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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이면 충분할까?” 초고령 사회 일본서 불붙은 노후자금 논쟁

중앙일보 2019.06.23 05:00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노후 자금 논쟁이 시작됐다. [사진 photoAC]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노후 자금 논쟁이 시작됐다. [사진 photoAC]

남편 65세, 아내 60세 일본인 부부. 직업은 없고, 기초 연금과 후생 연금을 포함해 매달 나라에서 19만 1880엔을 받는다. 기타 수익을 포함하면 이들의 한 달 수입은 총 20만 9198만 엔(약 227만 원). 하지만 식비(6만 4444엔), 의료비(1만 5512엔), 교통·통신비(2만 7576엔), 교양 오락비(2만 5077엔) 등 이 가정의 한 달 지출은 26만 3718엔(약 286만 원)에 달한다. 부족한 약 5만 5000엔은 그동안의 저축 등을 써야 한다. 부부가 20년을 더 살려면 약 1300만 엔(약 1억 4000만 원), 30년이면 2000만 엔(약 2억 2000만 원)의 여유자금이 필요하다.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노후를 위해선 2억 원이 넘는 거액을 비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최근 파문을 일으켰다. 총리 자문기구인 금융심의회가 정리하고 금융청이 지난 3일 발표한 ‘100세 시대에 대비한 금융 조언’이다. 그러나 보고서에 가상 은퇴자 부부의 사례를 거론하며 오래 살기 위해선 고액의 자산을 모아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정부의 연금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아베 ‘100년 안심’ 하라더니”
이번 사안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전체 인구 중 65살 이상 고령 인구가 28%인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연금 문제는 그 무엇보다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시절이던 지난 2004년 연금 제도를 개혁하면서 ‘100년 안심’을 구호로 내걸었다. 국민이 100세까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연금 제도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보고서로 아베 총리가 약속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은 연일 “거짓말을 한 아베 총리는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0일 금융청 보고서에 대해 “부정확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내용이었다”고 밝히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보고서는 정부 정책 기조와 다르다”며 금융청의 보고서 수령을 거부했다. 
 
특히 이 문제는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유권자의 30%가 65세 이상의 고령층이고, 2016년 중의원 선거에서 60대 이상의 투표율은 70%로 전체 투표율보다 15%포인트 높았다. 제1차 집권기였던 2007년 9월 참의원 선거에서도 후생노동성의 연금기록 누락 문제로 대패해 1년 만에 정권을 내줬던 경험이 있는 자민당은 이번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2억 원으로 부족...커지는 노후 불안
보고서는 일본 국민에게 노후에 대한 불안을 가중하는 동시에 ‘노후자금으로는 진짜 얼마가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도 불러일으켰다. 마이니치 신문이 15~16일 성인 993명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적 연금이 노후 생활에 의지가 된다”라는 답은 전체 응답자의 31%에 지나지 않았고, 57%는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하철 타러 가는 일본 노인들. [연합뉴스]

지하철 타러 가는 일본 노인들. [연합뉴스]

이번 금융청 보고서에 인용된 자료를 보면 ‘노후 준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자산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40대는 3093만 엔, 50대는 3424만 엔, 60대 이상은 3553만 엔이라고 답해 정부가 추산한 2000만 엔보다 1억 원 이상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제 보유한 자산은 40대가 780만 엔, 50대는 1132만 엔, 60대~70대가 1830만 엔으로 필요 금액보다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현재 젊은 세대가 나중에 받게 될 연금은 현재 수급자들이 받는 금액보다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번 금융청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한 민간 위원은 회의에서 “지금 추세로 간다면 ‘단카이(團塊) 주니어 세대’(1971~1974년 사이 출생)가 받을 연금은 현재 평균 19만 엔보다 훨씬 적은 15만 엔까지 줄어든다”며 “이들 세대가 노인이 되었을 땐 연금 외 필요한 여유 소득이 월 5만 엔이 아니라 10만 엔 이상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수급자의 연금액을 서서히 축소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연금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번 금융청 보고서로 연금 축소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공적 연금 개혁이 지연될 우려가 커졌다”고 전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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