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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새우 등 터진 한국의 생존법

중앙일보 2019.06.25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화웨이 분쟁으로 미·중 양쪽에서 시달리는 한국. 영락없이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다. 화웨이 제품을 절대 쓰지 말라는 미국과 안 쓰면 가만 안 두겠다는 중국 틈에 끼여 어쩔 줄 모른다. 그저 28·29일 오사카 G20 회의 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대타협이 있기만 기다리는 신세다.
 

제2, 제3의 화웨이 사태 시간문제
일단은 눈치껏 대응하는 게 정답
결국 미·중 안보·무역 의존 줄여야

화웨이 갈등은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니다. 기존의 지배세력인 미국과 부상하는 신흥세력 중국 간의 충돌이 표면화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제2, 제3의 화웨이 사태가 불거지는 건 시간문제다. 실제로 지난 21일 미 상무부는 ‘중커수광(中科曙光)’ 등 슈퍼컴퓨터 관련 중국 업체 5곳도 거래제한 리스트에 올렸다. 온갖 구실을 대지만 숨은 의도는 첨단기술 분야 내 중국의 질주를 막겠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에게 미국은 동맹국이고 중국은 최대시장이다. 어디도 섣불리 내칠 수 없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단기적으론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그저 눈치껏 대응하는 게 답이다. 화웨이의 경우 미국이 전 세계를 압박하지만, 동참국은 4~5개에 그친다. 일본·호주·뉴질랜드·캐나다 정도다. 아프리카·동남아는 물론 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나라들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화웨이 금지를 거부했다.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라는 영국조차 논쟁 중이다. 그러니 우리도 딴 나라 사례를 거론하며 “화웨이가 기밀을 빼간다는 증거가 나오면 즉각 그만 쓰겠다”고 약속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건 어떨까.
 
당장은 어찌어찌 넘기더라도 장기적으론 미·중에 대한 안보 및 무역 의존을 줄여야 한다. 우선 대중 무역 의존은 고질병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한국이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높이자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 김대중 정부가 결국 백기를 들었던 2000년 ‘마늘 파동’ 때도 경보는 울렸다.
 
하지만 걱정은 그때뿐, 2000년 수출 비중 순위상 미국 (21.8%), 일본(11.9%)에 이어 3위였던 중국(10.7%)은 빠르게 주요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결국 순식간에 독보적 1위로 등극해 지난해에는 2·3위인 미국(12.0%), 베트남(8.0%)의 2~3배가 넘는 26.8%를 차지했다. 이래서야 중국의 압력을 배겨낼 도리가 없다.
 
수입선 다변화도 급하긴 마찬가지다. 특히 희토류처럼 민감한 분야는 서둘러야 한다. 지난해 한국은 희토류의 57%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미·중 관계가 악화해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무기화한다면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게 뻔하다. 이럴 때를 대비하려면 일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난 2010년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 분쟁 끝에 희토류 금수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쓴맛을 본 일본 정부는 ‘신(新) 원소정책’을 채택했다. 희토류 없이도 돌아가는 대체품 생산을 독려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한 것이다. 이 덕에 일본은 2년 만에 희토류 위기를 넘어설 수 있었다.
 
한·미 동맹도 손봐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화웨이를 쓰면 군사정보를 공유하지 않겠다고 미국이 윽박지르는 건 결코 건강한 동맹 관계가 아니다. 국력 차가 큰 비대칭적 관계에서는 힘센 나라가 약한 동맹국에 오만 요구를 하기도 한다. 약한 나라는 동맹에서 버려지는 걸 두려워해 과한 요구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동맹의 단점을 설명하는 ‘얽힘 이론(entanglement theory)’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우리가 이런 사슬에서 헤어나려면 한·미 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동맹을 깨자는 게 아니다. 서로 자율성을 더 존중받는 건강한 동맹으로 발전시키자는 뜻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국방부터 강해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스웨덴에서 “남북 간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군사력 아닌 대화”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유지를 위해 행여라도 군사력 강화를 주저해선 안 될 것이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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