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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군이 ‘정치의 포로’ 되면 국방이 흔들린다

중앙일보 2019.06.27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정이 예비역 육군대장·전 제1야전군사령관

박정이 예비역 육군대장·전 제1야전군사령관

동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최단거리로 130㎞(함북 경성에서 500㎞) 떨어진 강원도 삼척항 부두에서 지난 15일 아침 북한의 소형 목선이 지역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다. 해양경찰청은 당일 목선 발견 사실을 청와대와 합참·해군작전사령부 등에 전파했다. 이후 거듭된 군의 발표와 청와대의 추가적인 설명에도 여러 가지 해소되지 않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목선 사건, 동해 뚫린 심각한 사안
“평화 위해 전쟁 준비” 교훈 새겨야

해경은 사고 발생 직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문서로 상황을 정리해 관계 기관에 전파했다. 군 당국은 첫 공식 브리핑을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7일에 했다. 목선이 아무런 제지 없이 삼척항 부두에 자력으로 접안했고, 북한 선원이 삼척항 주민과 접촉해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 요구한 사실 등이 밝혀지자 군은 경계작전 실패라는 비판을 받았다.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이 일고, 조난이 아닌 월남한 북한 선원 2명을 조기에 북송시켜 귀순 사건의 본질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에서 은폐는 없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청와대가 처음부터 해경 보고를 받아 상황 전반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몰래 참석한 가운데 군 당국의 첫 언론 브리핑을 방조했다. 이로써 군과의 사전 허위보고 조율, 귀순사건 은폐 의혹을 스스로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북한 선원은 계획을 세워 원거리 해상 귀순한 것으로 보인다. 합동 심문이 끝나 사건 전모가 밝혀지기도 전에 조기에 선원 2명을 북한으로 송환시킴으로써 북한을 의식한 귀순 사건 은폐 및 의도된 북송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북한 눈치보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은 정부의 평화 최우선 정책으로 군의 대비태세가 허물어진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보완 대책이 요구된다.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전통적인 한·미 연합훈련이 중단됐다.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남북이 9·19 군사합의를 했다. ‘어떤 광풍이 불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김정은의 의지가 확인됐지만, 정책의 변경 없이 9·19 군사합의사항 이행을 계속 독려하고 있다.
 
특히 『2018 국방백서』는  2010년 이후에 적시해 왔던 주적(主敵) 개념을 삭제해 적이 없는 군대를 만들어 군의 대비 태세를 극도로 이완시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지난 5월 4일과 9일에 단거리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단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주장에 공감하고 있음에도 우리 군은 ‘발사체’로 규정해 여전히 분석 중이라는 입장을 유지했었다. 이 때문에 군이 정치권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9·19 평양 공동선언 이후 우리 군은 ‘적이 없는 군대’가 됐다. 6월 17일자 국방일보의 헤드라인은 ‘남북 평화 지키는 것은 군사력 아닌 대화’였다. 5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대응조치나 6·15 북한 소형 목선 귀순 사건 대응과정을 살펴볼 때 현 정부의 평화 지상 안보전략기조 하에서 군의 행동의 자유가 크게 제약을 받고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의 군사가 베게티우스의 격언이다. 그는 평화 달성의 전제조건으로 현존 및 미래 위협에 대비하라는 안보정론을 촉구하고 있다. 흔들림 없이 국방의 의무에 충실해야 할 군대에 평화를 강요하면 국방태세가 흔들린다.  
 
군인은 문민 통치의 원칙을 철저히 존중해야 하겠지만, 정치인은 군사의 고유 영역을 침해해선 안 된다. 군은 국군의 이념과 사명을 바탕으로 오로지 전투 임무 위주의 부대 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국민의 군대가 돼야 한다.
 
박정이 예비역 육군대장·전 제1야전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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