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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정정용 감독의 사마의 리더십

중앙일보 2019.06.24 00:13 종합 27면 지면보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사람들은 그를 ‘제갈용’이라 불렀다.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준우승한 정정용 감독 이야기다. 모든 미디어가 정 감독의 성공 스토리를 소개했다. 어린 선수들을 이끌고 제갈량 못잖은 전략으로 승승장구했다는 내용이다. 그의 리더십과 용병술이 화제가 됐다. 그런데 과연 그게 다일까. 선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눈매를 바라보면서 직접 물어봤다.
 
정정용 리더십의 실체는 뭡니까.
“허허, 별거 없어요. 그저 내 스타일 대로 할 뿐이지요. 주변에선 수평적 리더십이라고 하는데 뭔가 이론적인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내가 코치로도 지내봤는데 권위적인 건 안 맞아요. 예를 들어 내가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 선수들이 밥을 먹지 않고 기다리는 건 나와 안 맞는단 말이에요. 의전 같은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선수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선수들과 소통한다는 게 말은 쉬운데, 화가 나거나 울컥할 때 어떻게 하나요.
“그 울컥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축구에서는 볼을 받기 전에 상황 인식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모르면 일단 가르쳐 줘야 합니다. 볼이 오기 전에는 먼저 주변을 살피라고. 그렇게 했는데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땐 이유가 생기는 거죠. ‘내가 이렇게 가르쳐줬는데도 안 되는 건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이란 사실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거죠.”
 
요즘 휴대전화를 많이 쓰는데 “핸드폰 써도 좋다”고 하셨다면서요.
“호텔 방으로 들어가면 룸메이트 두 명뿐이잖아요. 그런데 밥 먹을 땐 모두가 다 모이는 시간이니, 그때도 핸드폰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에게 식사시간을 정해 줬어요. 아침은 20분, 점심과 저녁때는 30분. 그 전에 밥을 다 먹더라도 먼저 일어나지 말고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 거지요. 처음엔 좀 서먹서먹했지만 모두 잘 따라줬어요. 물론 식탁 밑으로 핸드폰 훔쳐보다 들킨 친구도 있었지만 그건 눈 감아 줬어요.”
 
대회 내내 스포트라이트가 18세 이강인에게 쏠렸습니다. 한 선수에게만 관심이 쏠려 팀워크가 깨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런 선수를 컨트롤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심리를 먼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해 (19세 이하 대표팀에선) 심리학 교수님을 모시고 와서 우리 선수들의 전체적인 심리상태를 파악해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어요. 스타급 선수들은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데, 결국은 관심이 가장 중요해요.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니 좋아하면서 스스로 달라지더군요.”
 
지장·덕장·용장 중에 ‘지장’이 가장 좋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장이 똑똑해 보이지 않나요. 덕장은 그냥 누구에게나 ‘허허허’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정정용 감독, 겉으론 웃고 있는데 눈매가 서늘했다. 그는 축구는 전략이나 피지컬 못지않게 심리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다음엔 성인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지 않으냐고 물어봤다. 1초도 안 돼서 대답이 돌아왔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어요. 나는 노후에 다리 밑에서 막걸리나 마시는 게 꿈이에요.”
 
귀가 번쩍 띄었다. 정정용 리더십의 실체는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자신을 낮추고 소통을 중시하면서, 속내를 감추는 ‘자기 통제의 승부사’가 바로 정정용 감독이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말했다.
 
“제갈량은 일찍 죽잖아요. 나는 끝까지 살아남는 사마의가 좋아요.”
 
정제원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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