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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댈수록 폼 안나…"트럼프, 베네수엘라에 흥미 잃었다"

중앙일보 2019.06.21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한나라 두 대통령’ 사태가 계속되는 베네수엘라가 해결 출구를 못 찾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한 난민 숫자는 400만명에 이르러 “오늘날 세계 최대의 강제이주 사태”(유엔난민기구 19일 발표)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한때 기세를 올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태 해결에 영 관심이 식은 모습이다. 일각에선 ‘외교 성공’으로 자랑할 기회를 놓친 트럼프 대통령이 아예 관심을 끄는 쪽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백악관, 과이도 군사봉기 때 잘못된 정보 기초"
트럼프 '손쉬운 외교성과' 거두려다 좌절한 듯
트윗 줄고 관심 식어…폼페이오도 '진절머리'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관심 실종’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2020년 재선 출정식에서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언급은 연설 말미에 “우리는 쿠바와 베네수엘라 국민의 자유를 향한 정당한 투쟁을 지지한다”는 언급뿐이었다. 지난 2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연설 때 트럼프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면서 "우리는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원하지만 모든 옵션이 열려 있다"고 압박했었다.
 
한때 폭풍 트윗을 쏟아내던 트위터에서도 베네수엘라는 쑥 들어갔다. 이달 초에 “러시아가 자국민 대부분을 베네수엘라에서 철수시켰다”는 트윗이 끝이다. 심지어 러시아가 이 사실을 부인한 뒤에도 더는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 마치 ‘하노이 노딜’ 이후 한동안 북한 관련 트윗이 쑥 들어간 것과 같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트럼프의 ‘무관심’은 지난 4월30일 베네수엘라 야권이 마두로 정권을 상대로 군사봉기를 시도했다 실패한 것과 맞물린다. 봉기가 막 벌어졌을 때만 해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면서 베네수엘라의 우방국 쿠바를 겨냥한 군사 압박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마두로와 그의 지지 세력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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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두로 군부 측이 등을 돌리지 않으면서 봉기는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오히려 제헌의회로부터 면책 특권까지 박탈당하는 등 코너에 몰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기세를 올렸다가 체면만 깎인 꼴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 “당시 백악관 판단은 과이도 측이 들고 일어나면 베네수엘라 고위 인사‧군부가 합세할 거라는 정보에 기반했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트럼프 정부가 과이도 측 파워를 과대평가했을 뿐 아니라 마두로 내부 정보에도 어두웠다는 얘기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정보를 전해준 측에 볼턴 보좌관 등이 ‘놀아났다’고 믿고 있다”며 "수개월째 지지부진한 상황에 트럼프가 인내도 흥미도 잃었다"고 덧붙였다. 한 전직 참모는 “식은 죽 먹기(low-hanging fruit, 손쉬운 일)로 여긴 외교 정책에서 승리하고 ‘큰 성과’로 뻐기려던 트럼프가 좌절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왼쪽)이 국방장관(왼쪽 두번째) 등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왼쪽)이 국방장관(왼쪽 두번째) 등과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두로가 물러난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란 점도 베네수엘라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 볼턴과 함께 강경 개입을 주도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베네수엘라 사태가 지독하게 복잡하다”고 토로했다. 지난 6일 WP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마두로가 언젠가는 물러날 거라 확신하지만, 문제는 ‘내가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두로 후임이 40여명”이라고 진절머리를 냈다. 폼페이오는 "내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지명됐을 때부터 (마두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 중심이었다”고도 털어놨다. 
 
이런 상황에서 과이도 의장을 비롯한 야권 측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도 벌어졌다. 19일 온라인 뉴스매체인 판암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야권 인사 2명이 콜롬비아로 망명한 군인들을 돕기 위한 국제사회의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타렉 윌리엄 사브 검찰총장은 이들이 탈영 군인들의 호텔비 등에 사용할 지원금 일부를 빼돌려 비싼 옷과 자동차 등을 사고 고급 호텔 숙박료로 탕진했다며 과이도 의장이 배후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과이도 의장은 즉시 기부금 유용 등 의혹과 관련한 국제 투명성 기구(TI)의 감사와 콜롬비아 검찰의 조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청렴한 대안' 이미지에 상처가 불가피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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