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10살 여아 강간, 법원은 왜 "징역 3년이 정의"라 했나

중앙일보 2019.06.26 05:00
박사라 기자의 판결 다시보기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 캡처.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 캡처.

 
‘아동성폭행범을 감형한 OOO판사를 파면해주세요“

 
열흘 전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수가 25일 기준 13만명을 넘었습니다. 최근 불거진 ‘10세 여아 성폭행 감형 논란’의 파장이 아직도 뜨겁다는 걸 보여주는 듯합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지난해 4월 가출 상태였던 10살 초등학생 A양은 한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합니다. 도와줄 어른을 찾던 A양에게 접근한 이는 35세의 보습학원 원장 이모씨. 그는 A양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 뒤 소주 2잔을 먹였고, 양손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한 상태에서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성인이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할 경우 받는 처벌은 크게 두 종류입니다. 강압적으로 했다면 형법상 미성년자 강간, 합의로 했다면 형법상 미성년자의제강간이 됩니다. 결국 폭력적 행위 유무의 차이인데 형량은 강간이 훨씬 높습니다. 1심에서는 이씨에게 강간 혐의가 적용돼 징역 8년이 선고됐는데, 2심에서 의제강간으로 바뀌며 형량이 3년으로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재판부의 해명을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폭행의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이 부실하게 이루어졌다. 둘째, 그런데도 피해자가 법원에서 나와 추가 증언을 하지 않았다. 셋째, 따라서 원래 무죄가 나와야 할 사건이지만 재판부가 의제강간을 인정해 유죄로 인정했다.
 
이런 세 가지 설명은 '법원도 노력할 만큼 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가 10세 여아와 35세 남성과의 성관계를 '합의'로 결론 내리며 부담을 느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한 근거는 뭘까요. 
 
“누르기만 했어?” ‘끄덕’…성폭행 증거되나
우선 영상에 녹화된 조사 상황은 이렇습니다. A양은 피해 발생일로부터 약 2주 뒤인 지난해 5월 한 기관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시간 동안 피해 사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조사관이 계속 설득하자 밤 10시가 되어서야 입을 열었는데 ”직접 폭행이나 협박을 당하진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조사관이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고 묻자 A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여기서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립니다. 1심은 이 영상에서 특별히 조사가 부실하거나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봤습니다. 성폭행 피해 아동이 조사에 소극적으로 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범죄 발생 경위에서부터 범행 과정에 이르기까지 그 진술이 자연스럽고 구체적이어서 범행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하기 어려운 진술인 것으로 보인다”고 썼습니다. 
 
1심은 ‘그냥 누르기만 한 것’도 10세 여아에겐 충분히 저항하기 어려운 폭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출한 상태에서 낯선 어른의 집에 단둘이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겁니다. 오히려 A양이 심한 폭행을 당한 것처럼 과장해 말하지 않아 진술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도 봤습니다. 1심은 “피해자가 굳이 나와 두 번 증언할 것 없다”며 피해자 신문조차 잡지 않았습니다.
 
증언 괴로운 피해자들, '증명' 필요한 법원의 고민 
반면 2심은 이 정도로는 진술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통상 성폭행 수사는 물증이 거의 없는 특성상 피해자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피해 상황을 진술할 것을 요구합니다. 피해자는 어떻게 저항했고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제압했는지, 어느 부위를 얼마나 큰 힘으로 눌렀는지, 그때 느낀 감정은 무엇인지 등을 말입니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중앙포토ㆍ연합뉴스]

 
이는 어린 10대 성폭행 사건에서도 드물지만 ‘거짓 신고’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도 메신저로 만난 중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 술을 먹인 뒤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20세 남성이 1·2심에서 잇따라 무죄 선고된 사건이 있습니다. 여중생이 합의로 성관계를 한 뒤 학교에 소문이 나자 당황한 나머지 ”성폭행을 당했다“며 둘러댄 게 법정에서 드러나면서입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법정에 나와 추가로 증언할 기회를 줬지만 이뤄지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A양의 어머니가 대신 증인으로 나와 좀 더 구체적으로 증언하긴 했지만 전문진술(전해 들은 말) 이라는 이유로 증거채택이 불발됩니다. 신진희 변호사(법률구조공단 피해자국선전담)는 “어린 아동의 경우엔 성폭행에 대한 기억을 진술하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입을 아예 다물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 경우 기본적으로 해야 될 증명을 안 할 수도 없고 법원이 엄청난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10세 아동에게도 일반적인 폭행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 대해선 논란이 나옵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술에 취한 열살 짜리 아동에게 일반 성인 여성과 같은 수준의 구체적인 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수사과정에서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신진희 변호사는 “아동이 입을 열지 않으면 좀 더 천천히 시간을 두고 몇 번이고 다시 조사하는 게 맞다”며 “가해자를 빨리 구속하는 등의 수사 진행이 급하다 보니 피해자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진술 계속 바뀐 학원장…3심에 어떤 영향 미칠까
이 사건엔 다른 측면도 있습니다. 피고인인 이씨가 진술을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 겁니다. 이씨는 처음에는 A양과 성관계 한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하다가 DNA 검사에서 관련 흔적이 나오자 "합의된 성관계"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그가 옷을 벗은 채 잠든 A양의 사진을 몰래 찍어놓은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이씨는 ”A양이 13살 미만인 줄 몰랐다“는 주장도 했지만 이 또한 믿기 어려웠습니다. 피해자의 외모나 목소리, 말투가 남다르게 성숙해 보이는 편은 아니었고 이씨와 3시간가량 게임을 하며 대화할 시간도 있었습니다. 또 이씨는 처음에는 A양이 ”성인인 줄 알았다“고 하다가 나중엔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앞으로 남은 상고심에서는 이런 부분도 면밀하게 다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단죄'와 '법리' 사이…정의란 무엇인가.
이번 논란은 법과 사회와의 괴리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법원은 법리적으로 ‘무죄’가 나올 만한 사건인데 혐의를 비틀어 ‘징역 3년’이라고 선고한 것에 스스로 의의를 뒀습니다. 강간 입증이 어려울 것 같으면 검사가 ‘의제강간으로 해달라’며 공소장 변경을 해야 했는데, 이런 절차를 밟지 않았음에도 법원이 직권으로 인정해줬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형사소송법의 이념인 정의와 형평을 고려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성룡 기자.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김성룡 기자.

 
하지만 여론은 싸늘합니다. 여성변호사회는 “법정형 중 가장 낮은 형량”이라며 “사실관계와 법리 검토에 충실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양형 단계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수렴하려는 노력을 통해 법과 사회와의 괴리를 최소화했어야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성년자의제강간의 대법원 양형 권고 기준은 징역 3~5년인데 최소한 4~5년이라도 선고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아예 의제강간죄의 형량을 높이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미성숙한 아동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어른을 단죄해주길 바라는 사회. 사실관계와 법리, 절차에 충실하려는 법원. 법원의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을까요.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기자 정보
박사라 박사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