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중 경제 19 대 14…한 쪽이 100% 완승 못해 타협 불가피

중앙선데이 2019.06.22 00:24 641호 8면 지면보기
[배명복의 사람속으로]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158, 909호 (을지로4가, 삼풍빌딩) 동아시아연구원 회의실에서 중앙일보 배명복 대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1980-2012)로 재직했으며 미국 프린스턴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신인섭 기자  2019.06,18.화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이 18일 서울 중구 을지로 158, 909호 (을지로4가, 삼풍빌딩) 동아시아연구원 회의실에서 중앙일보 배명복 대기자와 인터뷰 하고 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1980-2012)로 재직했으며 미국 프린스턴대학 국제문제연구소 초청연구원,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신인섭 기자 2019.06,18.화

미국과 중국이 전방위적으로 대립하고 충돌하면서 세계의 지각판이 흔들리고 있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는 재앙이다. 천하대세를 읽는 안목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50년 가까이 세계정세와 국제정치의 흐름에 천착해온 하영선(72)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을 지난 18일 EAI 회의실에서 만났다.
 
미·중 관계를 ‘협력적 경쟁’ 관계로 규정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협력이란 말 자체가 끼어들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어느 쪽 책임이 크다고 보나.
“어느 일방의 책임으로 몰기 어렵다. 중국은 트럼프가 지나치게 미국 우선주의로 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은 기대와 달리 시진핑이 국제질서의 기본원칙이나 가치를 공유하기보다 딴 살림을 차리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느 쪽 주장이 100% 맞다, 틀렸다고 하기 힘들다. 지금 상황은 ‘대결적 경쟁’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부당한 보복엔 WTO 통해 당당히 맞서야
 
미·중 무역전쟁은 본질적으로 패권경쟁이기 때문에 적어도 한 세대에 걸친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있다.
“그것도 굉장히 짧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대가 아니라 세기의 문제로 봐야 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미·중 관계를 바라보는 안목의 시간이나 공간 개념이 너무 짧고 협소한 느낌이다. 국내외 논의가 주로 의지하는 이론이 ‘세력 전이(power shift)’ 이론이다. 기득권 세력과 새로 부상하는 세력은 갈등 관계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이론인데, 그다지  설득력 있는 이론은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 세련된 글로벌 리더십 이론 중 하나가 ‘장주기(長週期)’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국제정치의 세력 교체 주기를 100년 정도로 본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는 25~30년 단위로 끊어 네 단계(phase)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세계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집권 세력이 등장하는 첫 단계가 지나면 도전 세력이 나타나는 두 번째 단계가 오고, 이어 도전 세력이 집권 세력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디레지티메이션(delegitimation)’ 단계가 온다. 세계 공공재보다 자신의 이익을 너무 챙기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하는 단계다.”
 
지금이 바로 그때란 뜻인가.
“그렇다. 하지만 도전 세력의 파워가 지배 세력과 정면대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이 시기에 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
 
좀 더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미·중 경쟁은 크게 네 개 전선에 걸쳐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무역전쟁 등 경제 파트, 두 번째는 기술 파트, 세 번째는 에너지 파트, 네 번째는 군사 파트다. 경제는 이미 미·중이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9대 14의 게임이 됐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100% 승리할 수 없다. 따라서 적절한 선에서 주고받는 타협이 불가피할 것이다. 군사 파트는 국방비 기준으로 7대 2의 싸움이다. 지금 중국이 미국과 군사적으로 정면대결하는 것은 자살골이나 다름없다는 걸 중국은 잘 알고 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다고 주장하는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대만이나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황이 조성될 순 있지만, 미국과의 정면대결은 피할 것이다. 남는 것은 에너지와 기술 파트다. 셰일가스 덕에 미국은 에너지 수출국이 됐다.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이 의지할 곳은 중동과 러시아다. 하지만 러시아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닌데다, 중동에선 미국이 이란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고 에너지를 미국에 의존할 순 없기 때문에 중국은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중국의 정보기술(IT) 기업인 화웨이에서 보듯이 무역전쟁은 기술 패권 싸움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미 개발된 기술의 상용화에서는 중국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따라잡았지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앞서 있다. 이 네 가지 모두 우리에겐 생사가 걸린 문제다. 각각의 전선에서 전개되는 미·중 대결 양상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모니터링 해야 하지만 정부나 학계 모두 구멍가게 수준이다.”
 
트럼프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만, 시진핑에겐 임기가 없다. 시간은 중국 편 아닌가.
“어려운 질문이다. 21세기가 여전히 미국의 세기로 남을 것이냐, 결국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냐는 문제다.”
 
중국의 세기가 될 가능성은 있나.
“21세기 중반까지는 여전히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중국에 달려 있다.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치 시스템. 21세기를 이끌어갈 정치 시스템으로 지금의 중국 시스템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2등까지 가는 데는 중국 공산당 체제가 상당히 효율적이었지만, 1등이 되려면 그것으론 부족하다. 상상력과 창발성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과연 지금의 정치 시스템으로 그게 가능할까. 두 번째는 문명 표준이다. 지구인들이 새로운 문명 표준으로 미국보다 중국 모델이 낫다는 판단을 향후 20~30년 내에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시진핑이 제시한 2050년 사회주의 문명대국 건설 정도의 비전으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악수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빠진 나라가 한국이다. 이 상황에 대처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를 점수로 평가해 달라.
“부적절한 질문이다. 문제를 풀지도 않았는데 채점을 할 순 없는 일이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과 학계, 언론 모두가 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의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의문이다. 미·중 관계는 반세기나 한 세기에 걸쳐 우리 삶의 지평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에 비한다면 남북문제는아주 작은 문제다. 눈앞의 작은 문제를 놓고 싸우느라 큰 그림을 못 보고 있다.”
 
지금의 청와대 외교안보팀과 정부의 외교·안보 진용으로는 미·중 관계의 험난한 파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다.
“누구로 바꿔도 쉽지 않은 문제다. 설사 바꾼다 해도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남북문제나 국제 문제를 보는 국내 보수나 진보의 시공간 개념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미·중 관계는 50년, 100년을 내다봐야 하는 문제다. 80년대의 국내적 시공간 개념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로 팀을 짜야 한다. 적폐청산보다 중요한 게 세대청산이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 공조에 치중한 나머지 미·중이 격돌하는 천하대세의 큰 흐름을 놓쳐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근·현대사의 비극에서 잉태된 남북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다. 그러나 긴급성이나 중대성의 우선순위로 보면 미·중 문제가 당연히 먼저다. 남북문제도 미·중 관계 속에서 풀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짜고 있다. 그사이에 낀 남북이 아무리 힘을 합쳐도 천하대세를 움직일 순 없다. ‘우리 민족끼리’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자칫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해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히는 신세가 될 수 있다.”
 
화웨이 문제를 놓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화웨이가 제2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되지 않게 하려면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화웨이는 기본적으로 사드와 같은 문제다. 국가 이익을 따져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누가 보더라도 명분이나 원칙, 규범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 같은 처지에 있는 국가들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기업들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얘긴가.
“사드 때처럼 어정쩡하게 대응해선 안 된다. 미국과 중국, 양쪽 얘기를 다 들어보고, 한쪽의 얘기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쪽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다른 한쪽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더라도 이런 원칙에 따라 우리는 이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정부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정부와 학계 모두 구멍가게 수준 대처
 
그로 인해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지 않은가.
“미·중이 싸우는 상황에서 우리 쪽에 전혀 불똥이 튀지 않을 순 없다. 일정 부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사드 때처럼 당하기만 할 게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원칙에 따라 당당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한·미 동맹에 입각해 확실하게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낫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 편을 들 것이냐, 중국 편을 들 것이냐는 수준의 담론은 20년 전 얘기다. 지금의 중국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은 확실하게 미국에 붙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큰 한국이 일본처럼 할 수는 없다. 한국이 미·중국 사이에서 정말로 고민하고, 고생하고 있다는 인식을 양쪽에 심어줘야 한다.”
 
그러다 양쪽 모두의 신뢰를 잃을 가능성은 없나.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섣불리 한쪽 편을 들기엔 우리에게 미·중 갈등은 너무나 큰 문제다. 단순히 사드와 화웨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향후 100년을 좌우할 문제다. 미·중 갈등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고도의 지혜와 현명함을 요구하는 문제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bae.myungbok@joongang.co.kr
하영선 이사장 1947년 서울 출생. 75년 서울대 외교학 석사. 79년 워싱턴대 국제정치학 박사. 80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93년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96년 서울대 미국학 연구소장. 2012년~ EAI 이사장.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