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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선] 윤석열과 검찰 개혁의 아이러니

중앙일보 2019.06.27 00:09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지난 18일 영어신문 ‘코리아 중앙 데일리’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됐다는 뉴스가 1면 머리에 실렸다. 생경한 풍경이었다. 국제부 기자로, 특파원으로 한때 외국 신문을 매일 훑었지만 검찰총장 인사 기사가 1면에 게재된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가 검찰총장이 되느냐가 국민적 관심사인, 우리랑 비슷한 나라를 알지 못한다.
 

‘검찰 힘 빼기’가 정권 숙원이지만
역대 최강 ‘특수통 사단’이 곧 포진
시간은 늘상 정권 아닌 검찰의 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배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알기 어렵게 됐지만, 기억을 되살려 보면 현 정부는 검찰이 주목받는 특이한 국가를 ‘인터내셔널 스탠더드’에 가까운 나라로 만들자는 비교적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검찰 개혁을 외쳤다. 홍만표·진경준·우병우 사건과 뒤를 이은 촛불 정국에서 검찰 권력이 괴물을 만들었다는 사회적 진단이 나왔고, 새 정부가 검찰을 제1호 적폐로 지목했다. 그 뒤 2년, 국가정보원·법원·경찰 등 다른 힘 센 조직에선 전직 수장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갔는데 검찰은 그런 화를 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 개혁’은 신상품이 아니다. 1960년 4·19 직후 ‘검찰총장은 고검장·지검장·지방변호사회장 등으로 구성되는 검찰회의에서 임명한다’ ‘경찰에 대한 검찰의 개별적 수사지휘권을 제한하고 1차 수사권을 경찰관에게 부여한다’ 등의 방안이 나왔다. 하지만 이듬해 5·16 쿠데타로 없던 일이 됐다.
 
1993년 YS(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검찰은 화를 모면했다. ‘독재 부역’ 응징은 없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은 5·18 특별법이 제정되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을 구속하며 위세를 이어나갔다. 검찰의 뛰어난 ‘효용성’이 조직의 방패가 됐다. YS 집권 말기에 그의 아들을 구속한 검찰은 ‘정의의 사도’로 각광 받았다.
 
1998년 DJ(김대중)가 집권하자 검찰은 숨죽이고 눈치를 봤다. DJ는 검찰이 간첩으로 기소하는 바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했다. 그런데 그는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점잖게 꾸짖기만 했다. 개혁은 없었고 ‘물갈이’ 인사가 있었다. 호남 출신들이 요직에 중용됐다. 경영진이 바뀌었을 뿐 사업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5년 뒤 검찰이 긴장할 만한 개혁이 시작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통치에 활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검찰 출신이 아닌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에,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던 송광수 대구고검장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검찰과의 직통 전화선(핫라인)을 끊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주려 애썼다’(『운명』)고 술회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이 전략은 패착이었다고 평가한다. ‘(검찰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운명이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을 때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쓴, 그러나 부치지는 못한 편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검찰의 공명심과 승부욕입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나날에 느낀 검찰 권력의 핵심 동력이다. 영화·드라마 주인공처럼 권력욕에 눈먼 검사는 찾기 어렵다. 검사가 무리한 일을 벌이는 것은 대부분 공명심과 승부욕 때문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가 널리 알려졌지만, 윤 지검장은 국회에서 이 말을 하기 전에 “조직(검찰)을 대단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주변엔 그 누구보다도 검사 직무에 충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흔히 ‘윤석열 사단’이라고 불리는 검사들이 있다. 적게 잡으면 30명, 많게는 50, 60명이다. 전직 대통령 두 명, 전직 국정원장 네 명,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한 이들이다. 그리고 지금의 검찰 개혁안이 그대로 실행된다 해도 검찰은 부패, 경제·금융, 공직자, 선거, 방위산업 관련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갖는다. 사실상 모든 주요 범죄를 파헤칠 수 있다.
 
윤 지검장이 예정대로 검찰총장이 되면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총장과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할 것처럼 보이는 열혈 특수통 검사들이 검찰 전면에 포진한다. ‘검찰 힘 빼기’라는 숙원을 안고 있는 정권과 역대 최강의 구심점을 갖춘 검찰이 한 배를 탄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전개될까. 추측의 실마리가 하나 있다. 정권과 검찰의 이해가 상충할 때 시간은 늘 정권 편이 아니었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 정권과 관련된 범죄 정보가 검찰에 쌓인다. 그리고 정권은 검찰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깊숙이 안다고 믿는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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