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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표류했다는 北목선, 말끔히 면도에 옷도 다림질한 듯"

중앙일보 2019.06.27 00:03 종합 10면 지면보기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께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군경의 제지를 받지 않은 채 강원도 삼척항에 들어온 뒤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북한 선원들이 삼척항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15일 오전 6시 50분께 북한 선원 4명이 탄 어선이 군경의 제지를 받지 않은 채 강원도 삼척항에 들어온 뒤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북한 선원들이 삼척항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 15일 발생한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정박을 목격한 전동진 성진호 사무장은 26일 “섬뜩한 일인 데다 다시 생각해봐도 의문점 투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 북한 사람들을 봤을 때는 신기했는데, 1시간 정도 지나니 공포감이 엄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1996년 강릉지역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떠올랐다”며 “목선을 탄 북한 인원이 무장한 침투 요원이었다면 우리는 다 죽은 목숨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삼척 정박 목격자가 말한 미스터리
“생쌀 있었지만 취사도구 안 보여
탑승자, 어민 안 입는 단추옷 착용”
오징어 잡았다는데 먹물도 안 보여

목선이 들어왔을 때 부두에서 200m 떨어진 지점에선 50명이 넘는 어민들이 수산물 경매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멍게잡이를 끝내고 뭍에서 크기 선별 작업을 하다가 목선을 목격한 전 사무장은 “군·경을 믿고 아무것도 모른 채 생업에 매진하던 마을 주민을 생각하면 경계 태세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다는 게 화가 난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장형백(68) 씨도 통화에서 “말로는 최첨단 장비로 철통 경계한다면 목선이 항구에 들어올 때까지 속수무책이었다”며 “속았다는 느낌만 든다”고 허탈해했다.
 
전 사무장은 목선의 행적을 놓고선 날이 갈수록 주민들의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 사무장은 “주민들은 북한 어민이 일주일간 표류했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행색 때문이다. 전 사무장은 “북한인 4명 중 일부러 수염을 기른 1명을 빼곤 면도를 말끔히 한 상태였다”며 “세상에 표류한 사람들이 수염을 깎았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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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에 대해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전 사무장은 “어민들은 조업선에선 그물에 걸릴 수 있어 단추 있는 옷을 입지 않는다”며 “그러나 북한 선원들은 단추 있는 옷을 입고 있어 의아했다”고 말했다. 여벌의 옷을 가져와 갈아입었다 하더라도 단추 달린 옷을 챙기는 건 어민들의 상식에 벗어난다는 얘기다. 방금 전 다림질 한 것 처럼 주름 잡힌 바지를 입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전 사무장은 또 취사도구가 눈에 띄지 않은 것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물에 젖지 않게 배 안쪽에 보관돼야 할 쌀 포대 3~4개가 배 한가운데 나와 있었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 어선에는 쌀 29㎏과 함께 양배추 6.1㎏, 감자 4.1㎏ 등 음식 재료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사도구에 대해선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정보위 관계자는 “항해 중 중국 배에 오징어를 팔고 기름을 받았다는 취지의 선원 진술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배에는 오징어 먹물 등 어업 활동을 한 흔적이 없었다.
 
지역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만 의문점들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많다고 한다. 야당 소속의 강원 지역 지자체 의원은 “작은 목선에서 하루만 있어도 노숙자처럼 초췌해지는데 일주일을 버텼으면서도 이들 선원이 약간 그을린 것 외에는 특이점이 없는 게 말이 되냐”며 “해당 목선이 침투 목적을 가지고 모선에서 떼어져 나와 반나절 정도 항해했다는 의심이 주민들에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장형백 씨는 “진상을 확실히 규명하고 주민들의 동요를 가라앉혀야 할 정부가 여전히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 생각”이라며 “사건의 장본인들을 정부가 빨리 되돌려보낸 건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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