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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문화참견] 토건형 문화국가로 가는 길

중앙일보 2019.06.27 00:15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문화체육관광부가 현재 1124개인 박물관·미술관을 오는 2023년까지 186개 더 늘리기로 했다. 박물관은 1013개, 미술관은 297개, 총 1310개로 늘어난다. 박물관·미술관 1곳당 인구수도 현재 4만5000명에서 3만9000명으로 낮추기로 했다. 박물관·미술관을 통칭하는 뮤지엄 1곳당 평균 인구수는 독일 1만2000명, 덴마크 2만5000명, 스웨덴 3만3000명, 영국 3만7000명이다(2016년 기준). 인구대비 수만 보면 세계적인 뮤지엄 강국 영국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박물관미술관 186개 신설
문체부 진흥계획안 발표
기존 공간 활성화 급선무
토건적 문화정책 아닌가

2018년 16.5%에 불과한 박물관·미술관 이용률도 4년 안에 두배 수준인 3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24일 문체부가 발표한 ‘박물관·미술관 진흥 중장기 계획(2019~2023)’의 주된 내용이다. 그간 국내 박물관·미술관은 2013년 911개에서 5년 새 1124개로 꾸준히 증가했지만, 1곳당 인구수로는 아직 OECD 주요국에 못 미친다고 문체부는 강조했다. 박물관 유형 간소화, ‘박물관·미술관 정책위원회’ 설치, 박물관·미술관 평가 확대 방안도 이날 함께 발표했다.
 
지자체의 박물관·미술관 건립 붐 속에 세종시도 국가기록박물관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등 5개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계속 공사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연합뉴스]

지자체의 박물관·미술관 건립 붐 속에 세종시도 국가기록박물관 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등 5개 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계속 공사 일정이 늦춰지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국민 1인당 뮤지엄 수가 무려 영국 수준이라니, 어깨가 으쓱 올라갈 만하다. 그러나 그보다는 찜찜함이 더 크다. ‘새로 뮤지엄을 짓기보다 기존 뮤지엄 운영이나 활성화해라’ ‘언제까지 하드웨어 타령인가, 지방 곳곳에 건물은 화려한데 소프트웨어 없는 문화공간이 개점휴업 상태인 것은 안 보이는가’라며 미술계 여론도 냉랭하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은 “기획전은커녕 5년 동안 상설전을 한 번도 교체 안 한 곳이 많은데, 건물부터 짓고 보자는 토건국가적 발상을 멈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장도 “선심성 지방행정의 일환으로 소멸이 우려되는 지역에까지 우후죽순 뮤지엄 건립 붐인데, 컬렉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부실한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가령 전북 고창의 고인돌박물관에는 고인돌은 없고, 고인돌 동영상과 디오라마(미니어처 모형)가 전부다. 당연히 관객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 문체부가 2017년 전국 190개 공립박물관 대상으로 ‘평가인증제’를 실시한 결과에 의하면, 30%인 67곳이 우수인증을 받지 못했다. 30%가 컨설팅이 필요한 미인증 기관이란 뜻이다. 또 ‘2017년 전국 박물관 운영현황 및 실태조사’에서도 전체 박물관 775곳 중 44.4%는 단 한 차례의 기획전도 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2.9%는 단 한 차례 특별전도 열지 않았다. 강좌를 전혀 운영하지 않은 곳도 58.2%에 달했다. 상설전시 말고는 일 년에 전시 한번 안 여는 박물관이 절반은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문제는 문체부도 익히 알고 있는 사안이다. 지난 2014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예산낭비 누수분야 제도개선(지자체 선심성 사업 통제)’의 일환으로 문체부, 당시 안행부, 지자체에 공립박물관 문제 제도개선을 권고했다. 2015년에는 감사원이 문체부에 사립박물관 지원사업 관리 감독 부실을 지적했다. 이후 나온 문체부의 ‘박물관평가인증제도 확대방안 연구’(2017)에는 ‘시설 건립에만 치중한 운영부실 공립박물관의 난립’ ‘지속적인 관리 감독 미흡’ ‘사립박물관·미술관 국고 지원 부적정’ 등이 문제로 적시돼 있다.
 
정준모 전 관장은 “일본 오사카의 시립근대미술관(가칭)은 미술관 건립에 30년 계획을 세우고 컬렉션을 수집하고 있다”며 “정해진 시한까지 목표 몇 개 달성하는 식의 반문화적 접근을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또 “예산문제 때문에 일부 국공립미술관에서 비싼 입장료를 받는 일이 생기는데, 국민 문화복지 차원에서는 이게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문체부의 ‘2018년 문화 향수 실태조사’에서도 문화예술행사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으로 ‘작품 질을 높여야’(32.8%), ‘관람비용을 낮춰야’(28%)라는 이용자 응답이 많았다. 문화소비자들은 저렴하게 즐기는 질 좋은 콘텐트에 단연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한편 정부는 2022년까지 문화·체육 등 생활밀착형 SOC 사업에 14조5000억원을 쓴다. 도서관, 생활문화센터, 꿈꾸는 예술터 건립이 포함된다. 문화공간의 확대야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그를 채울 콘텐트에 대한 고민과 철학이 없다면, 문화의 이름으로 토건을 남발하며 혈세를 낭비한 또 다른 사례가 될 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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