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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멋대로 교과서 수정, 일개 과장이 주도한 게 말이 되나"

중앙일보 2019.06.25 11:23
교육부 세종청사 전경

교육부 세종청사 전경

교육부의 불법 교과서 수정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시 집필 책임자였던 박용조 진주교대 교수가 입을 열었다. 박 교수는 “교과서가 시중에 나온 뒤에야 무단 수정 사실을 알았다”며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공문서 위조까지 해가며 교과서를 수정한 것은 윗선이 개입하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교과서는 지난해 3월 개정·배포된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로 집필책임자의 허락 없이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으로 고쳐 썼다.  
 

집필책임자 박용조 교수 인터뷰

 박 교수는 25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권으로부터 학자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할 교육부가 오히려 정권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무단으로 고치는 것은 학생들 앞에 떳떳할 수 없는 일”이라며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현 정부의 철학과 매우 상반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수립’이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냐 같은 예민한 문제를 일개 과장 주도로 했을 리 없다”며 “분명히 그보다 윗선이 개입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처음 교육부가 수정 요청을 한 것은 언제인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9월쯤 교육부 담당 연구사가 연락했다. 다른 내용에 대한 지적은 없었고 오직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고쳐 달라고 했다. 그러나 새롭게 고쳐야 할 근거와 명분이 없었기에 거절했다.”

 
과거에도 교육부가 내용을 바꿔 달라고 한 사례가 있나.
“그렇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교과서 집필 작업을 했다. 그러다 2013년 책임 집필자가 됐다. 2015년 하반기에는 반대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때도 역시 수차례 거절했다. 왜냐하면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되는 ‘2009 교육과정’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엔 교육부 요청대로 교과서 내용을 고쳤다.
“2016년 1월이다. 그 당시 ‘2015 교육과정’이 새로 나왔다. 여기에는 또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돼 있다. 새 교육과정에 해당 내용이 명시돼 있었으므로 이에 따라 교과서를 수정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선 그런 원칙과 근거가 없었다는 이야긴가.
“그렇다. 교과서는 개인 저서가 아니기 때문에 학자의 이념 성향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집필돼야 한다. 즉 원칙과 근거에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2017년 교육부는 그런 명분 없이 그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넣어달라고 했다.”
교육부의 교과서 불법 수정이 있던 2017년 당시의 김상곤 장관. [연합뉴스]

교육부의 교과서 불법 수정이 있던 2017년 당시의 김상곤 장관. [연합뉴스]

 
 현재 이 사안은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2017년 9월 교육부 A과장은 B연구사를 통해 박 교수에게 교과서 내용을 수정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박 교수가 이를 거부하자 수정작업에서 배제했고, 그 대신 부산교대 C교수가 대신 수정을 맡도록 조치했다. 2018년 3월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213곳이 수정된 교과서가 전국 6064개 초등학교 43만명의 학생들에게 배포됐다. 
 
이 사실을 언제 알았나.
“2018년 3월 5일이다. 교과서가 공개되고 난 뒤 알았다. 연구책임자에 내 도장까지 찍혀 있었다. 엄연한 공문서 위조다. 당시 교육부에는 이제라도 수정 주체를 교육부로 바꾸면 용인하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본인 직인을 교육부가 날조한 것인가.

“보통 출판사에 도장을 맡겨 놓는데, 그 도장을 찍은 것이다. 본인의 허락 없이 무단으로 찍었기 때문에 불법이다. 그러나 출판사는 ‘을 중의 을’이다. 교육부가 지시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 검찰도 과장까지만 기소했는데 그것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더 윗선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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