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무산된 한·일 정상회담, 조속히 성사시켜야

중앙일보 2019.06.26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막판까지 추진되던 오사카 G20 회의에서의 한·일 정상회담이 결국 물거품이 됐다. 어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항상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회동 불발을 기정사실화했다.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지난 22일 “G20 회의 주최국 의장이므로 (양자회담) 일정이 꽉 차 있다”며 정상회담 불발을 밝혔었다. 시간 부족을 핑계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 셈이다. 그러자 청와대 측도 이에 질세라 “우리도 양자회담 일정이 거의 다 찼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만남을 더 원했던 건 한국 쪽이었기에 우리로서는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그냥 두면 단교 수준으로 관계 악화돼
외교 고립 피하려면 한·일 관계 풀어야

이번에 추진되던 정상회담은 최악의 한·일 관계를 되돌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아 온 자리였다. 하지만 안 좋은 모습으로 틀어져 화해의 장이 되기는커녕 감정의 골만 재확인한 꼴이 됐다. 옆 나라 지도자가 논의할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행사 주최국 정상에게 만남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상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두 나라 간에는 강제징용 판결로 불거진 갈등에다 북핵 위기 등 함께 풀어야 할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강제징용 문제는 피해자들이 압류된 일본 기업 재산에 대한 현금화 신청을 낸 상태여서 조만간 집행이 이뤄질 태세다. 시한폭탄의 도화선이 계속 타들어 가는 셈이다.
 
이대로 두면 일본 기업 재산이 현금화된 뒤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집행된다. 이럴 경우 아베 정권은 그간 숱하게 공언한 대로 보복 조치에 착수할 게 분명하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일본의 보복성 조치가 나온다면 (우리 정부도) 가만있을 수는 없다”고 공언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두고 보복에 재보복이 이어지면, 양국 간 관계는 단교(斷交)에 버금가는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데 대해 양국 지도자와 정부는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내달 참의원 선거를 코앞에 둔 아베 총리나 경기 부진에 고민하는 문재인 대통령 모두 악화된 한·일 관계와 격앙된 민족주의를 국내 정치에 이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일 관계가 갈수록 틀어지는 사이, 2~3년 전까지도 으르렁대던 일본과 중국은 빠르게 밀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내년 봄께 일본에 국빈 방문해 달라고 요청할 거라고 한다. 이러다간 한국은 동북아의 완벽한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먼저 관계를 개선할 나라가 바로 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으로 봐선 이번 G20 회동이 무산되면 다자간 정상회의 등을 통해 자연스레 만날 기회는 당분간 없다. 그러니 정부는 G20 회의에서 내실 있는 만남이 이뤄지게 만들든지, 아니면 가능한 한 빨리 해법을 만든 뒤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할 것이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