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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형의 퍼스펙티브] 갈등 법안은 5년 이후 시행한다 못 박고 논의하자

중앙일보 2019.06.27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사회 갈등 줄이는 ‘미래 입법’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미래는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사건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경우 우리 마을이나 우리나라의 일만 고려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기술 발전이 가속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더욱 많아진다. 기술의 도움으로 전 세계가 긴밀히 연결돼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미래를 내다보기를 갈망한다. 그래서 미래 예측은 인간에게는 숙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불확실하지만 예측하고 그것에 맞게 계획을 세워 오늘을 살아간다.
 

여야 이해관계 달라 꽉 막힌
개헌·선거법·규제개혁 논의
발효를 5년·10년 후로 잡으면
직접 이해 벗어나 합의 가능

미래 예측은 기본적으로 사물을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대상 사물은 5년 후, 또는 10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물은 현재의 관점을 떠나서 미래로 이동하여 바라보면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예측된 미래이다. 그리고 이렇게 미래로 이동하여 사물의 모습을 보면서 결정하는 것을 미래 지향적 의사결정이라 말할 수 있다.
 
미래의 시점에 일어날 상황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순서대로 상호작용하여 미래를 형성해 간다. 미래는 아직 핵심 요소들의 결합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미래 속에서는 사건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위치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고, 나의 이해관계가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즉 이해관계를 따져서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먼 미래를 말할 때는 비교적 객관적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눈앞의 이익 벗어나는 미래 입법
 
교착 상태에 빠진 협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제3의 방안을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협상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차이가 있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협상은 갈등 국면으로 빠져들어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사용하는 방법이 제3의 방안을 찾는 것이다. 쌍방의 주장과 다른 새로운 안을 만드는 것이다.
 
제3의 방안은 쌍방의 안을 절충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안이 될 수도 있다. 제3의 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그동안 갇혀 있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윈-윈 관계가 형성되어 타협될 가능성이 있다.
 
협상에서 제3의 답을 찾는 방법은 미래학에서 현재 시점에서 벗어나 미래 시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미래 시점에서 논의하면 새로운 상황이 설정되어 집착하던 눈앞의 이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다.
 
나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 미래학적인 토론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입법은 그야말로 국가 미래를 정하는 일이다. 개인과 정파의 이해관계 속에 만들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눈앞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바로 ‘미래 입법’이다. 지금 법을 개정하되 발효 시점을 미래로 명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법안의 발효 시기를 5년이나 10년 후로 못 박고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논의 내용과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찾기 어렵게 된다. 미래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고, 나의 경쟁자가 누가 될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따라서 객관적인 태도로 바뀌기 쉽다. 5년 후에 이것이 나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논의하면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여 합의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행 시점을 미래로 하는 규제 개혁
 
현재 수면 아래로 내려가 있는 헌법 개정 논의도 마찬가지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 논의는 매번 좌절되고 만다. 당장 적용할 헌법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차기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정치 리더들은 개헌이 국가의 일이기보다 자기 일처럼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이해관계가 선명하게 계산이 되기 때문에 눈앞의 이익을 양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럴 때 개정 헌법의 적용 시기를 10년 후로 미루어 놓고 논의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10년 후에는 내가 출마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러면 개헌이 자기 일이라기보다, 국가와 국민의 일로 생각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에 우리나라 법안에도 이러한 미래 입법의 사례가 있다. 미터법은 1963년 ‘계량에 관한 법’으로 시행되었지만, 건물과 토지에 대한 미터법은 83년부터 적용하였다.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게 하는 ‘도로명주소법’은 2006년에 제정되었지만 8년의 준비 기간을 주어 2014년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필자가 근무하는 KAIST에서도 이러한 방법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제도 개선을 위하여 논의할 때 곧바로 적용한다고 하면 논란이 길어진다. 원칙적으로 찬성이지만 시행할 때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한다. 그런데 개선안의 적용 시기를 몇 년 후로 미루어 놓고 논의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고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래 입법의 방식은 규제 개혁에도 적용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대립하고 있는 택시와 공유 차량 이슈도 적용 시기를 5년이나 10년 후로 미루어 놓고 논의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완전 적용 시점 이전에 몇 개의 중간 단계를 중간 목표로 정하고, 단계별로 부작용을 줄이는 보완 조치를 하도록 만든다. 원론에서는 찬성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여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원격 진료와 개인정보 보호 이슈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은 논의 시작한 지 몇 년이 흘렀다. 이것들은 논의 초기에 시행 시기를 뒤로 미루고 개정했더라면, 지금쯤은 시행하고 있을 것들이다.
  
오늘 절대적인 게 일 년 후 별것 아닐 수도
 
우리 사회의 일자리 이중구조 문제도 그렇다. 우리나라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변경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우리 산업 규모가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흡수할 정도로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자리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중간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다시 말해서 신분 보장이 중간 정도 되는 ‘중간직’을 신설하자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현재의 정규직을 깎아내릴 수 없다. 신규 채용하는 사람부터 새로운 제도를 적용하면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20년 후에는 나라가 변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루도 고민이 없는 날이 없다. 그런데 일 년 전 오늘에 내가 어느 고민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이 아닌 것들이 많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오늘 절대적으로 심각한 일도 일 년 후에는 별것이 아닌 것으로, 기억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로 이동하여 생각해보면 오늘의 집착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미래를 결정하는 제도 개선에는 현재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10년 후 미래로 이동하여 바라보면 내가 보이지 않고 대한민국이 보일 것이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 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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