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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6월 수상작

중앙일보 2019.06.27 00:02 종합 23면 지면보기
<장원>
천은사, 붉은 점 모시나비
-남궁증 
 
몸을 치는 쇳소리가 훑고 가는 산비탈엔  
구름을 등에 지고 헐벗었던 땅의 궤적  
엎드려 평생을 살던 뼈만 남은 쇠가죽  
 
호미로 써내려간 자식걱정 일대기가  
꽃샘바람 애가 끓어 밤을 새워 울더니만  
멍든 몸 자줏빛 한숨 종루를 흔드는데  
 
이슬의 갈피마다 옷깃여민 범종소리  
접었다 펼치는 수만 번의 날갯짓이  
붉은 점 눈물방울로  
댕그렁!  
날아오른다  
 
◆남궁증
남궁증

남궁증

1960년생, 현재 강원도 태백시청 근무, 중앙시조백일장 2018년 6월 장원, 제21회(2018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금상(국무총리상).

 
 
 
 
 
<차상>
유채꽃
-이기선  
 
여인네 몇 사람이 예저기서 수군대다  
이집 저집 저녁상에 반찬으로 오르더니  
마침내 뻔한 소문처럼  
온 밭에 파다하다  
 
<차하>  
찌를 던져놓고
-여운    
 
휘감아 내던지면  
펄럭이는 하늘자락  
 
삭여온 울분일까  
닻줄도 못 내리고  
 
따라온 푸른 집착만  
찌를 던져 놓는다  
 
반평생 넓힌 품에  
꼬인 줄을 풀어준다  
 
눈먼 길 일으켜줄  
은비늘을 기다리며  
 
바람에 흔들릴망정  
낡은 뼈대 꼿꼿하다  
 
<이달의 심사평>  
점차 뜨거운 햇볕에 이끌리는 계절이다. 나뭇가지의 터진 틈으로 햇살을 만나듯, 새로운 이름들이 눈에 띈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장원에 오른 남궁증의 ‘천은사, 붉은 점 모시나비’는 어머니의 일대기를 쇠가죽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의 날갯짓에 겹쳐놓는다. “호미로 써내려간” 몸의 역사가 나비 문양에서 울려 나오는 쇠종 소리에 실리기까지 간곡한 몸의 헌사가 있었다. 그 겹의 의미를 “멍든 몸 자줏빛 한숨”으로 읽어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 마침내 끝에서 “붉은 점 눈물방울로/ 댕그렁!/ 날아오른다”고 했을 때 초월적 비전마저 느껴진다.  
 
이에 비해 차상으로 선한 이기선의 ‘유채꽃’은 동봉한 다른 작품과 함께 단시조의 함축미를 보여준다. 여인네의 수다와 함께 자란 유채꽃이 “온 밭에 파다”해질 때 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도 이미 “뻔한” 것이 되고 만다. 여기서 유채꽃은 인간사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차하에는 여운의 ‘찌를 올려놓고’를 올린다. 꼿꼿한 결기를 드러내는 이 시조는 현존의 부박함을 애써 감추면서도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힘이 있다. 이 밖에도 임정봉, 황남희, 김정애, 이인환 등의 작품이 끝까지 경합을 벌였다. 분발을 당부드린다.
 
심사위원: 염창권·이종문(대표집필 염창권)
 
<초대시조> 
시간 밖에서
-김정연
 
먼 우리
즈믄 해 건넌 바람인 줄 알고부터
 
숨결 마디마디 청대를 심었습니다.
 
깊은 밤
대숲 감도는 궤나* 소리
 
당신인가요?
 
*잉카인들은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그 정강이뼈로 악기를 만들어 떠난 이가 그리울 때마다 불었다.
 
◆김정연
김정연

김정연

200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당선, 시집 『꿈틀』.

 
 
 
 
 
 
 
시간을 안과 밖으로 나눌 수 있을까? 보통의 경우에 그것은 추상적 관념의 언어일 테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니 어쩌면 철학의 명제로 삼기에 좋은 주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시간의 개념을 두고 안과 밖의 기준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가진 인식의 세계 일뿐이므로. 시인이 상상하는 영역에는 그 어떤 한계도, 그 무슨 제한도 걸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 밖에서’라고 전제하는 것은 “시간 안”의 세계를 들여다보거나 움직이는 소리를 듣거나 생사의 여정을 사유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므로 화자가 인식하는 ‘시간 밖에서’는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며, 사랑하고 헤어지는, 시간 안의 속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시간 밖’을 인식하는 화자는 시간 안의 사람에게 오감을 작동하게 해 시간 밖의 어떤 절대적 그리움의 대상을 수시로 호출한다. 이미 먼 곳에 있는 당신이 ‘즈믄 해 건넌 바람인 줄 알고부터’ 내 마음 속에서 당신과의 인연은 불어오고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임을 알았으므로, ‘숨결 마디마디 청대’라도 심어서 기억하겠다는 다짐은 참 눈물겹다.
 
불어왔다 스쳐가는 바람이 ‘깊은 밤 대숲 감도는 궤나 소리’로 환치되는 것은 뼈에 사무친 그리움을 환기한다. 그리움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존재에겐 ‘바람’이나 ‘청대’나 ‘궤나 소리’는 그저 시간의 강 위에 떠다니는 부유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만, 화자는 깊은 밤에 그리움을 어찌할 수 없어서 문풍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도 ‘당신인가요?’라고 묻고 또 물을 뿐이다.
 
김삼환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won.minji@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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