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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엔진 하나 못만드는 현실…영혼있는 연구자 되고 싶다”

중앙일보 2019.06.24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항공우주연구원의 틸트로터 무인기. 개발엔 성공했지만, 사업화엔 9년째 실패다. [사진 항우연]

항공우주연구원의 틸트로터 무인기. 개발엔 성공했지만, 사업화엔 9년째 실패다. [사진 항우연]

“나는 영혼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
 

정부출연 항우연의 안오성 박사
수요 고려하지 않고 R&D 투자
기술 기껏 개발해도 창고 신세
과학기술 국가미래전략 절실

과학기술 분야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한 연구원이 고질병처럼 고착화한 한국사회의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의 사업화 실패와 국가적 전략 부재 속 연구자의 무기력함을 토로했다. 세계 1위 수준의 R&D 투자에도 불구하고 성장엔진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최근 국내 한 민간연구소의 블로그에 이런 내용의 글을 기명으로 올렸다. 그의 이름은 안오성(51). 과기 출연연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다. 항우연은 2011년 세계에서 둘째로 헬리콥터와 프로펠러 항공기의 원리를 결합한 틸트로터형 무인항공기를 자체 개발하는데 성공,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요즘 뜨고 있는 드론과 하늘의 택시 ‘우버에어’의 원조격이었다.  
 
안오성

안오성

당시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한국을 빛낸 과학기술 및 산업성과 25’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항우연의 스마트 무인기는 올해로 9년째 창고 속에서 상용화의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중앙일보는 그간 수차례 전화와 SNS 등을 통해 안 연구원과 의견을 나눴다. 그는 언론과 정식 인터뷰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정부의 질책을 우려한 소속 기관장이 인터뷰를 막았기 때문이다.
 
안 연구원은 자신이 개발에 참여했던 스마트 무인기를 대표적 사례로 들어 국가 R&D의 성공사례가 사업화로 연결되지 못하는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중 가장 큰 문제점을 “국가미래전략이 없는 과학기술 연구개발”로 꼽았다. 특히 스마트 무인기의 경우 국방 등 공공수요에 대한 구체적 국가적 계획 없이 개발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스마트 무인기(틸트로터 TR-100) 개발사업은 2002년 과학기술부 10대 프론티어 사업 중 하나로, 미래형 스마트무인기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10년간 민간 투자 98억원을 포함, 97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연구개발 9년만인 2011년 TR-100은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미국 벨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성과였지만, 성능은 벨을 넘어섰다.
 
하지만 스마트 무인기는 2012년 국방부의 ‘○○사업’ 항공기 부문 1호 사업 최종선정에서 탈락한다. 그렇게 스마트 무인기는 시장진입 기회를 잃어버리게 됐다. 전문성이 부족한 선정평가 위원들의 잘못된 판단도 한몫했다는 게 안 연구원의 분석이다. 그는 이를 ‘위원회의 함정’이라 표현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부담을 짊어진 위원회가 질적(質的)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위험 회피형 의사결정을 하는 특성을 갖는 것을 말한다.  
 
안 연구원은 또 “기술개발은 산업생태계와 국가 기술전략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국내에서는 기업 등과 함께 구상하는 사업화 전략, 지원과정이 없이 반대로 ‘끼리끼리 문화’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수소연료전지차 역시 학계와 출연연의 연구결과가 적용되지 못했고, 삼성전자의 5G 모뎀칩 개발 도전에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역량이 연결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사례를 들었다.  
 
그는 그 이유를 "국내외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선도형 기술일수록 ‘갈라파고스화’가 더 심화하는 역설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선도기술의 불운은 항상 외국이 뛰어나간 뒤에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며, 그때는 이미 후발주자로서 상당한 전략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스웨덴 등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도 항공우주와 같은 거대 첨단 복합기계 시스템을 성공한 데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들 국가의 정치·행정 경쟁력이 최상위권이며, 의사결정을 위임받아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가 있다는 점입니다. 항우연의 도전은 기술개발 단계까지만이었습니다. 사업화까지 이어갈 전략적 위임과 책임의 의사결정 구조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대전=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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