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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균을 왜 사먹어’ 인식 깬 야쿠르트 아버지

중앙일보 2019.06.27 00:02 종합 18면 지면보기
윤덕병

윤덕병

국내 최초로 유산균 발효유 시장을 개척한 한국야쿠르트 윤덕병(사진) 회장이 26일 오전 7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92세.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71년 생산 시작, 국민간식으로 키워
‘야쿠르트 아줌마’ 여성 일자리 창출

윤 회장은 창업 당시 “균을 돈 주고 사서 먹느냐”는 비난을 무릅쓰고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에 유산균 발효유 시장을 일군 선구자다.
 
1927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 한국야쿠르트를 창업했다. 그는 우유 가공업에 축산업의 미래가 있다는 판단 아래 일본 야쿠르트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건강사회건설이란 창업이념을 바탕으로 50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1971년 ‘야쿠르트’를 국내 처음으로 생산해 판매했다. 하지만 당시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균을 돈 주고 사서 먹느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윤 회장은 이런 여론에도 유산균이 설사나 변비 예방 등에 효과적이라며 무료 시음 행사를 진행했다. 야쿠르트는 1977년 하루 판매량 100만 병을 넘어서면서 국민 간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방문판매 방식도 야쿠르트가 국민적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윤 회장은 여성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주부를 대상으로 ‘야쿠르트 아줌마’제도를 도입했다. 1971년 47명에 불과했던 야쿠르트 아줌마는 1998년 1만 명을 넘어섰다. 프레시 매니저로 이름을 바꾼 야쿠르트 아줌마는 현재 1만1000여 명이 소속된 국내 최고 판매 조직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국야쿠르트는 한국 프로복싱의 4번째 세계챔피언에 올랐던 염동균 선수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염동균 선수는 1976년 11월 일본의 로얄 고바야시를 꺾고 챔피언이 된 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한국야쿠르트 임직원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유산균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기에 이 인터뷰는 야쿠르트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윤 회장은 1976년 식품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중앙연구소는 설립 후 20년 만에 독자적인 자체 유산균을 개발해 유산균 국산화 시대를 열었으며, 현재까지 국내 식품업계를 대표하는 유산균 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고 있다.
 
윤 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을 지원하는 사업에 아낌이 없었다. 평소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이웃에게 도움을 줄 때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질 것”이라며 양로원과 보육원 등 소외된 곳을 찾아 봉사했다. 윤 회장은 장학재단을 설립하며 인재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2010년 12월에는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우덕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어린 학생에게 장학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나눔을 실천한 노력을 인정받은 윤 회장은 198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보건대상 공로상, 2008년 한국 경영인협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28일이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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