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중 격돌은 기회” 베트남·멕시코가 쾌재를 부르는 이유

중앙일보 2019.06.27 11:37
베트남 남부의 경제 중심 도시 호치민에서 섬유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응우옌후푹 사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격분했던 일이 생각났다. 취임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1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당시 미국의 TPP 탈퇴로 베트남 경제계에선 자유무역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소규모 수출형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베트남으로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응우옌 사장이 화를 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맥이 닿아 있다.  
 

고관세 피해 탈중국 생산시설 베트남·멕시코행
“중국의 대체 생산지로 어부지리 효과 톡톡 ”

베트남, 올 1~4월 대미 수출 약 40% 증가
멕시코, 3월 미국 수출액 중국에 앞서

2년이 흐른 지금 사정이 180도 뒤집혔다. 응우옌 사장은 장사가 잘 돼 표정 관리가 힘들 정도라고 한다. 미중 무역분쟁의 유탄을 피해 생산라인·투자자·공급업자들이 중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몰려들고 있다. 응우옌 회사의 의류 부문은 연말까지 직원 수를 배로 늘리기로 했다. 1000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예정돼 있다. 셔츠와 바지·잠옷 등 주문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응우옌 사장은 “트럼프와 시진핑의 갈등으로 베트남이 어부지리 효과를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응우옌 사례는 요즘 베트남 경제에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베트남의 올해 1~4월 대미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가까이 늘어났다. 베트남이 미중무역전쟁의 최대 수혜국임이 확인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데이터를 자체 분석한 결과 40여개 대미 수출국들 중 베트남의 수출 증가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베트남만 재미 본 건 아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은 20% 가까이 증가했고 대만의 대미 수출도 20% 넘게 증가했다.  
 

반면 중국의 대미수출은 13% 떨어졌다. 2009년 이후 두번째로 큰 감소세를 나타냈다.  

 
FT는 베트남의 대미 수출이 섬유 뿐 아니라 수산물·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올해 1~4월 베트남으로부터 휴대전화를 지난해 동기 대비 배 이상을 수입했다. 중국으로부터 수입은 약 27% 줄어들었다. 베트남산 컴퓨터 부품 수입은 79% 증가했다. 중국산 수입은 13% 줄었다.  

 

베트남 경제계 한 인사는 FT에 “미중무역전쟁으로 많은 기회의 창이 열렸다. 베트남은 사업을 확장할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야스유키 사와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베트남을 ‘아웃라이어(outlier)’라고 추켜세운다. 기가 막힌 타이밍의 수혜자라는 얘기다.  야스유키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를 들어보자. “베트남이 파는 제품들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25% 고관세의 직접 타격을 받는 중국산 제품들과 같다.” 베트남이 중국의 대체 공급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사실 임금상승과 환경 규제, 숙련된 노동력 부족 현상 등으로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시키는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던 추세였다. 미중 무역분쟁은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켜 돌이킬 수 없는 현실로 굳힌 것뿐이다.  
 

베트남의 높은 발전 가능성을 보고 글로벌 자금도 공격적으로 베트남에 투자하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미·중 무역전쟁이 더 격화될 경우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앞으로 3년간 2%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베트남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는 지난해 180억 달러였다. 신기록이었다. 전년 대비 20% 뛰어오른 액수로 베트남 GDP의 58%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밀려들어온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베트남 펀드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설정액 10억원 이상 펀드의 설정액 증감을 집계한 결과 지난 20일 기준 베트남 주식펀드 19개의 설정액은 연초 이후 1005억원 늘었다. 지난 1년간 순유입액은 2867억원에 이른다. 
 
미중이 고관세 보복전을 주고받으면서 중국산 수입품 가격이 치솟으면 생산업체로선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첫째, 중국 공장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생산라인을 옮긴다.  

둘째, 아예 미국 시장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공장을 전진배치한다.

베트남이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혜를 받고 있듯이 멕시코도 두번째 이유로 대미 수출이 급신장했다. 미중 분쟁으로 인한 어부지리 2탄의 주인공은 멕시코다.    

 
지난달 29일 FT 보도를 보자. 지난 3월 멕시코 대미 수출액이 처음으로 중국을 앞질렀다는 보도다. 개정된 북미 무역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멕시코 측 협상대표인 켄 스미스라모스는 FT에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멕시코에 의심의 여지 없는 기회”라고 밝혔다.

 
미·중이 단일 품목에 대해 상호 25% 관세를 부과한 자동차 엔진 필터. 이 엔진 필터를 생산하는 업체는 가장 큰 수혜를 본 곳 중 하나다. 멕시코 무역컨설팅 업체 CCM에 따르면 3월 멕시코 엔진 필터 생산 업체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전달 대비 15.8%포인트 올랐다. 
 
반면 중국 경쟁사 점유율은 9.3%포인트 떨어졌다. 멕시코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를 경영하는 에밀리오이사이스는 FT에 “미국 기업, 특히 규모가 큰 생산 업체가 중국에서 멕시코로 공장을 옮기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거기에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 산하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520억달러를 상회하던 중국의 대미 수출은 올해 3월 311억달러까지 떨어졌다. 5개월 만에 40%가량 추락한 것. 반면 3월 멕시코 대미 수출액은 313억달러를 기록했다. 2월 276억달러에서 13.4%나 상승한 것이다.  
 

근소한 차이지만 멕시코의 대미 수출이 중국을 넘어선 것이다.  

 
루이스 델 라카예 CCM 상무이사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멕시코에 진출하고 있다"며 "중국에서 수출하면서 25% 징벌적 관세를 부담하는 것보다 멕시코에서 수출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의 방정식은 차이나 팩토리를 기반으로 구성됐다. 중국에 생산기지를 짓고 중국 시장에서 큰 돈을 버는 구조였다. 하지만 중국이 선진국으로부터 음양으로 흡수한 기술을 통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흐름이 형성됐다. 요즘 중국 시장에서 피말리는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다. 여기에 초고속 임금상승 등으로 생산원가가 급등했다. 이래저래 중국에서 생산하기에 고민이 많아지던 때였다.  
우리에게 기회는 없을까?
카운터 펀치는 미국으로부터 나왔다. 미국은 국제 질서 주도권을 놓고 중국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며 전방위 대중 압박이 시작됐다. 고관세를 짊어진 중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경제 방정식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도록 추동하고 있다. 트럼프는 기존의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제 중국 시장에 전력투구하던 무역 전략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 수혜자는 베트남과 멕시코였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트리기엔 이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시작된 이상 초반 우세가 끝까지 지켜지리란 보장이 없다. 넥스트 차이나 시대는 규모나 방향에서 어느 것 하나 뚜렷한 게 드러나지 않는 안개 속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자, 문제는 우리다. 중국을 탈출하려는 기업 중에는 베트남으로 가야할 업종이 있고, 멕시코로 갈아 타야할 업종이 있다. 한국으로 올 업종도 있다. 신발공장은 멕시코로 가야 한다면, 전자 부품 공장은 한국 평택이 더 낫다. 발상의 전환, 위기도 기회가 된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