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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중앙선데이 2019.06.22 00:21 641호 29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대상을 받은 ‘증인’은 배우들의 연기나 메시지의 공감도 측면에서 관객과 평론가 모두의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특히 긴 여운을 남기는 대사가 인상적이란 반응이 적잖았다.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한다. 매일 지우의 하굣길에 찾아가 말을 걸고 지우가 좋아하는 퀴즈를 함께 풀며 환심을 사고자 노력한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던 지우도 순호를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국회는 4월 초 이후 개점휴업인데
지역은 이미 총선 후보들로 들썩
선거 때만 허리 굽히는 정치인들
유권자가 ‘증인’ 돼서 감별해 내야

하지만 어렵게 결심해 법정에 출석한 지우는 순호가 재판 승리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인다. 그렇잖아도 유일한 ‘정상인’ 친구였던 신혜의 이중적 태도에 큰 상처를 입은 터였다. 지우는 벽에 걸린 엄마 사진을 보며 말한다. “신혜는 늘 웃는 얼굴인데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늘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해요. 그런데 아저씨는 대체로 웃는 얼굴이에요.” 그러곤 잠시 말을 멈춘 뒤 떠듬떠듬 어눌한 목소리로 이렇게 되묻는다. “아저씨도 나를 이용할 겁니까.”
 
이 대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지금껏 회자되는 이유는 주위에서 이런 사람들을 너무 흔하게 봐왔기 때문일 게다. 앞에선 웃는 얼굴에 매너도 짱이지만 중요한 순간엔 인정사정없이 뒤통수를 치고,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남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자들에게 수없이 실망감을 느꼈기 때문일 게다. 겉과 속이 다른 거짓된 자들에 대한 이 같은 반감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에서 정상인도 아닌 자폐아가 불쑥 ‘좋은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지니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기 때문일 게다.
 
요즘 정치판도 지우의 대사가 오버랩되는 대표적인 곳이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는 수많은 예비후보들이 이미 전국 곳곳에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면서다. 특히 여야 모두 최소 3~6개월 당비를 낸 권리당원에게 경선 투표권을 부여하기로 하면서 후보들의 발걸음도 한층 빨라졌다. 내년 1~2월 경선에서 역산해 볼 때 7~8월까지 최대한 많은 지지 당원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질세라 현역 의원들도 지난 4월 5일 본회의 이후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를 떠나 지역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수성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인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에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것처럼 공약하는 후보들, 유권자의 충직한 공복이 되겠다며 한 번만 믿어 달라고 호소하는 후보들과 4년 만에 또다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이미 현장에선 국회의원 배지를 향한 레이스에 돌입한 지 오래다.
 
이번엔 제대로 선택할 때가 됐다. 적어도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박 사장(이선균)처럼 냄새가 선을 넘는 걸 참지 못하는 정치인은 더 이상 여의도로 보내지 말자. 이미 충분하고도 넘친다. ‘냄새 감별사’엔 ‘좋은 사람 감별사’로 맞서야 한다. 정치인 탓만 해서는 정치 난맥상이 풀리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야만 바람개비가 도는 게 아니라 바람을 만들어가야 바람개비가 빙빙 돌아가는 법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도 마찬가지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증인’이 돼서 후보들이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정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 평소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깡그리 무시해온 그들에게 이젠 이렇게 물을 때가 됐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당신도 나를 이용만 할 겁니까. 아직도 유권자가 봉으로 보입니까.”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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