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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 푹 빠진 ‘보좌관’…한국형 정치드라마 새 역사 쓸까

중앙일보 2019.06.22 09:00
JTBC 드라마 ‘보좌관’에서 경찰 출신 보좌관 장태준 역할을 맡은 이정재. [사진 스튜디오앤뉴]

JTBC 드라마 ‘보좌관’에서 경찰 출신 보좌관 장태준 역할을 맡은 이정재. [사진 스튜디오앤뉴]

내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자취를 감췄던 정치 드라마가 돌아오고 있다. 지난 14일 첫 선을 보인 JTBC 금토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시작으로 다음 달 1일 첫 방송하는 tvN 월화극 ‘60일, 지정생존자’, 하반기 방영 예정인 tvN ‘위대한 쇼’까지 정치 드라마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2010년 ‘대물’ ‘프레지던트’ 이후 뜸했던 본격 정치 드라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들 드라마는 소재부터 차별화를 꾀했다. ‘지정생존자’는 2016년 미국 ABC에서 시작해 이달 9일 넷플릭스에서 시즌 3를 공개한 미국 드라마 리메이크로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환경부 장관(지진희)이 주인공이다. 또 ‘위대한 쇼’가 국회 재입성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전직 국회의원(송승헌)을 내세운다면, ‘보좌관’은 금배지를 꿈꾸는 보좌관(이정재)의 세계를 다룬다.  
 
한층 넓어진 스펙트럼에 시청자들의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동안 국내에서 정치 드라마라고 하면 ‘제5공화국’(2005) 등 실존 인물 및 실화를 다룬 기록물이거나 ‘대물’ ‘프레지던트’처럼 대통령 탄생기가 주축이었기 때문. 실제 보좌관 출신인 정현민 작가가 쓴 ‘어셈블리’(2015)처럼 소재 다양화를 꾀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왕좌의 게임’(2011~2019) ‘하우스 오브 카드’(2013~2018) 등 미드를 통해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기에는 역부족인 탓이다.  
 
‘보좌관’에서 변호사 출신 초선 의원 강선영 역할의 신민아. 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보좌관’에서 변호사 출신 초선 의원 강선영 역할의 신민아. 당 대변인을 맡고 있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보좌관’은 장르물적인 재미를 더해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켰다. ‘트리플’(2009) 이후 1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이정재는 그간 영화 ‘관상’(2013) ‘암살’(2015) ‘신과함께’(2017) 등에서 쌓아온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기획과 시나리오에 반해 더 늦기 전에 드라마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엘리트 경찰 출신 보좌관이자 다음 총선을 준비하는 예비 정치인 장태준으로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검찰 수사 속도보다 앞서 함정을 만들고, 두세 수 앞을 보며 말을 움직이는 등 민첩하게 움직인다. 덕분에 극 중 모시고 있는 4선 의원보다 출중한 능력을 발휘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한다.  
 
변호사 출신 비례대표 초선 의원 강선영 역을 맡은 신민아와 호흡도 괜찮은 편. 그간 신민아의 필모그래피가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2010)로 대표되는 청춘스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면, ‘보좌관’의 신민아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짜는 영리함을 보인다. 극 중 강선영과 장태준이 연인 관계임에도 극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지금은 동반자이지만 언제든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정치판처럼 이들 관계 역시 각자의 입장에 따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인물 구조 또한 안팎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 대한당 원내대표 자리를 두고 다투는 송희섭 의원 역할의 김갑수와 조갑영 의원 역의 김홍파, 무소속 초선 의원 이성민 역의 정재영 등 중견배우들의 연기 대결도 흥미롭지만 각 의원실의 보좌진 역할도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극의 주된 배경이 되는 송희섭 의원실의 경우 4급 보좌관 이정재를 필두로 5급 비서관, 6급 비서, 7급 수행비서, 9급 행정비서, 인턴 등이 또 다른 피라미드를 이루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각자 입장 따라 펼쳐지는 진실게임”
극 중 대한당 원내대표이자 4선 의원을 맡은 김갑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극 중 대한당 원내대표이자 4선 의원을 맡은 김갑수.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추노’(2010) ‘미스 함무라비’(2018) 등을 연출한 곽정환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어떤 사안이든 겉으로 드러난 팩트 외에 진실이 있기 마련”이라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걸 숨기는 사람들이 있고, 그걸 밝히고 무너뜨려야 생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경쟁에서 오는 긴장감이 살아있는 드라마”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웹툰 원작의 ‘싸우자 귀신아’(2016)와 영국 BBC 원작의 ‘라이프 온 마스’(2018) 등을 통해 호평받은 이대일 작가의 극본은 속도감 있는 전개와 노동자 인권 문제 등 현실을 적절히 녹인 점이 돋보인다. 이 드라마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0부작으로 시즌 1을 마무리짓고, 하반기 시즌 2를 방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파행이 계속되고 있어서 비슷한 설정의 극에 더 몰입하게 된다”며 “국회의원이 아닌 보좌관의 시각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것도 신선하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과 검찰을 내세운 잇단 장르극에 대한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검시관을 내세운 ‘검법남녀’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한 ‘특별근로감독관조장풍’처럼 드라마 속 새로운 직업에 대한 탐구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6급 비서 역의 이엘리야. 기자 출신으로 남성 중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6급 비서 역의 이엘리야. 기자 출신으로 남성 중심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사진 스튜디오앤뉴]

국회 보좌진 사이에서도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4급 보좌관 A씨는 “보좌관이라 하면 흔히 ‘가방모찌’라고 폄훼하거나 의원 면직 즉시 일자리를 잃는 별정직 공무원이라 결혼할 때 처가에서 반대하기도 했다”며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 보좌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6급 비서 B씨는 “의원실마다 9명의 보좌진이 일하는데 5급 이상 여성 보좌관은 거의 없다. 극에서도 여성 보좌관은 한 명도 없던데 제작진이 취재를 꼼꼼히 한 것 같다”며 “6급 비서로 나오는 이엘리야가 유리천장을 깨고 그 위로 올라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다만 보좌진이 국회로 입성하는 등용문으로 통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전문성이 높아진 추세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유시민 작가나 김한길 전 당 대표 보좌관을 거친 이철희 의원 같은 경우는 이제 흔치 않아졌다는 것. B씨는 “보좌관 출신이 지역구 시의원으로 종종 출마하긴 하지만 극 중 이정재처럼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전문성을 바탕으로 해당 상임위에서 활동하며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분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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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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