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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각수의 한반도평화워치] 상황에 급급한 한국 외교, 전체 조감하는 시야 길러야

중앙일보 2019.06.28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빨간 불 켜진 외교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한국 외교에 빨간 불이 켜졌다. 정부가 공들여왔던 북핵 문제는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교섭 재개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지 상태다. 북한은 지난 5월 단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압력을 가하면서 선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실질적 비핵화 없이는 제재 해제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양측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북한은 중재 역할을 자처한 우리에게도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라며 남북 관계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북·미가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시간 게임이라고 인식하는 가운데, 북핵도 남북 관계도 시계 제로의 상황이다.
 

주변국 이해와 맞물린 한국외교
부분적 사안에 집착하는 경향
전체적 맥락에서 균형감 찾고
전환기 변화에 능동 대처해야

주요국과의 관계도 냉랭하다. 미국과는 표면상 문제가 없는 듯해도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때 단독 정상회담이 5분에 불과했던 사례에서 보듯, 북핵·인도·태평양전략·남중국해·주한미군·화웨이 등 여러 현안에서 매끄럽지 못하다. 일본과는 수교 이래 최악, 최장의 위기를 겪고 있다.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현안에 대한 소극적 대처가 양국 국민감정을 악화시켜 상호 신뢰가 무너지고 경제·문화·관광 등 비경제 분야 피해도 커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전환기 상황에 오히려 ‘서로 멀리하기’로 인해, 협력이 되지 않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피해는 엄청나다. 강제 징용 판결의 강제 집행 실현으로 양국이 상호 대응 조치에 나서면 우리 경제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정부가 정성을 쏟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도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에는 전략적 관점에서 문제가 큰 ‘3불 약속’(사드 추가 불배치, 미사일 방어 불참여, 한·미·일 동맹 불가담)을 했지만, 사드 보복 조치도 완전히 철회되지 않았고 전략대화도 원활하지 않다. 2018년 북핵 교섭 이래 네 차례 정상회담을 한 북·중 관계와 대비된다. 신북방정책 핵심인 러시아와의 관계도 진전이 없는 가운데 러시아의 대북 접근만 두드러진다. 외교 부진이 현 정부 탓만은 아니겠지만, 집권 2년이 지났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전환기의 초불확실성이 초래한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힘든 외부 환경으로 우리 외교의 여건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한국 외교는 냉전 시대에는 안보·경제 주축이 해양 세력인 미·일 양국이었고, 탈냉전 시대에는 옛 공산권 지역으로 외교 지평이 확대되었지만,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여전히 중심축이었으므로 비교적 방향 설정이 쉬웠다.
 
그러나 2000년대 말 중국의 급속한 부상으로 시작된 전환기에 들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에 대해서는 이익을 앞세우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보아 전략 대결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 그럴수록 외교가 제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지정학의 귀환’으로 일컬어지는 시대에 지정학적으로 가장 어려운 나라로 한국과 폴란드를 꼽을 수 있다. 최근 폴란드가 러시아 군사 위협에 대비해 주둔 미군을 4000명까지 늘린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큰 틀 외에 미국을 직접 연계하려는 전략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경제 사활이 해외 시장과 해외 자원·에너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사드 사태와 같이 외교가 잘못되면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 구조다. 최근 미국·이란 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호르무즈해협에서 유조선 공격이 있었다. 이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로 유조선 통행에 지장이 생기면 80%의 석유를 걸프 지역에 의존하는 우리에겐 치명적 상황이 된다.
 
또 우리는 유일한 분단국으로 통일을 통해 진정한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는 743만 해외 교민(2017년), 2870만 해외 여행객(2018년)과 많은 해외 진출 기업이 있다. 최근 헝가리 유람선 전복 사고처럼 해외 국민과 기업의 외교·영사적 보호 수요는 우리 외교 자원보다 매우 높다.
 
우리 외교는 어떤가. 첫째, 국제 질서의 틀이 크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적 외교 전략이 없는 가운데 상황 대응에 급급하다. 중견 국가인 우리가 주변 강대국들이 만드는 국제 환경의 구조 변화에 직접 영향을 주기는 어렵지만, 변화에 능동 대처할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 외교는 전체를 조감하는 시야와 균형 감각이 결여되어 부분적 사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외교 사안은 다양한 이해 당사자와 연관되므로 전체적 맥락에서 균형감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대일 관계는 대미·대중·대북 관계와 연동된다는 점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셋째, 우리 사회의 과도한 민족주의는 보편적·세계적 관점이 부족한 외교로 이끈다. 특히 북한과 일본에 대해 민족주의 성향이 두드러진다. 북한 관련 ‘우리 민족끼리’의 관점에 기울면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 측면을 놓쳐 외교 정책을 왜곡하게 된다. 일본과도 국내 정치적 필요에서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경향으로 대일 관계의 객관적 접근을 힘들게 한다.
 
넷째, 20세기 불행한 역사 탓에 피해자 의식과 과거 지향적 성향이 강하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겠지만, 과거의 노예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긴 안목으로 과거를 정리하여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면서 역사 화해와 미래 개척을 꾀해야 한다.
 
다섯째, 외교의 과잉 정치화로 연속성이 부족하고 남·남 갈등으로 초당적 대처가 어렵다. 5년 주기 정권 교체마다 외교정책이 바뀌어 축적이 힘들다. 대표적 사례가 동아시아 정책이다. 동아시아 중시(김대중 정부)→동북아 중시(노무현·박근혜 정부)→신아시아정책(이명박 정부)→신남방정책(문재인)으로 5년마다 바뀌었다. 진보·보수 대립도 심해서 북한 문제와 동아시아 세력 전환에 관한 정책의 진폭이 커 외교의 효율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
 
여섯째, 외교에서 희망적 관측이나 확증 편향은 위험하다. 상황에 관한 객관적 평가가 결여되면 정책이 현실과 유리되어 외교 실책으로 연결된다. 최근 대북 제재에 관한 잘못된 접근을 예로 들 수 있다.
 
일곱째, 청와대 주도 외교로 외교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할 외교부의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 또 외교의 촉수이자 현장 대응을 담당하는 재외 공관장에 정치적 임명이 늘어난 것도 전문성 면에서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 조치가 필요하다. 우선, 외교 전략을 분명히 세워야 한다. 우리 외교의 기축은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경제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며 향후 수십 년간 세계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질 미국과의 동맹에 두어야 한다. 미국의 신고립주의 경향에 비추어 동맹을 유지·강화하는 데 힘쓰고 워싱턴 내 한국의 대중 경사론을 불식시켜야 한다. 아베 정부의 광폭 외교 행보 뒤에는 탄탄한 미·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주변국과의 덧셈 외교를 펼쳐야 한다. 위기의 한·일 관계를 조기 정상화하고 한·중 관계도 전략적 소통이 가능한 수준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둘째, 미·중 경쟁 사이에서 우리의 입지 확보는 동맹과 원칙이 조화되도록 사안별로 미세 조율하되 전체적 맥락에서 대응해야 한다. 어느 한 편만을 선택하는 제로섬 게임으로 보면 안 된다.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참여하되 열린 동아시아 체제를 지향하며, 남중국해 문제는 통행의 자유 확보 노력을 분명히 지지하되 우리 능력을 넘어서는 작전 참가는 삼가야 한다. 화웨이 문제는 핵심인 통신 보안 확보에 중점을 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셋째, 중견 국가로서 가교 외교를 활발히 하면서 국가 생존에 중요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 다자주의, 협력적 국제주의 창달에 나서야 한다. 활발한 다자외교와 함께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넷째, 결과 지향적 실용주의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기민한 선제 대응 외교를 위해 정보 능력을 높이고 외교 인프라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 다섯째, 외교의 지나친 정치화를 막기 위한 초당적 컨센서스 도출에 힘써야 한다. 국민 외교 차원에서 국민·언론과도 소통해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외교 전문가를 등용하는 열린 시스템도 필요하다. 현재 상황이 19세기 말 한반도 상황과 유사하다고 우려하지만, 우리 능력도 향상됐고 환경도 좋아졌다. 우리가 긍정적 자세로 민관 총력외교를 한다면 충분히 활로를 열어갈 수 있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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