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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초등생 성폭행 31세, 오늘도 초등학교 주변을 배회한다

중앙일보 2019.06.24 01:30 종합 1면 지면보기
“잘 피해 다니고 있다.”
 
동네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의 75세 A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가 피해 다니고 있다고 한 것은 근처의 어린이집과 놀이터였다.
 
그는 2011년 자신이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던 서울시 B구의 한 사우나에서 11세 여자 어린이를 추행했다. 주차장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보기 위해 찾아온 아이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확인된 것만 9개월 동안 다섯 차례였다. 경찰 조사에서 아이를 ‘꽃뱀’이라고 부르는 등 오히려 아이를 비난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인 A씨에게 법원은 징역 4년 및 전자발찌 부착 6년을 선고했다. 어린이집과 놀이터 등 어린이 관련 시설에는 출입하지 말라는 준수사항도 부과했다.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신상이 공개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중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215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아동 성범죄자 셋 중 하나는 출소 뒤 범행을 저질렀던 곳 주변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신상이 공개된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 중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215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아동 성범죄자 셋 중 하나는 출소 뒤 범행을 저질렀던 곳 주변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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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출소 뒤 다시 B구로 돌아갔다. 지난 18일 ‘성범죄자 알림e’에 등록된 주소지를 찾아가 보니 고시원이었다. 걸어서 1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는 어린이집이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에게 A씨가 주변에 거주하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성범죄자가 근처에 있다는 고지는 받았지만 얼굴은 모른다”고 했다. 사진을 보고도 “낯이 익지 않다”고 했다.
 
교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어린이집 문을 나선 뒤 3m 정도 걸어갔을 때 A씨와 마주쳤다. 어린이집 원생들이 하교하는 시각, A씨는 태연히 근처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에게 어린이집 출입금지 등 준수사항을 잘 지키고 있느냐고 묻자 잘 지킨다는 취지의 답을 했다.
 
아동 성범죄자 셋 중 하나는 출소 뒤 범행을 저질렀던 곳에서 멀지 않은 지역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성범죄자 알림e’ 웹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중 서울·경기 지역에 사는 215명(서울 84명·경기 131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39.1%에 이르는 84명(서울 28명·경기 56명)이 출소한 뒤 범행을 저질렀던 장소가 있는 시·군·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법원은 재범 위험이 매우 높은 아동성범죄자의 주거지나 활동 반경을 제한할 때 시·군·구를 기준으로 삼는다. “주소지 관할 시·군·구를 벗어날 수 없다” 등의 형식으로 준수사항을 부과한다. 이동 범위를 제한받는 성범죄자라 하더라도 최소한 시·군·구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셈이다.
 
출소자 주거지 반경 500m내 초등교 4곳 있기도 
2008년 경기 성남시 C구에서 열두 살 여자 어린이를 빈집으로 끌고 가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려 했던 D씨(31)도 징역 6년을 복역한 뒤 현재 C구의 빌라촌에 살고 있다. 그의 주거지 반경 500m 안에는 초등학교가 네 개 있다. 지난 19일 직접 현장에 가봤더니 그중 한 곳은 그의 집 대문 앞에서 바라보면 스쿨존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정문까지 직선거리로 162m밖에 되지 않았다. D씨의 집 바로 앞 분식집에서는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 네댓 명이 닭꼬치를 사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어린이집, 학원 등도 여러 개 볼 수 있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 이들의 구체적 범행 방식을 파악하기 위해 중앙일보는 범행지가 있는 시·군·구로 되돌아간 84명의 판결문을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정춘숙 의원실이 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다. 84명으로부터 성추행·성폭행 등을 당한 피해자 수는 111명. 피해 아동의 연령은 평균 9.6세였다. 최연소는 3세였다.

 
84명 중 자신이 사는 주거지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는 40명(47.6%)이었다. 대부분 주거지 인근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용돈이나 먹을 것 등으로 순진한 아이들을 유인해 집까지 끌어들이는 식이었다. 염윤호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지난해 ‘치안정책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저항력의 정도가 낮은 아동이 ▶잠재적 성범죄자가 일상 활동을 하는 거리 내에 ▶노출된 채 존재하고 ▶보호자 등이 없을 때 아동성범죄의 발생 개연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현행법상 아동성범죄자들이 어린이 관련 시설 근처에 살지 못하도록 거주지를 제한할 수는 없다. 법원이 임의로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 등 특정 시설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릴 수는 있지만, 이조차도 통상 ‘출입 금지’로 표현돼 있다. 말 그대로 어린이집에 드나들지만 않으면 코앞까지 가도 명령 위반은 아니다. 법제도상 허점을 메우기 위해 보다 촘촘한 사후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경우 전자발찌를 채우며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를 의무화하는 ‘조두순법’이 마련됐지만 한계는 여전하다”며 “요소요소에서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충분한 예산과 인력 확보 등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유지혜·정진우·하준호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