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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쓴 ‘화염과 분노’ 이란에 쓰는 트럼프…“실익 없다” 회의론

중앙일보 2019.06.26 16:31
미국이 이란 최고지도부를 겨냥해 경제 제재를 단행한 데 이어 ‘말살’(obliteration)이란 단어까지 꺼내 들며 군사작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에 경제 제재를 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신장애” VS “말살” 말폭탄 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이란이 미국을 공격한다면 압도적 힘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지역에서 압도적이라는 것은 말살을 의미할 것”이라며 “미국의 군사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라고도 강조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최고지도자실, 혁명수비대 장성 8명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과 관련,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백악관이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다”고 맹비난한 데 대한 맞대응으로 풀이된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날 국영방송을 통해 중계된 내각회의에서 “이번 제재는 미국이 이란을 상대하다 좌절했다는 방증”이라며 이처럼 비난했다.

“강경 수사와 압박으로 합의 견인” 의도지만
“북과 이란 상황 달라, 긴장감만 높여” 지적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에도 미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과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만약 일어난다면 이제껏 결코 본 적이 없었던 말살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CNN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압박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거론하며 북한을 위협했던 때를 상기시킨다”고 이날 보도했다. 위협을 통해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고 결국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전술을 이란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2017년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실험을 두고 “미국을 더 협박하면 이 세계가 일찍이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노골적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그러다 1년 뒤 북·미정상회담을 가졌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모라토리엄(실험 중단)을 유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최대 압박으로 인해 얻어진 성과라고 자평해 왔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EPA=연합뉴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란에도 같은 전략 통할까
 
그러나 이런 압박술이 이란에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회의적 입장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CNN은 “이란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예를 따를 것이란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앞서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도 지난달 CNN에 “북한에 효과가 있었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이란에 같은 전략 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고립국가 북한과 이란은 상황이 달라 이란만 자극할 뿐 실익은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에 대해선 중국과 러시아까지 가세해 미국의 강경 제재에 힘을 실어줬지만, 대이란 제재엔 그만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부족해서다. 그간 미국은 ‘이란이 핵 합의를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란 정권의 위험성을 줄기차게 강조해왔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비지니스 인사이더는 “이란 경제를 무력화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최대 압박 전략에 프랑스, 독일, 영국 같은 핵심 우방국들이 동참한다면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이란 핵 합의 탈퇴 탓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전쟁 공포 재연
전문가들은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살 경고에 오히려 강대강으로 나서면서 중동발 전쟁 위기가 고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예측불허인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을 향해 군사 공격 카드를 실행할 가능성도 있다.
 
컨설팅기업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대표는 미국의 추가제재가 “말만 요란한 것일 뿐”이라며 “군사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하이 리스크-하이 리워드’(큰 위험 큰 보상)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우드로 윌슨 센터의 아론 데이비드 밀러는 “이란을 쥐어짜는 것이 테이블로 끌어들일 것이란 가정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란이 미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대응할 방법을 모색할 경우 “더 많은 돌발상황과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CNN은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중앙포토]

영국 BBC의 조나단 마르쿠스 국방 분야 통신원은 이란이 이라크나 시리아 등을 동원해 보복에 나설 수 있다고 썼다. 극단적으로는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지원하기 위한 이스라엘 로켓 공격을 감행해 중동 위기를 키울 수 있다고도 그는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며 이란에 올리브 가지를 내놓고 있지만 이란은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가며 내놓는 이런 협상 제안엔 응할 수 없단 입장이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이 이란의 영공이나 영해를 다시 침범한다면 정면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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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이란 정부는 예고한 대로 다음 달 7일 핵 합의 이행을 더 축소하겠단 계획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은 이날 전했다. 앞서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지 1년이 되던 지난달 “60일 안에 유럽이 적절히 응답하지 않으면 핵 합의 이행을 축소하는 2단계 조처를 단행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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