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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최종병기, 그가 왔다

중앙일보 2019.06.24 00:04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그가 왔다. 일찌감치 총장감으로 낙점된 사람, 서열 따윈 아랑곳 않는 화끈한 사나이, 국회 청문회에서 윗선 외압을 폭로하고 한직을 맴돌다 검찰 수장에 지명된 사람, 윤석열 지검장 말이다. 2013년 10월, 누구나 두려워하는 현실권력 국정원을 상대로 그렇게 과감한 공격을 펼치는 검사의 기개에 뭇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정원의 댓글공작은 박근혜 당선을 무효화할 중대 사안이었다. 감동과 우려가 섞였다. 무사할까, 해직될까, 아니면 영웅탄생? 그 여파로 검찰총장 채동욱은 산천을 떠 돌았고, 수사팀장 윤석열은 좌천됐다.
 

윗선 외압 폭로 화끈한 윤 후보자
기수파괴 발탁, 권력견제 가능할지
낭보없는 개혁전선 피로감 쌓여
급진개혁 역풍 조광조 운명될까

2003년 노무현정권 초기 ‘검사와의 설전’(舌戰)에 나섰던 검사들도 같은 운명이었다. 검찰개혁 동력을 지피려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던 대통령도 보통사람은 아니었지만, 검찰의 존재이유와 명분을 설파한 젊은 검사들도 의기 충만했다. 심기가 건들린 대통령은 계급장을 다시 달았다. “막가자는 거지요?” 막가던 그 때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금의 검찰개혁 논란을 보면서 왜 침묵하고 있을까. 고(故) 노무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도 검사였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그는 종적을 감췄다.
 
이후 검사 직업은 한국영화의 단골소재가 됐다. 적어도 5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도 족히 너덧 편인데, 대체로 야망에 가득 찬 권력 추구형 인간이다. 그 근처에는 조폭, 언론인, 정치인이 어른거리고 (영화 ‘내부자’), 대권주자와 흥정해 권좌에 등극한다(‘더 킹’). 감옥에 갇힌 검사가 현직 검사와 정객 사이 검은 거래를 폭로하는 이른바 ‘검사활극’도 있고(‘검사외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등장시킨 다큐멘타리 영화도 있다 (‘자백’). 가끔 유행어도 만들어냈다.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게 대한민국 검사야.”
 
정의의 집행자 검사와 조폭을 헷갈리게 만드는 이것은 조직논리인가, 사람논리인가. 대한민국 검사들은 ‘조직’과 ‘사람’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괴로운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정치적 외압은 사람관계를 통해 스며들기에 조직논리로 막아내긴 힘들다. 양자택일 상황에 자주 직면하는 검사는 일종의 ‘극한 직업’이다. 윤(尹)후보자는 죽음의 협곡을 두 번 통과했다. 노무현.이회창 대선캠프자금 수사(2004년), 국정원 댓글사건 외압의혹(2013년). 2013년 폭로 당시 법무부장관 겸 박근혜대통령 호위무사 황교안은 이제 제1야당 한국당 대표다. 이 운명적 ‘조우’는 그가 오래 전 밝힌 직업소신과 모순은 없다. ‘조직은 사랑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는 않는다.’
 
조직과 사람 사이, 검찰과 정권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출세욕과 자기 검열, 하명(下命)과 저항, 통치와 법치가 서로 대립하고 타협한 굴곡진 얘기가 무성할 것이다. 청와대의 무한 사랑이 선배들의 겹겹 지층을 뚫고 그에게 꽂힌 저 기수(期數) 파괴적 ‘발탁’에도 검찰사랑은 유효할까. 전직 검찰총장들도 조직사랑과 사람충성을 잇는 교각을 오락가락하면서 ‘권력견제’라는 검찰 본연의 임무에 괴로워했다. 윤(尹)후보자는 적폐청산의 최종병기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잔재세력의 완전 소탕 명령을 그에게 발하는 순간 정권과 검찰의 거리는 이미 소멸된다. 동상이몽은 정작 본인에겐 타격이다. 권력누수가 시작될 정권 후반기에 실세권력에도 사정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까.
 
중종 때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가 그랬다. 대사헌은 요즘 직책으로 검찰총장이다. 반정으로 등극한 중종은 훈구파와 척족세력을 견제하려고 젊은 학자 조광조를 등용했다. 강단이 있었고 사기(辭氣)가 과연 대학자 김굉필의 수제자다웠다.  
 
대사헌에 그를 등용한 중종은 권신들의 부패정치를 척결할 보검을 쥐어 줬다. 언로를 트고, 무속인을 쫓아냈으며, 젊은 인재를 대거 등용했다. 사림파가 약진했다. 쾌도난마, 일사불란한 조광조의 개혁조치에 훈구파 세력은 풍비박산이 났고, 심지어는 중종의 첫 부인이자 연산군 핵심측근의 딸 단경왕후가 폐위됐다. 반정공신 중 76명이 초야로 쫓겨났다. 막나간 것이다. 중종의 기대를 훨씬 넘어선 그의 집념, 도덕정치의 완성을 향한 그의 질주에 칼바람이 불었다. 급진개혁은 흔히 역풍을 재촉하는 법, 중상모략과 모함이 빈발했다. 기묘사화, 능지(전라도 화순)로 유배된 그에게 중종은 사약을 내려야 했다. 약관 37세, 혁신 검찰총장, 대사헌 조광조는 그를 등용한 군주에 의해 그렇게 스러졌다.
 
지난 2년 동안 전직 대통령 두 명을 비롯, 전직대법원장과 100여명의 고위공무원, 기업임직원이 수감됐다. 네 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멍에를 지고 노후를 견딜 사람이 부지기수다. 2년 전투로 아군과 적군 모두 지쳐있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전선 확대를 원한다. 경제전선엔 비보(悲報)만 들리고, 비핵화전선은 교착상태, 교육전선엔 저항군 집결, 4강 외교는 고립무원, 뭐 하나 신날 것 없는 이 무더운 계절에 최종병기 윤후보자는 보검의 칼날을 갈고 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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