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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의 직격인터뷰] 정부의 바이오헬스 육성…“체감하도록 실행 뒤따라야”

중앙일보 2019.06.28 00:03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
아직은 초라하다. 번듯한 업종 가운데 ‘포천 세계 500대 기업’에 대한민국이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은 이 분야뿐 아닌가 싶다. 제약·바이오 산업 얘기다. 세계 1위인 미국 화이자의 연간 매출은 약 60조원, 국내 1위인 유한양행은 1조5000억원이다. 덩치 차이가 40배다. 연구개발(R&D) 투자는 격차가 더 크다. 지난해 화이자가 9조2000억원, 한미약품이 1900억원으로 거의 50배 차이였다. 이런 제약·바이오 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겠다고 정부가 나섰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충북 오송에서 ‘바이오·헬스 국가 비전 선포식’을 하고 혁신 전략을 발표했다. 현재 연간 2조6000억원인 바이오·헬스 분야의 정부 R&D 투자를 2025년 4조원으로 늘리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과연 정부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단추를 잘못 끼운 건 없을까. 이정희(68)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유한양행 사장)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R&D 투자 큰 부분 벤처에 가야
식약처 심사관 대폭 증원도 필요
신약 개발, 때론 밤 새워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로제가 제일 큰 고민”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유한양행 사장)은 ’스타트업·벤처와 제약·바이오 회사가 함께 모여 연구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이정희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유한양행 사장)은 ’스타트업·벤처와 제약·바이오 회사가 함께 모여 연구할 수 있는 클러스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대부분 업종은 전 세계적으로 명함을 내밀만한 한국 기업이 있다. 그런데 제약·바이오는 아니다. 흔히 말하는 ‘주력 산업’에도 제약·바이오는 없다. 왜 그런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스스로 혁신 신약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외국 회사들이 만든 약을 들여와 팔거나 복제약(※특허가 만료된 약품을 그대로 본뜬 약)을 만드는 정도였다. 정부도 이쪽을 산업으로 보지 않았다. 국민 건강과 연계해 보건복지 정책으로만 다뤘다.”
 
정부가 왜 산업으로 보지 않았을까.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 10~15년이 걸린다. 그 사이엔 계속 돈만 들어간다. 한참 동안 눈에 보이는 게 나오지 않는다. 산업을 육성하는 정부 입장에서 뭔가 성과가 빨리빨리 나오는 쪽을 더 신경 쓰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건…. 반도체 세계 시장이 연간 500조원 규모인데, 제약·바이오는 1400조원이다.” 
 
얼마 전부터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기술 수출을 꽤 하고 있다.
“2015년 한미약품이 대형 기술 수출을 한 게 큰 자극이 됐다. (※그해 한미약품은 7건, 총 4조원에 이르는 기술 수출 계약을 했다.) 업계 전체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사실 그때 유한양행 사장으로서 절망감도 들었다. ‘경쟁사는 오랜 세월 투자해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뭔가’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술 수출 성과를 내고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 업체와 격차가 상당하다. R&D 투자 규모를 비교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택한 게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한 회사가 다 하지 않고 협력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제약·바이오 벤처가 많다. 유한양행이 지난해 12억5000만 달러(1조4500억원)에 기술 수출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도 벤처와 협력해 발굴했다. 그걸 우리가 기술 수출했더니 업계에서 ‘어? 축적된 기술이 없는 회사가 웬일이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젠 대부분 회사가 그렇게(오픈 이노베이션)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으로도 아직 ‘기술 수출’ 수준이다. 블록버스터급 혁신 신약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해 판매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신약은 후보 물질을 찾아낸 뒤 동물 시험과 임상 1·2·3상을 거치고 당국의 허가를 받아 판매한다. 기술 수출은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치기 전에 하는 것이다. 예컨대 임상 1상을 성공적으로 끝낸 물질을 기술 수출하면, 상대방이 임상 2상부터 그 뒤의 절차를 진행한다.)
“아직은 자금력이 부족하다. 신약 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려면 10~15년의 시간과 1조원 넘는 돈이 필요하다. 지금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중간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술 수출을 통해 자금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5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도 혁신 신약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신약 기술 수출 소식이 이어지던 가운데 ‘인보사’ 사태가 찬물을 끼얹었다.(※인보사는 코오롱생명과학의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다. 사람의 연골세포를 이용해 개발했으나 판매 제품에는 신장세포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허가가 취소됐다.)
“제약·바이오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려는 시점에 악재가 터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가고자 하는 길은 계속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하지 않겠나.”
 
정부가 지난달 ‘바이오·헬스 국가 비전 선포식’을 했다. 대통령이 나왔다.
“그냥 이벤트에 그치면 안 된다. 대통령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그대로 가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예를 보면 신뢰가 많이 가지는 않는다.”
 
겪어 봤다는 얘기다.
“허허….”(그냥 웃었다.)
 
이번에도 이벤트에 그칠 것 같나.
“의지는 보인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함께 나와 제약·바이오업계 최고경영자(CEO) 간담회를 했다. 장관 연석은 대단히 드문 경우다.”
 
‘바이오·헬스 혁신 전략’도 내놨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 R&D 투자를 4조원으로 늘린다고 했다. 구체적 아닌가.
“어디에 어떻게 쓰겠다는 것인지가 없다. 4조원에서 큰 부분, 적어도 1조원 이상은 스타트업이나 벤처에 갔으면 한다. 데이터도 문제다. 우리나라 병원에는 엄청난 데이터가 있다.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물을 투여했더니 어떤 변화가 나온다는 데이터다. 그걸 신약 개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묶여 있다. 개인정보보호 때문이란다. 신상 정보만 가리면 아무 문제 없을 텐데…. 이런 걸 정부가 풀어줘야 한다.”
 
정부가 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바이오·헬스 빅 데이터 플랫폼을 갖추겠다’고 했다. 자기 데이터를 써도 좋다는 자원자들의 정보를 모아 활용토론 하겠다고 했다.
“자원자 데이터로만은 부족하다. 이름만 가리면 개인정보 침해는 없지 않겠나. 이런 데이터를 활용하면 인공지능(AI)의 힘을 빌려 엄청나게 빠른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다.”
 
정부 혁신 전략에 빠진 부분은 없나.
“정부가 지원해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기술이 많다. 그런데 어떤 기술이 있는지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잘 모른다. 이달 초에 유한양행이 성균관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교수님들이 개발한 기술에 대해서다. 뇌에 약물을 더 잘 투여할 수 있는 기술과 뇌 동영상 촬영 기술이다. 우연히 알게 됐다. 국가가 기술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어 기업들이 검색하기 쉽게 하면 활용도가 훨씬 높아질 거다. 그리고 바이오 전략을 세울 때 복제약을 만드는 바이오시밀러 업체와 혁신 신약을 만드는 곳을 구분했으면 한다. 지금 정부는 둘 다 그냥 ‘바이오’라고 여기는 것 같다. 바이오시밀러 업체를 혁신 신약 개발업체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한 가지 더, 임상시험 투자비에 대한 세금 감면을 과감하게 해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신약 허가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들 하던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인력이 부족하다. 약품 심사관이 미국에 비해 10분의 1 정도이던가.(※한국은 바이오 의약품 품목당 심사 인력이 5명, 미국은 40~45명이다.) 심사관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한계가 있다. 이 인력을 대폭 늘려 심사 기간을 줄이는 게 제약·바이오 업계를 도와주는 거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영향이 없나.
“내가 한 말을 주워 담아야 할 판이다. 이 사옥(대방동 본사)에 운동 시설을 만들었다. 재작년에 ‘근무 시간이라도 상관없으니 언제든지 가서 운동하라’고 했다. 그런데 52시간제를 시행하게 됐다. 사장이 한 말이 좀 이상하게 돼 버렸다. 연구소에 잠 잘 수 있는 곳 만들고서 ‘피곤하면 아무 때나 쉬어라’라고도 했는데…. 연구라는 게 또 어떤 때는 밤새 데이터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의 제일 큰 고민이다.”  
 
◆이정희
1978년 유한양행에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2015년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실업계 고교(대구공고)에 갔다. 공부와 담쌓고 지내다 고2 때 “왜 스스로 주인 될 생각을 않느냐”는 도산 안창호 선생 말씀을 접한 뒤 다시 공부에 매달려 대학(영남대 영문학)에 진학했다. 유한양행 영업 부문에서만 30년 넘게 일했다. 직원들에게는 “제품을 사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제품을 찾게 하는 게 영업”이라고 설파한다. 스타트업·벤처와 협력해 신약을 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선구자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이 됐다.

 
권혁주 논설위원, 기록=박규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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