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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인질외교 시작하나…호주 유학생·김정일 요리사 체포설

중앙일보 2019.06.27 15:14
알렉 시글리가 지난 3일 트위터에 올린 사진. 시글리는 "나의 (문학작품)구성론 선생님,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문학강좌 교원 리병간 동지와 함께. 명랑하고 쾌활한 분이다."라고 썼다. [시글리 트위터]

알렉 시글리가 지난 3일 트위터에 올린 사진. 시글리는 "나의 (문학작품)구성론 선생님,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문학강좌 교원 리병간 동지와 함께. 명랑하고 쾌활한 분이다."라고 썼다. [시글리 트위터]

북한 평양에서 호주 유학생과 ‘김정일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가 체포됐다는 보도가 등장하면서 북한의 ‘인질 외교’가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단, 북한은 27일 현재 이들에 대한 체포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북한 과거 인질 외교로 대미 협상 전력
미국인 아닌 점에서 단순 억류 가능성도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평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 중인 호주인 알렉 시글리(29)가 최근 북한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외교부는 “평양 주재 스웨덴 대사관 등에 시글리의 억류 사실 여부와 경위 등을 확인 중”이라며 “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호주의 시글리 가족들은 “화요일(25일)부터 시글리와 연락이 안 되고 있다”며 “이런 적이 처음이어서 걱정이 된다”고 BBC에 말했다. 그의 친구들도 “시글리가 스카이프에 접속한 것으로 나오는데 질문에는 일절 대답이 없다”고 했다. 현재 호주 언론은 시글리 억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3년 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태가 재현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웜비어는 2016년 1월 북한 여행 중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했다는 이유로 17개월간 억류됐다가 지난해 6월 혼수상태로 풀려났다. 그러나 미국으로 돌아온 지 6일 만에 사망하면서 북한의 고문 의혹이 거세게 일었다.  
북한에서 체제전복혐의로 재판을 받은 오토 웜비어. [AP=연합뉴스]

북한에서 체제전복혐의로 재판을 받은 오토 웜비어. [AP=연합뉴스]

“조선 김치 최고”라던 호주 유학생 체포설
시글리는 트위터에서 꽤 알려진 유명 인사다. “북한에서 단 3명뿐인 서방국가 출신 유학생 중 한 명”이라고 본인 신분을 밝히고 트위터에 지난해 11월부터 거의 매일 ‘평양 살이’에 대한 소감과 사진을 게시하면서다.
이달 초 “김일성대 문학 대학 교원 리병간 동지와 함께”라며 담당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가 하면, 북한 스마트폰 이용기를 동영상으로 편집해 공개하기도 했다. 다른 유학생들과 북한 식당을 찾은 모습, 북한 음식 사진도 자주 올라왔다. 또 “조선 김치 최고”라며 북한에 대한 애정도 자주 표현했다.  
[시글리 트위터]

[시글리 트위터]

24일엔 류경호텔 전경 사진을 올리며 “류경호텔 정문에 걸려있는 새 간판”이라며 “개업 날이 다가오고 있는가?”라고 썼다. 시글리는 트위터에 영어, 한국어를 나란히 올리며 한국어에도 능통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게시물을 마지막으로 사흘째 아무 게시물도 올라오지 않고 있다.
 
[시글리 트위터]

[시글리 트위터]

시글리는 중국학자였던 호주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동아시아에 관심이 컸다고 한다. 중국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북한 학생과 같은 층을 사용하면서 북한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학 졸업 후 ‘통일 투어스(Tongil tours)’라는 북한 여행사를 설립해 운영해오다 지난해 4월 김일성대에서 ‘조선 문학’ 석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다. 지난 3월 영국 가디언에 평양 생활 단상을 담은 기고가 실리며 SNS에서 유명세를 탔다. 시글리는 당시 기고에서 “국제사회의 무거운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경제개방 정책 등으로 인해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소비자 계층이 생겼다”며 “최신 유행 식당의 경우 주말 점심은 손님들로 빼곡하고, 이들 옷차림은 상하이나 서울에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심지어 성형수술을 한 것이 틀림없는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고 썼다. 사실상 접하기 어려운 평양 지하철 내 모습이나 길거리 등을 찍은 사진을 가감 없이 올렸다. 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4000여명이다.  
[시글리 트위터]

[시글리 트위터]

‘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도 체포설
후지모토 겐지

후지모토 겐지

앞서 26일에는 ‘김정일의 요리사’로 잘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에서 체포됐다고 일본 매체 데일리 신초가 보도했다. 후지모토가 2012년, 2016년 북한 방문 때 취득한 정보를 미 중앙정보국(CIA)에 정보를 판 혐의로 체포됐다는 것이다. 이어 “후지모토는 2017년 초 평양에 다카하시란 스시 레스토랑을 열어 운영했지만, 그가 체포되면서 가게는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후지모토가 언제 체포됐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후지모토는 1989~2001년 평양에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으며, 도쿄로 돌아와 김정은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후 김정은이 2012년 그를 평양에 초대했다. 후지모토는 평양 방문 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김정은에게 “배신자인 제가 (평양에) 돌아왔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했고 김정은은 “걱정말라”고 위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지난달 19일 평양에 문을 연 초밥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겐지는 지난해 8월 평양 방문 뒤 실종설이 돌았지만 올해 초 평양에 초밥집을 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사진은 5일 공개됐다. [AP=뉴시스]

북한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지난달 19일 평양에 문을 연 초밥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겐지는 지난해 8월 평양 방문 뒤 실종설이 돌았지만 올해 초 평양에 초밥집을 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확인됐다. 사진은 5일 공개됐다. [AP=뉴시스]

호주선 제2의 오토 웜비어 우려 
시글리와 후지모토의 억류된 듯하다는 소식이 연이어 알려지면서 북한이 과거 대미 협상에 활용한 인질 외교를 재개하는 것이 아닌지 외교가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우방인 호주, 일본인 억류를 통한 우회적인 압박 가능성이다. 북한은 협상이 잘 안 풀릴 때 미국인을 억류했다가 관계가 개선되면 인질을 풀어주곤 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달가량 앞두고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씨 등 3명을 풀어준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직접 마중 나가 이들을 맞으며 외교적 성과를 극대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북한 억류 한국계 미국인 3명의 환영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 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열린 북한 억류 한국계 미국인 3명의 환영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하지만 이번에 억류한 시글리와 후지모토가 미국인이 아니란 점에서 단순 억류일 가능성도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안보센터장은 “두 사람이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인질 외교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북한 생활사정 등이 악화하고 있다는 게 외부로 알려지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단속 필요성이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대외 언론 접촉이 잦은 두 사람에 대해 입단속을 할 수 있단 얘기다.    
현재 북한에는 공개된 바에 따르면 2013년 체포된 김정욱 선교사 등 선교사와 탈북민 총 6명의 한국 국민 억류돼 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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