을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경협 사업가와 당국자를 만나 흐름을 추적해봤다.
 

대남·대미 비방 불구 북측 인사는
“7월 중순 풀릴 것” 분위기 타진
5·24 제재에 빠진 바닷모래 반입
자재난 시달려온 건설업계도 반색

북한이 요즘 들어 대남 경협 재개 의사를 우리 측에 타진해오고 있다는 건 뜻밖의 소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나 한·미 공조 움직임에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워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생뚱맞기까지 하다. “북남 사이에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무슨 대화가 진행되는 듯한 여론을 돌리고 있다”(27일 외무성 미국국장 담화)는 대목에선 대놓고 남북관계의 단절을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다. 대미 입장을 밝히는 글인데 대남 비난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토라진 북한을 달래려 국민 비판여론을 무릅쓰고 5만t 규모의 대북 식량지원을 포함한 유화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난감한 일이다. 일각에선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나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가동해온 대북 비밀채널에서 뭔가 사달이 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북한의 불만을 이처럼 증폭시켜버린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점에서다.
 
이런 국면에서 베이징의 북한 경협 담당자들이 남북관계와 관련해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오기 시작했다는 대목은 눈길을 끈다. 최근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를 접촉한 대북 사업가는 “구체적인 배경 설명은 없었지만 ‘곧 좋은 소식이 갈 것’이란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남북 당국 관계가 소강상태를 맞은 상황이라 답답한 속내를 토로하자 “7월 중순께는 풀린다. 교역사업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북측이 전달해왔다는 것이다.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분위기다. 북측은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대북제재 눈치를 보며 경협이나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미온적이라며 불만을 표명해왔다. 북측 경협 담당자들도 미국과의 협상에 진척이 없는 점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4월 24~26일), 김정은·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정상회담(6월 20~21일) 일정 등을 거론하며 미적대는 모습을 보였다.
 
북측이 꺼내 든 카드는 모래 반출 건이다. 남북한은 노무현 정부 때 북한산 모래의 국내 반입 사업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10여개 국내 업체가 2004년부터 북측 지역 바다와 강에서 채취한 5600여t을 들여왔다. 하지만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 대응 차원에서 5·24 대북제재가 시행되면서 중단됐다. 당시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을 제외한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남북 교역 중단과 대북 신규 투자 금지가 결정됐다. 또 북한 선박의 남측 해역 운항을 금지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경우에도 사전에 정부 당국과 협의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미 대금을 북측에 지급했거나 임가공을 위해 원자재를 보낸 경우가 문제였다. 예외 없는 적용을 했다가는 우리 기업이 공연히 북측에 돈만 떼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결국 이듬해 이런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는 결정이 이뤄졌다. 모래의 경우도 반입을 앞두고 북측에 돈을 건넸지만 물건을 받지 못한 업체가 생겼다. 북한이 이번에 남측으로 반출을 허용해준 모래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사실 모래 반출의 경우 이미 지난해 말부터 북측으로부터 언질이 있었다고 한다. 정양근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12월 북측 광명성총회사가 우리측 S업체로부터 대금을 받고도 내주지 못한 바닷모래를 반출해가도 된다는 통지를 해온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공개한 확인서에는 “바닷모래 거래과정에서 발생한 미지불금 500만 달러를 모래 250만㎥로 상쇄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명시돼 있다.
 
북한 민경련이 미지불금을 모래로 상쇄하겠다고 우리 측 업체에 보내 온 확인서.

북한 민경련이 미지불금을 모래로 상쇄하겠다고 우리 측 업체에 보내 온 확인서.

정 회장은 북한 민경련 단둥대표부가 보내온 서한도 공개했다. 여기에는 “모래반입과 관련해 남측 당국의 허가를 받고 반입 일정표를 통지해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북측이 모래를 내주기 위한 실무적 조치를 취할 것이란 점을 밝히고 있다. 정 회장은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모래 반입을 본격 시행하려 했지만 결렬 사태로 분위기가 냉각되면서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북한 민경련이 미지불금을 모래로 상쇄 하겠다고 우리 측 업체에 보내 온 확인서.

북한 민경련이 미지불금을 모래로 상쇄 하겠다고 우리 측 업체에 보내 온 확인서.

북측은 최근에도 자신들이 보낸 확인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조속히 물량을 넘겨줄 수 있도록 통일부 등 남측 당국에 승인을 받아달라는 당부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도 모래 반입 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5·24 조치 이전 이미 북한에 대금을 건넨 사안인 만큼 해당 물량을 가져오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26일 AFP 등 통신사 인터뷰에서 “남북경협이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 ‘선(先) 비핵화, 후(後) 경협 및 제재완화’ 원칙의 유연한 적용 방침을 시사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학자 시절 모래반입 등 경협을 통한 남북 상생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업계는 모래 반입이 원만하게 이뤄지면 대북제재 국면에서의 경협 물꼬를 트는데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장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가동 등이 어려운 현실에서 모래를 돌파구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건설업계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우리의 경우 환경 생태계 보존 등의 이유로 해양수산부 등이 반대입장을 표명하면서 2016년부터 바닷모래 채취가 급감했다. 국토부는 올해 골재 수급계획에서 전체 골재 1억8728만㎥ 가운데 8.1%인 2160만㎥를 바닷모래로 충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지역 어민의 반발 등으로 바닷모래 채취는 사실상 중단상태다. 이에 따라 골재 가격이 40% 넘게 뛰기도 했다. 한 건설업체 대표는 “국내 건설업체들이 모래 부족 사태로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북한산 모래의 반입문제가 성사되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북제재의 완화나 해제 국면에서는 북한산 모래의 안정적 공급이 가능해질 수도 있다. 남북한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에 ‘한강 하구 지역의 공동 이용’을 담았고 이를 위한 공동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문제는 향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이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입장에 불만을 드러내며 “실력행사의 방아쇠를 주저 없이 당길 것”(26일 외무성 담화)이라고 위협하는 등 대미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남 비방 목소리도 한껏 키운 상태다. 하지만 북한이 한·미를 상대로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 직전엔 잇단 성명전을 통해 기선잡기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와 교류 재개를 앞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월 말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4개월간의 장고 끝에 한여름 담판 채비에 나섰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남 경협 채널이 잇달아 보내오는 메시지가 남북관계 복원의 예고탄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북제재의 예외 항목으로 남아있던 모래반입이 경협 재개의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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