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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김영옥 6·25 나자 미군 재입대…나 아닌 우리 공적 강조”

중앙일보 2019.06.25 00:05 종합 6면 지면보기
6·25전쟁 영웅 고 김영욱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왼쪽)가 24일 청와대에서 캠벨 에이시아양이 참전 유공자들을 소개하는 공연 도중 삼촌인 고 김 대령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6·25전쟁 영웅 고 김영욱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왼쪽)가 24일 청와대에서 캠벨 에이시아양이 참전 유공자들을 소개하는 공연 도중 삼촌인 고 김 대령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자유와 인권, 이 두 가지뿐이었어요.”
 

전쟁 영웅 김영옥 대령 조카 맥매스
미국 최초 유색인종 전투대대장
탑골·금병산 전투서 연전연승
“삼촌, 한국의 발전 뿌듯하게 생각”

전쟁 영웅 고 김영옥 대령의 조카 다이앤 맥매스(76)씨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삼촌이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에서 몸 던져 싸운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생전에 이 두 개의 가치를 위해 내가 아닌, 우리가 이룬 업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는 게 맥매스씨의 회고다.
 
맥매스씨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군·유엔군 참전 유공자 오찬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영옥 대령을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 16인 중에 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2011년 포털 사이트 MSN닷컴이 선정한 이 16인 명단에는 조지 워싱턴, 로버트 리, 더글러스 맥아더 등이 포함돼 있다. 맥매스씨를 만나 생전의 김영옥 대령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김영옥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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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대령은 어떤 분이었나.
“사실 이렇게 대단한 분인지 장례식장에서 처음 알았다. 당신의 업적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삼촌이 돌아가시기 2년 전 집에서 훈장들을 봤는데, 삼촌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장례식장에 한국 정부에서 사절단을 보내고, 미국 유명인사들이 참석하는 걸 보고서야 삼촌의 공적을 알게 됐다.”
 
1919년 1월 2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동포 1세대였던 항일지사 김순권의 아들로 태어난 김영옥 대령은 43년 2월 일본계 이민 2세로 구성된 육군 442연대 100보병대대 소대장으로 부임한 뒤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맹활약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각각 최고 무공훈장인 십자무공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 이후 전역한 그는 모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재입대해 미군 최초로 유색인종 전투부대 대대장을 맡아 6·25전쟁에 참전했다. 52년 9월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구만산·탑골·금병산·수안산 전투 등에서 연전연승하며 중부전선을 60㎞ 북상시켰다. 한국은 최고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미국은 훈격 2위인 특별무공훈장을 그에게 수여했다. 김영옥 대령은 2005년 12월 별세했다.
 
김영옥 대령과 생전에 참전 관련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나.
“어렸을 때부터 삼촌으로부터 전쟁 얘기를 듣긴 했다. 그런데 주어가 항상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 ‘우리가 어느 전투에서 싸웠고, 우리가 이겼다’는 식이었다. 나로서는 삼촌이 참전용사라고만 생각했지 전투를 진두지휘했다는 데까진 생각하기 어려웠다.”
 
맥매스씨는 이날 청와대에서도 “삼촌이 이 자리에 섰으면 분명 ‘내가 혼자 한 게 아니라 우리 전우들이 같이 해냈다’고 소감을 밝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는데 미국에선 받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생전엔 최고 무공훈장, 사후엔 최고 국민훈장 후보에 포함된 적이 있었다. 최고 무공훈장의 경우 탈락에 아쉬울 법한데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다.”
 
김영옥 대령은 자기 생각이 분명했던 분이라고 들었는데.
“삼촌은 할머니(김영옥 대령의 모친)의 영향을 받아 그러셨다.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쟁 자체에 대해서도 그랬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삼촌은 반대했다. 전쟁 전 모든 조치가 취해져야 하고 전쟁은 마지막 수단이 돼야 한다는 게 삼촌의 논리였다.”
 
삼촌에 대해 알리고 싶은 얘기는.
“삼촌은 한국인이라는 걸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일본계 미국 사회에서도 한국의 경제 발전의 대단함을 설파하곤 했다. 공동체 인식을 강조했던 삼촌의 정신이 한국에 모범으로 남길 희망한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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