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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나올 듯한 강렬함, 대구서 열린 박생광 회고전

중앙일보 2019.06.27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51)
둥근 해 위로 사색에 잠긴 석굴암 본존불이 우뚝하다.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청‧적‧황‧백‧흑 오방색의 조합이다. 박생광의 작품 ‘토함산 해돋이’(1980년대). [사진 대구미술관]

둥근 해 위로 사색에 잠긴 석굴암 본존불이 우뚝하다.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청‧적‧황‧백‧흑 오방색의 조합이다. 박생광의 작품 ‘토함산 해돋이’(1980년대). [사진 대구미술관]

 
섬뜩하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그만큼 강렬했다. 대구미술관에 전시 중인 박생광(朴生光‧1904∼1985)의 작품이 준 느낌이다. 오래전 호암갤러리에서 본 그의 무당 그림이 던진 귀기가 되살아났다.
 
왼쪽 주먹을 치켜든 시퍼런 금강역사상이 금방이라도 악귀를 내리칠 자세다. 좌우로 백호인 듯 청룡인 듯 영물이 엎드려 호위하고 있다. 둥근 해 위로 사색에 잠긴 석굴암 본존불이 우뚝하다.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청‧적‧황‧백‧흑 오방색의 조합이다. 대표작 ‘토함산 해돋이(1980년대)’다.
 
화업 50년 마감하는 유작 ‘노적도’ 
 경남 진주 출신인 박생광은 모노크롬이 유행하던 1980년대 초에 민화‧불화‧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를 오방색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한국 전통화와 현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생광의 생전 모습.[사진 대구미술관]

경남 진주 출신인 박생광은 모노크롬이 유행하던 1980년대 초에 민화‧불화‧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를 오방색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한국 전통화와 현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생광의 생전 모습.[사진 대구미술관]

 
박생광의 화업 50여 년을 마감하는 유작(遺作)도 나왔다. 피리 부는 노인이라는 뜻의 ‘노적도(1985)’다. ‘노적도’는 그가 후두암을 선고받고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미완성으로 끝난 작품 속 노인은 박생광 자신이다. 투병 중에도 대작의 역사 인물을 그린 작가는 모든 한을 내려놓겠다는 뜻으로 작품 속에 자신을 해학적으로 담아냈다.
 
차분한 그림도 있다. 박생광은 불교에 심취해 스스로 중이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현대 한국불교의 거목인 청담 스님은 그의 어릴 적 친구다. 이찬호가 속명이다. 박생광은 존경하는 친구를 작품 소재로 삼았다. ‘청담 대종사 연작’이다.
 
현대 한국불교의 거목인 청담 스님은 박생광의 어릴 적 친구다. 박생광은 존경하는 친구를 작품 소재로 삼은 ‘청담 대종사 연작’을 발표했다. 박생광의 작품 '청담대사'(1980년대). [사진 대구미술관]

현대 한국불교의 거목인 청담 스님은 박생광의 어릴 적 친구다. 박생광은 존경하는 친구를 작품 소재로 삼은 ‘청담 대종사 연작’을 발표했다. 박생광의 작품 '청담대사'(1980년대). [사진 대구미술관]

 
이번에 전시된 ‘청담대사(1980년대)’는 수묵화 같은 분위기다. 박생광은 생전에 “이 뒷산에 입적해 언제나 내 곁에 머물고 있는 듯한 청담은 중이 아니고 속인이면서 부처가 되었는데 그와는 가까운 인연이 돼 불교적인 작품을 많이 하게 되었지”라고 말했다.
 
대구미술관은 한국 채색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박생광 회고전을 회화와 드로잉 162점으로 열고 있다. 경남 진주 출신인 박생광은 모노크롬이 유행하던 1980년대 초에 민화‧불화‧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를 오방색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한국 전통화와 현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시기와 이른바 ‘그대로 화풍’의 전개 시기를 망라하고 있다. ‘그대로’는 박생광의 순 한국식 호이며 인생 그대로, 자연 그대로, 예술 그대로라는 본연의 삶을 함축한다. 박생광 만의 독자적인 채색 화풍이다.
 
 관람객들이 대구미술관의 박생광 회고전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사진 대구미술관]

관람객들이 대구미술관의 박생광 회고전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10월 20일까지. [사진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 2, 3전시실을 둘러보면서 박생광은 작가를 뛰어넘은 사상가란 느낌마저 들었다. 주제는 민족이다. 그는 민족성을 연구했다. 연구는 단군에서 기원을 찾았고 1980년대 작업에는 작품 연도를 아예 단기로 표기했다. ‘단군(1970년대)’이란 작품도 전시 중이다. 자신의 호도 그동안 써온 한자어 ‘내고(乃古)’ 대신 한국식 호 ‘그대로’로 바꾸었다.
 
그는 민족성의 상징으로 왕릉 시리즈를 그리며 부족함을 느끼자 전문가를 찾기도 했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민족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이다.
 
국제적 조명받은 무속 시리즈  
그의 무속 시리즈는 ‘르 살롱-85’에 초대되는 등 국제적으로도 조명을 받았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과는 만남이 예정되었지만 1985년 3월 샤갈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무산됐다. 그해 7월 박생광도 생을 마감했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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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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