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 자식 기죽을까봐, 남에게 폐 끼쳐도 "오냐오냐" 한다면…

중앙일보 2019.06.22 08:00
[더,오래]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28)
 
국회의장 마이클입니다. 오늘 의원 여러분들이 토론할 의제는 "이 땅에서 인디언을 쫓아낼 것인가?"입니다.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미국이 원래 인디언들 땅이었다고 하던데요."
"땅이 이렇게 넓은데 쫓아낼 이유가 뭔가요."
"인디언들이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없어요."
(중략)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사회수업시간. 학생들이 각주를 대표하는 상원 의원이 되어 토론을 펼친다.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 상호 소통하는 법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사진 pixabay]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사회수업시간. 학생들이 각주를 대표하는 상원 의원이 되어 토론을 펼친다.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 상호 소통하는 법을 스스로 체험하게 한다. [사진 pixabay]

 
이것은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사회 수업시간에 있었던 실제 상황이다. 볼더는 로키산 자락에 자리한 미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살기 좋은 동네다. 나는 학부모가 교대로 수업에 참여, 보조교사 역할을 하는 시간에 참여했다. 두 반이 합반해 약 50여 명의 학생이 각주를 대표하는 상원 의원이 되어 위의 주제로 토론했다. 의장은 다수 의견에 따라 "이 땅에서 인디언과 함께 살기로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토론이 끝나자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상원 의원들에게 보낸 선물이라며 학교가 제공한 빵, 과자, 콜라 등 복도에 차려진 음료수를 마시면서 웃고 떠든다. 맹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 상호 소통하는 법을 스스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 국사 시간에 "태정태세문단세"하면서 조선 시대의 왕 이름을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것이 얼마나 유익한 교육이었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본다. 어느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린애가 로비에서 막무가내로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피워 외국인들이 은근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뛰어다니면 안 되지"하고 제지했더니, 옆에 있던 부모가 "남의 애 기를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한다. 기가 찬 노릇이다.
 
한국은 아직도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범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선진 외국에서는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아기부터 엄격히 교육한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율이 몸에 배어 있다. 이것은 기본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아기부터 엄격히 교육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사진 pixabay]

선진 외국에서는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유아기부터 엄격히 교육한다. 어렸을 때부터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사진 pixabay]

 
우리는 불의에 맞서는 당당함도 부족하다. 예컨대 나쁜 사람이 노약자에게 해코지할 때 못 본 척 지나가는 것이다. 자신이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운 탓도 있겠지만, 사회적 불의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공분'이 서양처럼 확고하지 못하다.
 
30여 년 전 워싱턴의 포토맥 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뉴스를 도배한 것은 던져준 구명줄을 노약자에게 양보한 사람들, 출근길에 그 상황을 목격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조한 사람 등 자기희생을 하며 용감하게 행동한 사람들 얘기다.
 
반면 우리는 세월호 사건 때 승객을 우선 구조하고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할 선장이 본분을 잊고 가장 먼저 배를 탈출한 것을 아프게 기억한다. 심지어는 그 비극적인 배 사고를 아직도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일탈이나 비겁함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위 불의에 맞서는 '기사도(Chivalry)' 정신을 서양처럼 가르치지 않는다.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위급하면 무조건 피하라고 가르치면, 성인이 돼서도 위기에 맞서 의연히 대처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구한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서양에서는 이것이 기본이고 상식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말만 앞서고 행동하지 않는 사회에 팽배한 겉치레 풍조인 NATO(No Action Talk Only)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
 
2016년 제작된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2009년 1월 15일 탑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지만 기장의 빠른 판단력과 주변 사람들의 희생정신으로 전원 구조된 실화를 영화화했다. [영화 설리 스틸]

2016년 제작된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포스터. 2009년 1월 15일 탑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하지만 기장의 빠른 판단력과 주변 사람들의 희생정신으로 전원 구조된 실화를 영화화했다. [영화 설리 스틸]

 
매너는 부족하고 밥만 잘 먹고 살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리더가 될 수는 없다. 어떤 국가가 부강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위의 몇 가지 사례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일반적으로 부강한 나라 또는 최고의 나라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모험심, 시민의식, 기업가 정신, 문화적 수준과 전통, 기업환경, 경제 성장성, 국제적인 영향력, 자연환경, 교육, 삶의 질 등을 종합하여 평가한다.
 
이런 기준으로 다보스(Davos) 경제 포럼에서 평가한 2019년 세계 최고의 나라 1-10위는 스위스 일본 캐나다 독일 영국 스웨덴 호주 미국 노르웨이 프랑스 순이었다. 한국은 22위로 가장 취약한 분야가 모험심(63위), 문화적 수준(44위), 기업환경(39위)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군사 강국 중국과 러시아는 등위에 들지 못했다. 다른 요소가 수준 미달이라는 뜻이다.
 
경제적 풍요와 힘만 가지고는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외형적인 지표는 위와 같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요소도 함께 갖춘 명실상부 일류 국가가 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우리는 고위직 청문회에서 병역의무를 회피하고, 위장 전입 신고를 하거나 부동산 투기로 지탄을 받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직의 정신적 도덕성이 이 정도인데 품격 있는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사회나 국가의 위기에 '내가 먼저 앞장서는' 용기가 없이는 일류 국가가 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불의에 맞서는 공분, 다른 의견도 존중할 줄 아는 톨레랑스, 공중 장소에서의 행위 규범도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 그저 밥만 잘 먹고 살면 '뒤에서 손가락질받는' 품격 없는 졸부와 다름없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의 정신적인 코드가 선진화돼야 한다. 이제 이런 것을 제대로 교육하고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강정영 강정영 청강투자자문 대표 필진

[강정영의 이웃집 부자이야기] 부자는 어떤 생각과 철학, 생활방식, 자녀관을 갖고 있을까. 부를 이룬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고, 부를 오래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재벌이 아닌 평범하지만 이웃집에서 만나볼 만한 진짜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