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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확률형 아이템 등 사행성 논란 재점화

중앙일보 2019.06.23 00:03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공식 규정…현 상태로는 3년간 11조원 이상 손실 가능성
 

WHO발 악재에 비상 걸린 ‘K게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의결하면서 국내 업계에도 파장이 몰려오고 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기로 의결하면서 국내 업계에도 파장이 몰려오고 있다. / 사진:ⓒ gettyimagesbank

악조건에도 성장세를 이어왔던 국내 게임 업계가 이번엔 세계보건기구(WHO)발 대형 악재에 휘말렸다. WHO는 지난 5월 2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가 포함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게임을 도박과 같이 잠재적 중독 행위의 하나로 분류하고, 게임에 중독되는 경우를 ‘질병’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제 기준이 확립되는 셈이라 각국이 질병 코드 정식 부여를 고심해야 하는 한편, 게임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도 지금보다 한층 확산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오지환 한국이스포츠아카데미 대표는 “WHO처럼 공신력 높은 집단이 게임 중독을 경고하고 나서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쁜 쪽으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했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 더 나빠질 것” 우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의 게임 산업은 2017년 매출 기준 약 13조원 규모로 세계 4위를 형성한 것으로 추산된다. 수출액도 지난해 기준 약 4조7800억원으로 덜 알려진 수출 효자 종목이었다. 특히 게임 셧다운제(자정 이후 청소년의 게임 이용 제한 제도) 도입(2011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K게임’ 판호(중국 내에서 유통할 권리) 발급 불허(2017년~)와 같은 각종 악재에도 10년 사이 배로 성장해 세간의 기대감을 키웠다. 새로이 부각된 WHO발 악재로 K게임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릴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과거 고스톱과 포커 같은 웹보드 게임 규제로 산업 규모가 30%가량 축소된 바 있다”며 산업적 위축 가능성을 언급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덕주 교수팀도 보고서에서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재 이후 2023년부터 3년간 국내 게임 산업의 경제적 손실이 1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앞서 WHO는 지난 2014년부터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는 일을 추진해왔다. 세계적으로 게임 중독이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지만 질병 등으로 따로 분류되지 않아 실태 파악조차 어렵다고 봐서다. 게임 중독 문제를 완화하려면 표준화한 기준에 의거해 세계 각국이 실태 조사 후에 그 결과를 취합하고, 국가 간 비교하면서 대책 마련 움직임이 활발해지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게 WHO의 관점이다. 관련해서 통계가 발표되면 나라별로 게임 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한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해나갈 수 있다. WHO의 이번 개정안은 유예기간을 거쳐 2022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개정안 발효까지는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은 가운데, 게임 업계가 단순히 반발하기보다 차제에 K게임 패러다임 전환에 나설 때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K게임의 체질 개선에 집중, WHO발 악재에도 향후 국내외 시장에서 흔들림 없이 선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K게임은 외형 성장 이면에서 “내실은 더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소비자들의 냉정한 평가를 함께 받았다. 예컨대 PC와 모바일을 불문하고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등 특정 장르 일변도로만 게임이 개발돼 창의성이 떨어지고 획일화했다는 비판론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이른바 ‘3N’의 대형 게임사 세 곳에 대한 업계 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분석도 쏟아졌다. 3사 도합 매출이 2017년 6조5000억원가량으로 업계 전체 매출의 절반에 달했다.
 
특히 사행성 조장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K게임이 눈앞의 실적에 급급해 ‘현질(현금 결제)’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 장사에 심취, 장기 경쟁력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론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MMORPG 게임 내에서 게이머가 일정 금액을 내고 확률에 따라 지급받는 아이템이다. 공격력이 높은 검(劍), 특별한 능력을 주는 방어구 등이다. 보통 좋은 아이템일수록 당첨될 확률은 낮아진다. 게이머들이 게임 내에서 자신의 우수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아이템을 ‘뽑고 싶다’는 충동에 빠질 개연성도 그만큼 커진다. 그간 K게임에선 이 확률형 아이템이 고질적 병폐로 지적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몰개성한 게임 시나리오, 선정적인 일러스트 사용 등 비판 대상이 되는 부분이 적잖지만 그중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이번 악재와 직접적으로 맞물려 논란이 클 것”이라며 “게임 중독과 직결될 소지가 있다는 시각이 많아 WHO의 새 기준이 적용되면 문제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업계는 2015년부터 한국게임산업협회를 중심으로 게임 내 아이템의 당첨 확률을 공시하는 자율 규제를 시행하는 등 나름대로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다. 다소 투명해진 정보 공개로 과거의 확률 조작 논란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지만, WHO발 악재에 근본 대응하고 K게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그 이상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확률 공시가 자율일 뿐 의무적이진 않아서다. 국회에서도 이 문제가 공론화한 상태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획득 확률이 100분의 10 이하인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청소년 이용 불가 등급으로 분류하고, 세부 아이템 구성과 확률 공개를 강제한다는 내용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해 계류 중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도 확률형 아이템 상세 공개와 사행성 조장 방지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은 뜨거운 감자다. 핀란드 슈퍼셀의 ‘클래시로얄’, 중국 클릭터치의 ‘황제라 칭하라’ 같은 인기 게임들도 확률형 아이템으로 게이머의 ‘현질’을 유도한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애플과 구글은 자사 플랫폼을 통하는 모바일 게임 개발사들에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의무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애플은 2017년 앱스토어에서 확률 공개를 의무화했고 구글 또한 6월 초 구글플레이에서 게임사들이 확률을 공개하도록 개발자 가이드라인을 수정했다. 해외 게임사들도 자정 노력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업체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는 지난 5월 방한해 공식석상에서 “누구나 시간 관리 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며 게이머들이 게임에 중독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도한 랜덤박스(확률형 아이템) 등 과금을 해야 이기는 방식은 (게임에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게임사들의 자체 조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게이머·게임사의 자정 노력 필요
이와 함께 WHO발 악재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K게임 수출 전략의 다변화를 꾀할 필요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중국이 급성장 중인 자국 게임 보호를 위해서도 여전히 K게임에 대한 규제를 까다롭게 적용하고 있어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이재홍 위원장은 “높이 장벽을 친 중국 시장에서 조금 눈을 돌려 동남아나 남미, 아프리카 같은 신흥시장으로 게임 수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신흥시장 수요도 적잖을 걸로 분석되는 만큼, 이번 기회에 판로 다변화로 K게임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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