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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사라져 학교에 갈 수 없었다는 포르투갈 소녀

중앙일보 2019.06.26 11: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24)
복잡할 것도 없는 골목을 돌다가 두 번이나 같은 마을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길을 잃고 안개 풀숲을 헤매다가 다시 왔던길로 돌아나와야 했다. [사진 박재희]

복잡할 것도 없는 골목을 돌다가 두 번이나 같은 마을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길을 잃고 안개 풀숲을 헤매다가 다시 왔던길로 돌아나와야 했다. [사진 박재희]

코임브라(Coimbra)를 향해 걷던 날은 그런 날이었다. 아무리 가도 같은 자리를 맴돌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만 같던 날.
 
새벽 달이 지기도 전에 헤드 랜턴을 켜고 출발했는데 당장에라도 담을 넘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짖어대는 개들에 혼이 빠져 마을에서 나오는 길부터 헤맸다. 복잡할 것도 없는 골목을 돌다가 두 번이나 같은 마을 광장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숲에서도 길을 잃었다. 안개가 짙었지만 해가 뜬 후라 어둡지도 않았는데 잔풀이 무성한 길을 이리저리 헤맸다. 방향을 잃었다가 겨우 만난 고양이를 뒤를 따라 나와야 했다.
 
코임브라(Coimbra) 지명은 코임브라가(Conimbriga)의 주교좌를 이전해 온 이후 생겼다. [사진 박재희]

코임브라(Coimbra) 지명은 코임브라가(Conimbriga)의 주교좌를 이전해 온 이후 생겼다. [사진 박재희]

 
세 번째는 염소를 끄는 아주머니를 본 후였다. 제대로 까미노 표식을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길은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막다른 공간에서 끊어졌다. 가던 길을 되짚어 오며 놓친 표식을 찾아야 했다.
 
길만 잃은 게 아니었다. 개들에 혼비백산하고 숲에서 헤매는 동안 땀 닦는 타월을 세 개나 잃어버렸다. 친구가 응원의 의미로 선물했던 초건속 타올과 흙먼지를 피해 마스크처럼 쓰던 작은 손수건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렸다고 치자.
 
그런데 제법 커다란 샤워 타올은 내가 뻔히 보고 있는데 마치 낚싯줄에 당겨가듯 바람에 돌돌 말리더니 벼랑으로 날아갔다. 어이가 없었다. 헤매고 잃어버리는 날이다.
 
염소를 끄는 아주머니를 본 후 제대로 표식을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길은 막다른 공간에서 끊어졌다. 가던 길을 되짚어 오며 놓친 표식을 찾아야 했다. 풀밭도 아닌 마을길에서 염소를 산책시키던 아주머니. [사진 박재희]

염소를 끄는 아주머니를 본 후 제대로 표식을 따라갔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진 길은 막다른 공간에서 끊어졌다. 가던 길을 되짚어 오며 놓친 표식을 찾아야 했다. 풀밭도 아닌 마을길에서 염소를 산책시키던 아주머니. [사진 박재희]

 
오전 내내 불가사의한 헤매기를 반복하다가 코님브리가(Conimbriga)에 도착했다. 코님브리가는 코임브라 남서쪽 16km에 위치한 곳으로 아에미니움(Aeminium)이라고 불렸던 고대 코임브라의 로마 유적지이다.
 
평소라면 서둘지 않고 찬찬히 코님브리가를 둘러봤을 텐데 그날은 허둥허둥 시간을 흘러버린 상태라 후다닥 유적지를 건성으로 돌았다. 더 지체했다가는 코임브라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은 더 급해졌다.
 
코임브라는 리스본에서 산티아고까지 가는 675km 포르투갈 순례길의 도입 부분이 끝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거리상으로도 삼 분의 일 지점쯤에 있다.
 
리스본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 옛날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였던 코임브라는 유럽의 5대 대학도시 중 하나이고, 문학과 예술, 특히 16세기 인문주의를 꽃피운 중심이었다. ‘아름다운 중세도시 코임브라’는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리스본과 포르투 못지않게 마음을 끌었다.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 직접 제작한 특별한 지팡이가 힘을 준다며 가지고 다녔다. [사진 박재희]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 직접 제작한 특별한 지팡이가 힘을 준다며 가지고 다녔다. [사진 박재희]

 
새벽부터 마음은 일찌감치 코임브라에 가 있는데 어쩌자고 종일 가도 가도 나갈 수 없는 미로에 빠진 것만 같았다. 순례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불행한 마음마저 들면서 급기야 걷는 것 마저 지루했다. 그때 장피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완벽해! 정말 멋진 날, 안 그래?”
 
조금 엉뚱한 이 프랑스 아저씨와는 며칠 전에 한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세심하게 깃털까지 붙여서 만든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틈이 나면 돈키호테 흉내로 웃음을 유도했다. 감탄주의자 장피엘은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걷기에 완벽한 날이라며 만세를 불렀다.
 
“…. 그나저나 코임브라까지는 얼마나 걸릴까요? 길을 헤매서 계획보다 늦었어요.”
“뭐하러 서둘러? 코임브라는 그냥 거기 있을 텐데.”
 
내 마음이 급할 때는 상대의 느긋함이 거슬린다. 유적해설을 듣고 가자는 장피엘을 물리치고 서둘러 출발했다.
 
산을 몇 개나 넘어야 하는지 계속되는 오르막은 힘들었다. 언덕을 수없이 넘은 후 유난히 빨래 걸린 집이 많은 마을 입구에서 〈코임브라까지 10km〉라는 표지판을 봤다. 늦은 점심 먹는 시간을 넣어도 세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힘을 내서 한참을 걸었는데 다시 나타난 표지판에 남은 거리는 외려 늘어나 있다. 어리둥절 기다란 마을 길을 거의 지나왔건만 아직도 남은 거리는 10km. '대체 무슨 이런 동네가 있어? 엉망진창 정확한 게 하나도 없잖아!’ 덥고 힘들고 조바심이 났다.
 
코임브라는 인구 15만이 넘는 포르투갈 중부의 대학도시이다. 순례자뿐 아니라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늦게 도착하면 좋은 숙소를 구하기 힘들 거라고들 했었다. 하필 시에스타로 문을 연 카페도 없는 마을 벤치에 앉아 난 혼자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씩씩거리고 있는데 가느다란 소녀가 다가오더니 내 앞을 막아섰다.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려 학교를 가는 대신 동네 공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양이 찾기 전단지를 붙이던 소녀 비앙카. [사진 박재희]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려 학교를 가는 대신 동네 공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양이 찾기 전단지를 붙이던 소녀 비앙카. [사진 박재희]

 
“제 고양이, 베르니스가 사라졌어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내가 앉은 벤치 옆 나무에 무언가 붙어있었다. 고양이를 찾는다는 전단지였다. 소녀가 전단지와 테이프를 들고 있는 게 그제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 비앙카가 전단지를 붙이는 것을 도왔다.
 
“고양이가 사라졌으니 학교에 갈 수 있겠어요? 종일 베르니스만 찾으러 다녔어요” 비앙카의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딸이 학교에 가지 않았는데 화가 났다거나 혀를 끌끌 찬다거나 그런 종류의 표정이 아니다. 하다못해 아이를 구슬려보려는 것도 아니다. 슬퍼하는 아이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고 해야겠다. 게다가 지나는 동네 사람들도 같은 표정이다.
 
그들 사이의 말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확실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무언가 묻고, 짧은 한숨을 쉬고 그리고 더할 수 없이 심각한 대화가 오갔다.
 
꽃 이름을 물었더니 웃으며 알몸의 숙녀(naked lady)라고 했다. 줄기에 잎이 하나도 없어 붙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비앙카와 전단지를 붙이고나서 받은 선물. [사진 박재희]

꽃 이름을 물었더니 웃으며 알몸의 숙녀(naked lady)라고 했다. 줄기에 잎이 하나도 없어 붙은 이름이 아닌가 싶다. 비앙카와 전단지를 붙이고나서 받은 선물. [사진 박재희]

 
‘고양이를 잃어버린 아이라면 슬퍼서 학교에 갈 수 없는 거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르나체(Cernache), 무명의 작은 마을에서 내 안에서 일종의 화학작용이 일어난 걸까? 신기하게도 얼마간 짜증스럽게 조급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사라졌다.
 
코임브라 입성기념으로 수도교 앞에서 셀카를 찍으며 기뻐했다. 거기부터 3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을 몰랐다.[사진 박재희]

코임브라 입성기념으로 수도교 앞에서 셀카를 찍으며 기뻐했다. 거기부터 3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것을 몰랐다.[사진 박재희]

 
나는 그날 코임브라에 입성하지 못했다. 몬데구강(Rio Mondego)을 건너 언덕을 빼곡히 채운 붉은 지붕이 보이는 수도원까지 갔을 때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세르나체에서 고양이 찾기 전단지 붙이는 걸 조금 도와주고, 비앙카와 아몬드 파이를 먹으며 시간을 지체한 탓, 아니 덕분이다.
 
노을이 차오르는 코임브라를 향해 발을 재촉하는 대신 나는 오던 길을 거슬러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를 물들이던 석양이 사라지고 그 하늘 위로 달이 뜰 때까지 앉아 짧은 일기를 썼다. 
 
강너머 코임브라를 바라보며 가방을 내렸다. 목적지에 닿지 못했지만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된 날. [사진 박재희]

강너머 코임브라를 바라보며 가방을 내렸다. 목적지에 닿지 못했지만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된 날. [사진 박재희]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것이 학교에 가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을 만나서 기뻤다고. 장피엘 말대로 코임브라는 그냥 거기 있더라고.
 
코임브라를 만날 때마다 꼭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그날은 계획이 틀어지고, 잃어버리고, 헤매서 참 좋은 하루였다.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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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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