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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0% 지지율에 갇힌 보수 ‘총선 필패론’

중앙일보 2019.06.21 17:00
■ “황교안, 지금까진 80점 이상” 한국당, 전통적 지지층 복원 자평
■ 중도 흡수 위해 인적쇄신 시도하면 친박 반발 부르는 안팎곱사등이

특집기획 | 총력분석
“황교안, 親朴 컨트롤할 수 있나?”

■ 반공과 성장 대체할 가치 못 찾고, 청년층의 비토정서는 갈수록 견고
■ 바른미래당과 통합, PK 표심 탈환이 관건… 친박신당설도 변수
 
황교안 전 총리는 1월 29일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 출마 선언 직후 고개를 숙였다. 그의 생각은 국민 속으로 투영될 수 있을까. / 사진:연합뉴스

황교안 전 총리는 1월 29일 자유한국당 대표 경선 출마 선언 직후 고개를 숙였다. 그의 생각은 국민 속으로 투영될 수 있을까. / 사진:연합뉴스

초심자의 행운일까. 정치권에선 “지금까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는 운이 따랐다”고 평한다. 2월 27일 당 대표에 선출된 이래 100일이 갓 지났다. 한국당 관계자는 “다 포복하고 있다”라는 싱거운 말로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황 대표가 총선 공천권을 쥐고 있기에 나오는 소리다.
 
2017년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홍준표 전 대표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의 ‘홍카레오’ 유튜브 대담에서 자기 처지를 ‘불펜투수’에 비유했다. 황교안 체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 기회가 오기 어려운 현실을 빗댄 것이다.
 
6월 첫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은 23%의 지지율을 얻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 홍준표의 득표율(24%)을 회복한 것이다. 최순실 긴급체포(2016년 11월 첫 주, 18%),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17년 3월 둘째 주, 11%), 문재인 대통령 당선(17년 5월 둘째 주, 8%), 2018년 6월 지방선거 직후(18년 6월 셋째 주 11%), 평양 3차 남북정상회담(18년 9월 셋째 주, 13%)에 이르기까지 한국당(전신 새누리당 포함)의 지지율은 그야말로 지리멸렬했다. 7%까지 떨어진 적(18년 6월 마지막 주)도 있었다.
 
그러다 미세하게 상승 추세를 그리더니, 김병준 비대위원장 체제였던 2019년 1월 마지막 주 21%를 찍었다. 그리고 2월 마지막 주 황교안 대표 체제가 들어섰다. 이후 단 한번도 20%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다수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를 상승이라 여기지 않는다. 복원이라고 해석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보수정당밖에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탄핵정국 이후) 이탈했다가 (한국당으로) 회귀하는 단계”라고 봤다. 실제 한국갤럽은 유권자 이념성향을 조사해오고 있는데, 올 5월 조사에 응한 5000명 중 스스로를 보수로 규정한 사람들은 23%로 나타났다. 그 시점의 한국당 지지도와 정확히 맞물린다.
 
문재인 정부의 방향성에 찬성하지 않는 유권자들이 바른미래당 대신 한국당으로 결집하는 과정에 황 대표 체제가 등장했다. 게다가 지난 4월 말부터 선거법 개정과 검·경 수사권을 연계한 패스트트랙 정국이 이어졌다. 황 대표와 한국당 의원들은 국회를 떠나 거리로 나가 투쟁했다. 이를 통해 한국당은 선명성을 일정하게 부각할 수 있었다.
 
황 대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성립된 패스트트랙 대치 국면으로 자연스럽게 ‘문재인 대 황교안’ 구도가 만들어졌다. 최소한 내년 4월 총선 공천까지는 황 대표 중심으로 당이 결속할 토양이 갖춰졌다. 중간변수였던 지난 4·3 재보궐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한국당 내에선 “80점 이상”이라고 평한다.
 
6월 6일, 취임 100일을 계기로 황 대표는 확장성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에세이를 출간했고,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경제대전환 특별위원회를 출범했고, “외부인재 2000명을 추천받았다”고 밝혔다. 당사자 의지와 무관하게 이국종 교수, 홍정욱 전 의원 영입설이 당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중도층·청년·여성을 챙기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反문재인의 시간이 왔음에도…
가장 이상적 시나리오는 2012년 대선 구도를 다시 만드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1:1로 맞붙는 운동장이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51.55% 대 48.02%로 문재인 후보를 이겼다.
 
역설적으로 바로 이 지점에서 황교안 체제 자유한국당의 필패론(必敗論)이 잠복해 있다. 비교적 순항하는 황 대표지만 과연 그가 보수를 통합하고, 중도 표를 끌어올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이 당 안팎에 어른거린다. 황교안 체제에서의 한국당 혁신을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일수록 그런 관점이 강하다. 이 당은 변화의 증거를 보여주기는커녕 참회조차 하지 않았다는 냉담한 평가가 뒤를 잇는다.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의 일갈이다.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으로 탄핵 당한 대통령과 정부를 이어받은 야당이기에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들이 보기에 지금의 한국당은 분명한 자기 정리를 못해내는 집단이다. 공화정의 관점에서 공공의 이익, 국민의 이익을 위한다는 확신을 못 주는 것이다.”
 
객관적 조건은 자유한국당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선거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특정 정당이 전국 선거에서 4연승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했다. 그게 2010년 지방선거부터 (민주당 우세로) 뒤집어졌다. 새누리당도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를 이기고 2016년 총선은 (민주당에) 졌다.”
 
지금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겼다. 이 ‘흐름’을 대입하면 2019년 총선은 이기기 어렵다. 이 이론이 작동하는 근원은 유권자의 견제심리다. 박 대표는 “반(反)문재인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지난 선거도 민주당을 대안세력으로 봐서가 아니라 박근혜 보수에 철퇴를 내리고 싶어서 그렇게 됐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을 혼내주고 싶은 중도보수들은 과연 황교안의 한국당이 대안인지를 놓고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가 된 反한국당 정서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6·25 서훈자’인 김원봉을 언급해 이념논쟁을 촉발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북한의 6·25 서훈자’인 김원봉을 언급해 이념논쟁을 촉발했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게다가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과거에 비해 인적쇄신이 어려운 구조다. 2016년 총선 당시 김종인 비대위 체제는 이해찬(현 민주당 대표)조차 공천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이제는 친문 색깔을 배제하기는커녕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광폭행보나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료들의 총선 차출설이 나도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정권 심판 프레임이 작동할 공간이 더 확장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경제가 어렵다. 국가적으로는 힘든 일이지만 선거공학적으론 야당에 호재다. 중도층을 리버럴, 합리적 보수 혹은 진보, 스윙보트 등으로 일컫는다. 용어야 어찌됐든 이들은 실용에 입각해 투표하는 계층이다. 노무현을 찍었다가 이명박을 찍고, 박근혜를 찍었다가 박원순을 찍는 이들이 선거의 판세를 실질적으로 결정한다.
 
20대 남성과 40~50대 남성·여성에서 여권에 등돌리는 흐름이 감지된다. 지역으로는 부산·울산·경남이 흔들린다. 민주당이 6월 5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지역으로의 공공기관 이전 같은 선심성 발언을 흘리는 것도 위기감의 표출로 해석된다.
 
그러나 박성민 대표는 “흐름은 문 대통령에게 안 좋지만 구도가 한국당에 좋지 않기에 예측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는 곧 흡수력에 관한 황 대표의 한국당을 향한 의구심이다. 김형준 교수는 아예 “이대로 가면 민주당 필승 구도”라고 단언한다. “한국당은 민주당이 불량품이니까 우리를 찍으라고 말한다. 정작 자기들이 좋은 상품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수 지지자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일 펼쳐지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경제가 내리막길인에도 아직도 국민 절반이 문재인과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니. “내 주변에 문 대통령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여론조사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수두룩하다. 보수는 어쩌면 이념적,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럴 바에야 보수가 총선에서 바닥까지 무너지는 게 중장기적으로 국가를 위해 좋다는 자조적 얘기마저 나온다. 보수가 박근혜와 완전히 결별하고 다시 시작하려면 그 정도의 충격적 와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수에는 미래를 기약할 차세대 인물군이 희소하다.
 
문 정부의 실정(失政)에도 여당이 압승하는 이례적 상황을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이 시야에 넣는 이유들이다. 뒤집어 말하면 황 대표의 의지와 역량만으로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귀결이다.
 
6월 첫 주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에 관한 평가에서 긍정과 부정 응답이 각각 46%로 팽팽히 맞섰다. 이런 대치 국면이 대략 1년간 지속되고 있다.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40% 안팎)과 정의당(7% 안팎)을 합치면 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득표율(48%)과 유사하다. 진보의 연대는 견고한 셈이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명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면 한국당은 20~25%의 박스권에 갇혀 있고, 바른미래당이 4% 안팎이다. 탄핵 때 문 정부 쪽으로 기울었다가 이탈한 중도표가 보수정당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물과 정책의 요소 너머의 문화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박성민 대표는 풀이한다.
 
“젊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셀럽, 지식인 등 소위 문화권력들이 반(反)한국당에 가깝다. 청년층에서 ‘어떻게 그런 보수를 찍느냐’는 정서가 입력돼 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기울어진 판을 어떻게 해보려는 강박증의 산물일 수 있다. 김형준 교수는 소득 최상위층에서 문재인 지지가 높은 현상도 한국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요소로 지목했다. 김 교수의 말이다.
 
“부자들은 최저임금에 별 관심이 없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긴장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강남, 송파구청장이 다 민주당으로 바뀌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보수는 대안이랄 게 없다. 한반도에 극도로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그 사람들은 더 민주당을 찍을 것이다.”
 
일련의 민심을 해석하는 잣대로 박성민 대표의 저서 [정치의 몰락]에 등장하는 ‘강남성’을 들 수 있다. 여기서의 강남은 특정지역이 아니라 동경과 선망, 세련됨의 정서를 포괄한다. 한국당은 이런 ‘강남성’이 약하다. 일본에 [어쩐지 크리스털]이라는 베스트셀러 소설이 있다. 딱 떨어지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어쩐지 좋아서 선택하는 젊은이의 감성을 터치한 작품이다. 한국당은 그런 면에서 권위적이고, 소통이 안 되는 꼰대 집단처럼 비쳐진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내년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이 낮아지리라 예상했다. 20대들은 한국당이 못하면 투표 당일 민주당을 찍지만, 민주당이 못하면 아예 기권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젊은층 중에는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한국당과 황교안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은 2020년 4월 총선의 숨은 뇌관이 될 수 있다. ‘연말이나 내년 초 만약 박근혜가 감옥에서 나온다면, 보수 빅 텐트는 물 건너간다’는 얘기가 정치권을 배회한다. 거칠게 표현하면 보수 분열의 미끼일 수 있다.
 
황 대표 자신도 ‘박근혜 변수’로부터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황 대표는 당 경선 때, 탄핵에 관한 물음에 O도 X도 아닌 △(세모)로 답했다. ‘황세모’란 부정적 뉘앙스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최순실 태블릿PC의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황 대표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연히 태블릿 PC 1심 판결을 존중한다. 당시 조작된 것처럼 비치는 발언을 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한 건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사과했다. 한편 4월 17일에는 “박 전 대통령이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계시다”는 말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을 향한 황 대표의 이런 전략적 모호함에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현실 세력인 대한애국당과 태극기부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중도보수 성향 표도 흡인해야 하는 처지가 그것이다.
 
박근혜 사면은 보수 분열 촉매제?
정치적 거리 설정에 관한 주도권은 황 대표가 아니라 박 전 대통령 측에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황 대표와 한국당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 혹은 대리인 격인 누군가가 황 대표를 ‘공개 디스’하는 상황이다. 이에 호응해 일부 친박 의원들이 대한애국당으로 들어가 TK(대구·경북)를 기반으로 삼는 ‘제2의 친박연대’를 노릴 수 있다. 황 대표가 쇄신공천의 강도를 높일수록 위기감을 느낄 친박 의원들의 저항은 거세질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영역은 계속 오그라드는 흐름이다. 2016년 1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매달 집계된 한국갤럽의 유권자 이념성향 추이를 보면 ‘진보가 한국의 주류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2016년 11월 탄핵 정국을 기점으로 보수보다 진보라고 응답한 사람이 더 많아진 ‘골든 크로스’가 발생했다. 대선이 열린 2017년 5월과 한반도 해빙 무드를 타고 지방선거가 행해진 2018년 5~6월에는 진보가 보수보다 14%나 더 많게 나타났다. 이후 그 차이는 좁혀지지만 진보의 수적 우위는 여전하다. 그리고 꾸준히 20% 후반 ~30% 초반을 유지한 중도층도 이 기간 진보세력에 동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증거가 2018년 5월 지방선거 득표율이다. 승부처로 꼽힌 서울·인천·경기·부산·울산·경남에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은 전부 52~57% 사이였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누가 나왔어도 민주당 후보가 이기는 선거”라고 정의했다. 탄핵에 공감한 사람들이 결집한 결과에 해당한다.
 
탄핵은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당은 탄핵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는 의원들과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는 의원들의 동거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만약 박근혜 탄핵의 정당성 논쟁이 가열되면 ‘문재인 심판론’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총선을 정권 평가로 가져가야 하는 야당으로서 원치 않은 구도다.
 
반면, 한국당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박 전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나를 넘고 가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쪽이다. ‘민주당이 이기는 것보단 한국당이 낫다’는 판단이라면 취할 만한 행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성향 상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예상이 우세하다. 또 박 전 대통령의 의중과 무관하게 그의 영향력 안에서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가고픈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의 등살에 박 전 대통령이 그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박 전 대통령을 따르는 세력이 한국당 안에서 힘을 받으면 정당의 득표 확장성은 물건너가고, 반대로 이들이 밖으로 뛰쳐나가면 TK(대구·경북) 등 텃밭이 쪼개진다.
 
황 대표의 선택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요인들 때문이다. 정면 돌파도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인간적 예우는 지키되 선 긋기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 집단적 정체성과 스스로 결별하기란 쉽지 않다. ‘5·18 망언’이 터졌을 당시의 다소 미온적인 징계 수위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헤게모니는 진보로 넘어갔다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동상. 한국당은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동상. 한국당은 박정희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황 대표 측은 계파를 가리지 않는 용인술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선교 사무총장, 민경욱 대변인 등 주요 당직을 친박 성향 의원들이 맡고 있다. “의도적으로 친박이라서 쓰는 것이 아니라 쓰다 보니 친박”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는 얘기도 있지만 황 대표 주변의 친박계는 갈수록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관건은 2000년 총선 공천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처럼 황교안 대표가 대대적 물갈이 공천을 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이 총재는 이기택·이수성·조순·신상우·김윤환 등 당대의 거물 인사들을 공천에서 날려버렸다. 이들이 뛰쳐나가 민국당을 만들었지만 반향은 미미했고, 이 총재의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의석 수에서 야당을 멀찌감치 앞서는 제 1당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보수층이 이 총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해야할 시점과 마주했다.
 
한국대통령학연구소 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근대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박정희를 추종하거나, 부정하거나 크게 두 부류라고 본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박정희의 안티테제였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아류였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짝퉁이었다.” 그나마 좋은 평가를 받은 쪽은 박정희를 극복하고자 한 대통령들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시효를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선거를 할수록 보수의 영역은 좁아진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2010년 이래 모든 선거에서 40대 이하 유권자들은 보수를 외면했다. 그 범위는 어느덧 50대로 확장되고 있다.
 
함성득 전 고려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에서 이렇게 썼다. “최순실 게이트의 역설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는 한국 정치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그늘 지우기에는 크게 기여할 것이다. … 박정희식 권위주의 리더십의 한계와 문제점도 민낯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박정희의 꿈 또는 망령에서 깨어나게 됐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육체적으로 죽었다. 2016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추락과 실패로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정신적으로도 죽었다.”
 
함 전 교수의 진단대로라면 보수진영은 다른 대체 가치를 찾아야 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축은 ‘반공+성장(혹은 시장)+영남’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진영은 대체재를 찾아냈다. 이 중 반공은 평화, 성장은 복지라는 대안가치를 세웠다. 그 사이 반공은 권위주의로, 성장은 친(親)재벌 양극화의 이미지로 전락했다. 영남은 노무현·문재인처럼 호남의 지지를 받는 부산 출신 후보로 상쇄했다. 나라의 주류는 이렇게 교체되고 있다.
 
보수는 있지만 보수주의는 없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3월 부산시와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졌다. PK는 내년 총선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3월 부산시와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졌다. PK는 내년 총선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저서 [보수의 재구성]에서 ‘보수는 있지만 보수주의는 없다’라고 축약했다. 박정희 패러다임 속 반공은 국가중심주의·애국주의·권위주의 색채가 강렬했다. 진보진영은 여기에 독재·수구·냉전 색깔론의 프레임을 입혔다. 1987년 체제에서 보수는 자유주의와 결합했다. 3당 합당 이후 1993년 문민정부 출범이 그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박정희식 보수의 집요한 공격에 직면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함께 정권이 진보진영으로 넘어가자 보수진영에선 박정희 신드롬은 되살아났다. 이회창·이명박·박근혜가 그 노선을 따랐다. 책의 공동저자인 권기돈 전 바른정당 법사위·환노위 수석전문위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로 복지 이슈를 선점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 경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보수는 신자유주의와 결합했다. 그러나 결과는 고용 없는 성장이었고, 2008년 금융위기로 시효를 다했다. 박 교수는 보수의 새 패러다임으로 ‘공화(共和)’의 가치를 들었다. 복지와 교육, 양성평등에 관심을 쏟는 공동체 보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서민을 위한 보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新)보수, 뉴라이트조차 식상해진 현실에서 부정적 어감만 축적되는 보수란 용어를 아예 버리고 “진보적 우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은 늘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박근혜 탄핵은 보수의 이데올로기를 바꾸라는 시대적 요구”로 규정한다. 그는 “그러나 아직도 한국당이나 한국 보수는 박정희를 넘어서지 못했다”면서 “정부 비판에 집중할 뿐 보수의 새로운 비전을 만드는 노력은 잘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그 원인을 자유한국당과 강경 지지층의 관계에서 찾고자 한다. “당이 너무 강경 지지층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다. “당이 힘들 때 지켜줬던 존재들이지만 집권을 위해 넘어서야 될 존재이기도 한데 휘둘리는 느낌이다. 황교안 자체가 박근혜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결과 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큰 유권자들이 한국당을 대안세력으로 여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당이라면 상대적으로 젊고 개방적 이미지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홍정욱 전 국회의원의 활용도나 입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수의 자기 변신(혁신) 못지않게 통합도 사활의 중요한 포인트다. 한국갤럽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총선 252지역구(무투표 당선인 통영·고성 제외) 중 68곳에서 5% 미만 득표차로 당락이 갈렸다. 전체적으로 박근혜 심판론이 강한 구도였지만 야권이 분열(민주당, 국민의당)되면서 새누리당과의 접전지역이 증가했다.
 
유권자는 총선에서 후보와 정당을 분리하는 전략적 투표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민주당 후보를 찍어도, 정당투표는 국민의당을 지지하는 식이었다. 당시 국민의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면 더 많았을 터다. 국민의당의 존재는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에 위협적이었던 게 정설이다.
 
필패론 깰 담대한 전략 있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3월 탄핵 2주년을 맞아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무효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3월 탄핵 2주년을 맞아 헌법재판소 앞에서 탄핵무효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와 반대로 지난 4월 3일 창원 성산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정의당 후보를 지원했다. 반면 한국당·바른미래당·애국당은 다 후보를 냈다. 그 결과 한국당은 정의당에 약 0.5%(500표) 차이로 패했다. 바른미래당이 3334표, 애국당이 838표를 얻었다. 이는 두 당이 당선은 못시켜도 한국당 표를 잠식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그렇기에 한국당 내부에선 바른미래당의 괴멸을 은근히 기대하는 흐름이 있다. 시간은 결국 한국당 편이라는 시각이다. 반면 “한국당이 흡수통합을 염두에 두는 한, 통합은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빅 텐트를 치려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럴 담대함을 황교안 체제가 보여줄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렇게 분석한다. “정권의 반대 입장에 서는 분들은 당 대 당 통합이든 뭐든 (보수가) 하나로 나오기를 원할 것이다. 인물에 영향 받는 대선에 비해 총선은 구도의 영향력이 더 강력하다. 바른미래당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당에 굉장히 불편한 현실로 작용하게 된다.”
 
이에 관해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무조건 통합이 보수의 정답이라고 볼 수 있는가”라며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강조한다. “보수는 보수와 경쟁해야 한다. 개혁하고 희생하고 책임지고 양보하는 과정을 통해 재건하고 대오를 갖춰야 한다. 한국당은 강성보수로 나가고 있다. 지금 한국당의 행태로 가면 30% 이상의 중도층이 갈 데가 없다.”
 
보수 통합의 또 다른 키는 TK와 PK의 동조화 여부다. 같은 영남이지만 최근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는 다른 길을 걸었다. 다만 요즘 들어선 두 지역이 비슷한 지향성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 잘한다는 비중이 27%(TK), 39%(PK)에 그쳤다. 전국적으로 긍정평가가 40% 아래 머문 지역이 바로 TK, PK 지역이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평가는 TK 64%, PK 53%를 보였다. 유이하게 50%를 상회했다. 특히 PK 민심 동향에 민주당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국 민정수석 차출론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중도보수와 보수가 동맹하고, TK와 PK가 뭉칠 수 있어야 한국당은 필패론을 벗어 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각될수록 이런 동맹과 통합 구도는 용이해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화두로 등장하면 보수 분열 구도가 심화되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자는 “보수지지자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층을 넘어 청년, 여성으로 넓히기 위한 진보 학자의 보수를 위한 조언은 음미할 만하다. “청년층의 감성적 거부감은 보수가 대안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 독일 메르켈 총리와 영국 보수당의 정책은 미래 가치에서 진보 정당의 그것과 믹스(mix)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핵심지지층이) 반대할 것 같으면 안 간다. 문재인을 반대할 뿐 참신한 무언가가 약하다. (한국 보수는) 일본 자민당처럼 당 안에 좌우 블록이 있지 못하니 인물과 이미지만 남았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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