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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철의 이코노믹스] 정권마다 휘둘리면서 부동산 공시제도 불만 키웠다

중앙일보 2019.06.25 00:02 종합 24면 지면보기
말 많은 부동산가격 공시제도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전 국토에 걸쳐 3268만건 필지와 1768만채 주택 가격에 대한 전수조사를 매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재산세가 발전한 영국이나 미국보다 우리의 부동산가격 공시제도는 조사 범위·주기 측면에서 더 세밀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도의 외형이 아니라 콘텐트다. 공시제도 운용에서 나타나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부동산가격 공시제도가 부동산시장 안정화 논리에 종속돼 시행된다는 점이다.
 

부동산시장 안정화 논리에 종속돼
조세 형평성 대신 투기억제에 집착
현실화율 주택 50%, 아파트 70%
정치로부터 공시제도 독립시켜야

지가 상승이 절정에 달했던 1990년 처음 도입된 공시지가제도의 출발이 그랬다. 15년이 지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판박이처럼 주택가격 공시제도도 새로 추가됐다. 그로부터 13년 흐른 지난해, 이번에는 공시가격 현실화 요구가 빗발쳤고, 그 결과 올 상반기 공시가격은 큰 폭으로 올랐다. 역시 주범은 최근 수년간 폭등한 서울 요지의 아파트 가격이다.
 
부동산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정부는 투기를 억제할 수단으로 토지초과이득세나 보유세 같은 세금의 압박을 선택했고, 공시가격 인상을 그 지렛대로 삼았다. 반면에 부동산시장 안정기가 도래하면 공시가격 이슈는 수면 아래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동산 침체기에는 공시가격과 보유세가 추구해야 할 공정과세나 조세 형평성은 시장 활성화 명분으로 기꺼이 희생된 적도 있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고무줄 운용
 
부동산경기에 따라 공시가격을 고무줄처럼 신축적으로 운용한 결과는 암담하다. 공시지가제도 출범 시 조세 저항을 의식해 시가의 20~30%에서 시작한 공시지가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실화율이 60% 수준에 불과하다. 아파트 가격 급등을 제어하기 위해 도입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그나마 출발부터 적극성을 띤 결과 현실화율이 70%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상에서 비켜난 개인 주택은 시가반영률이 내내 50%대에 주저앉아 있다.
 
결국 공시가격의 대표적인 두 가지 문제인 낮은 현실화율과 심각한 불균형은 그 뿌리가 하나다. 공시제도를 정치적으로 접근해 공시가격을 부동산가격 급등기에만 땜질식으로 손 본 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오늘의 공시제도 문제는 지금까지 정부가 조세와 부담금의 형평성 추구라는 장기 목표를 도외시하고,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단기 성과에만 집착한 결과다. 이런 행태가 지금도 시정될 가능성이 작아 크게 우려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올해도 5월 말 개별공시지가를 끝으로 부동산가격 공시가 마무리됐다. 연초부터 표준주택과 표준지에 이어 공동주택과 개별주택에 대한 가격이 순차적으로 발표될 때마다 국민은 공시가격이 주는 파장에 주목했다. 공시가격 상향조정이 일부 대상에만 집중된 것과 산정 과정의 투명한 공개 여부에 전문 연구자들의 매서운 추궁이 뒤따랐다. 부동산도 상품이기에 실제 가치는 자산시장에서 거래되는 균형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도 한해 18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얻은 공시가격이 여전히 시장균형가격에서 크게 벗어나 불규칙하게 결정된다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공시가격의 낮은 현실화율은 많은 부동산 보유자에게는 혜택이 된다. 보유세·상속증여세·사회보험료 산정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보기 때문이다. 자산을 보유하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결과다. 공시가격 시가반영률의 불균형은 서로 다른 자산을 보유하는 사람들 간에도 불만의 빌미가 된다. 고가 부동산에서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이 낮은 경우가 많아 부동산 과세가치 평가가 역진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게 된다.
 
부동산가격 공시제도를 30년간 운영했음에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감사원이 국토교통부의 공시업무에 대한 공익감사마저 예고한 상황이다. 정부 내에서조차 공시가격제도의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자성이 일고 있다는 방증이다. 감사원은 표준부동산의 선정과 평가방법에 한정해 감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예상대로라면 공시제도의 안착은 요원한 과제로 남는다.
  
공시가격 이용 분야 60곳 넘어
 
예산 낭비와 정부 불신을 초래하게 된 부동산가격 공시제도 문제의 본질은 다름 아닌 정부의 ‘의도된 정책 실패’에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와 현 정부 가릴 것 없이 정부가 정치적 결정에 따라 공시제도를 선택적으로 운용하면서 공시제도의 난맥상이 더욱 깊어진 것이다.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시제도를 정치로부터 독립시켜 중립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정책 최고책임자의 결단이 먼저 요구된다. 이 결단 하에 공시가격이 부동산 경기나 정치적 고려와 무관하게 법에서 정한대로의 적정 수준을 달성하도록 점진적 현실화 계획을 공표해야 한다. 통화정책을 정부로부터 독립시켜 중앙은행에 일임한 것처럼 공시제도의 객관성을 높이라는 얘기다.
 
공시가격 정상화 다음 단계의 과제도 있다. 공시가격 정보를 이용하는 행정부처의 후속 조치다. 현재 조세·부담금·복지·교육·국토개발 등을 포함한 60여개 행정 분야에서 공시가격 정보가 이용되고 있다. 공시가격 정상화 과정에서 나타날 변동은 각 정책의 운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각 부처는 나름의 고유한 정책 방향이 있는데, 공시가격 현실화가 단기적으로 부처 정책 방향에 상충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시가격 상향조정으로 나타날 수 있는 예기치 않은 사회보험료 인상이나 기초연금·기초생계비·국가장학금 수급의 불리함은 현재의 복지정책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공시가격 인상이 정책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공시가격의 적정수준 달성을 위해서는 이런 현실적 장애요소를 제도 내에서 미리 제거해야 한다. 방법은 있다. 행정부처가 공시가격의 활용 목적과 기능에 따라 정책 용도별 반영지수를 차별화해 적용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하면 된다. 실제로 부동산 공시법 제8조에서는 공시지가를 활용목적에 따라 가감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런 근거 규정을 주택공시가격에도 확대하는 게 마땅하다.
 
행정부처 또한 자신의 정책 방향에 맞게 공시가격의 용도별 적용지수를 개발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일례로, 조세의 경우 공정시장가격비율을 통해 공시가격의 일정 비율이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 과세표준 계산에 이용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대체로 시행령상에 규정할 수 있어 법령 개정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본다.
 
지역별로 들쭉날쭉 가격 산정도 혼란 증폭
부동산자산이 국민 순자산의 87%(2017년 기준)를 차지하는 우리나라는 부동산 공화국이란 표현답게 매년 주택과 토지의 정부 공인 공식가격을 발표한다. 공시는 1월에 표준주택 가격, 2월 표준지 지가, 4월 공동·개별주택 가격, 그리고 5월 개별 공시지가 순으로 진행된다. 표준주택과 표준지의 가격을 국토부가 먼저 고시하면, 이를 기준으로 개별주택과 개별토지의 가격을 지자체가 산정해 공시한다. 이러한 공시 주체 이원화와 관련해 지자체는 불만을 드러낸다. 재산세 과세권은 지자체에 있는데도, 가격 공시  업무를 사실상 국토부가 주도하기 때문이다.
 
올해만도 국토부가 일부 지역의 표준주택과 표준지 공시가격을 크게 올렸는데, 지자체가 개별부동산 가격 산정에서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상 첫 시정조치가 내려졌다. 지자체 과세권과 공시가격의 지역 간 균형을 충족하는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부동산 가격공시는 전국 단위의 총괄 기관으로 관리 주체를 단일화하되, 지자체가 지방세 과세에 반영되는 공시가격의 적용지수를 설정·운영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 공시 업무의 정치적 중립과 지방정부 과세권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주택에 포함되는 토지의 가격이 정해지기 전에 주택 가격을 먼저 정하는 현재의 방식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토지 가격의 변화분이 주택 가격 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시 일정에 대한 개선이 시급하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조세연구원 연구위원과 국회예산정책처 조세분석심의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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