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文 "적극 수사 공조" 지시한 인니 임금체불 사장 구속영장 기각

중앙일보 2019.06.27 18:09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오후 청와대에서 법무·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은 후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오후 청와대에서 법무·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은 후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뉴스1]

인도네시아 현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한 혐의 등을 받는 SKB 김모(68) 사장에 대한 구속 시도가 불발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운영하던 김씨에 대한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수사 공조”를 지시한 이후 이뤄져 왔다.

법조계 "대통령의 수사 언급에 무리"

 
증거인멸·도주 우려 없고, 일부 변제 
27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김씨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체불했다는 임금 역시 상당 부분 지급했다”며 “구속 수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한다. 다만 횡령 혐의는 상당 부분 소명됐다고 봤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인도네시아 현지 경찰 등과의 공조를 통해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은 지난주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를 검찰이 법원에 청구했다. 경찰은 김씨가 현지 근로자들에게 임금은 지급하지 않으면서도 회삿돈 90억원 가량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특경법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SKB는 법인 지분의 95%를 김씨가 가지고 있는 사실상 개인 회사다. 일반적으로 법인 대표 횡령의 경우 투자자 피해 등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진다. 개인 회사는 회삿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더라도 법리적으로 횡령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노동단체들이 악덕 한인기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자카르타 시내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인도네시아 노동단체들이 악덕 한인기업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 위해 자카르타 시내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김씨는 지난 4월 밀린 체불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80억 루피아(약 6억5000만원)를 송금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밀린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김씨는 임금 체불이 국제적 문제가 되고 수사가 시작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불 임금을 일부 지급한 것이다.
 
文 "적극 공조", "경찰 명운 걸고 수사" 
청와대는 지난 3월 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에게 SKB의 임금체불 사건과 관련해 “인도네시아 당국과 수사 및 형사사법 공조, 범죄인 인도 등 대응 방안에 대해 적극 공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대통령이 수사와 관련해 적극적인 대응을 지시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청와대 고민정 부대변인이 지난 3월 7일 오후 춘추관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 고민정 부대변인이 지난 3월 7일 오후 춘추관에서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임금체불과 관련한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문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다”며 장자연‧김학의‧버닝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문 대통령의 지시 이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구속됐으나 성범죄 혐의는 빠졌다. ‘별건 수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승리 구속영장도 기각…"대통령 언급 수사 부담"
버닝썬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가수 승리와 그 동업자인 유인석씨를 20번 이상 소환 조사하면서 구속까지 시도했다.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도 전부터 구속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승리와 유씨에 대한 구속영장 역시 기각됐다. 당시 법원은 “형사 책임의 유무와 범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무리한 영장 청구였음을 지적했다.  
 
경찰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언급하는 순간 그 사건은 수사기관에서 중요 사건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며 “일선 수사 현장에서는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돼 무리하거나 급한 수사로 이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통령이 원론적으로 ‘엄정 수사’를 말할 수는 있지만 수사하는 입장에선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임금 체불 관련 수사는 객관적인 증거물을 기초로 법리 검토를 해 진행된 사안이다”며 “수사 과정에서 구속할 만한 혐의가 나왔다고 봐서 영장을 신청했을 뿐이고 법원이 이를 기각했지만 혐의 소명을 문제 삼은 건 아니었다“고 밝혔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