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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라드 칼럼] 시간은 결코 김정은 편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9.06.21 00:18 종합 28면 지면보기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5월 20일 노동신문 1면에는 이례적으로 편집국 특별기사가 실렸다. 적대 세력들의 ‘삼중 압력’을 받는 조선노동당의 독자적인 행보를 칭송하면서 대북제재가 ‘최악의 경제난’을 일으키려는 계략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북한 식량난이 예전과 같은 대기근을 초래할 것 같지는 않다. 유엔은 현재 북한의 식량 비축량이 최악의 기근을 겪었던 1996년의 두 배 정도 될 것으로 추측한다. 북한 하층민들은 굶주림으로 고생하겠지만, 주민들이 아사할 위기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번영을 약속하며 기대치를 높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식량 배급량은 2년 전보다 줄었다.
 

내부에선 경제 때문에 불만 고조
미국의 제재 압박은 더욱 강해져

북한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제재 완화, 지원 요청 등의 해결책을 강구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북·러 정상회담은 실질적 이득을 내지 못했다. 5월 4일과 9일에 실시된 미사일 실험은 일본이나 한국에 위협이 되지 않았고, 미국과의 대화를 끌어내지도 못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회담장으로 불러들이려 하지만 실무회담을 추진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하노이 회담의 실패를 돌이키기에 아주 늦지는 않았다는 매체의 논평, 북한이 다음 북·미 정상회담의 걸림돌로 여기는 백악관 인사들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 싱가포르 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하는 TV 방송 등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수포가 되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뒤 16주가 지나도록 북한과 미국 어느 쪽도 타협하지 않고 있다.
 
6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북한과의 회담을) 서두르지 않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대북 정책의 성공 기준이 북한의 핵실험 유무라고 사실상 선언한 셈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미국 대선 때까지 북한에서 핵실험을 진행하지 않고 북한과의 공식적인 소통이 유지되는 한, 자신의 대북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경우 대북제재는 강화되고, 중국과의 관계는 멀어지며, 미국과의 유의미한 대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욕을 갖게 하려면 김정은 위원장은 “흥미로운 대목” 이상의 것을 제시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 역시 가까운 시일 내에 성사될 확률이 희박하다. 북한은 갖가지 방법으로 대북제재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변화시키려 애썼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스웨덴에서 북한을 향해 “완전한 핵 폐기 의지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북한의 노력은 거듭 실패하는 반면, 미국은 6월 11일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재에서 허용한 석유 수입 한도를 초과했다며 유엔 안보리에 항의 서한을 제출했다. 이 서한이 받아들여지면 ‘유엔 1718 위원회’는 북한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시킬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의 불법 무역 활동 신고에 현금 500만 달러의 포상금을 내걸었다. 미국이 제시하는 상금은 통상의 대북 무역 이득보다 더 큰 액수다.
 
시진핑 주석의 평양 방문이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시 주석의 방북은 중국과 미국의 갈등 완화를 위한 것이다. 시 주석은 미·중 무역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할 만한 카드가 필요하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과 북한 관계를 중재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겠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직접 교류를 하는 상황이라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북한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북한 정권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방법들을 거듭 시도하고, 거듭 실패할 뿐이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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