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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진짜 사나이’ 계속 부르면 정말 진짜 사나이 된다

중앙일보 2019.06.21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살아있는 군가 이야기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마르세이유 시민군이 국기를 들고 진군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파리에 진격했다. 그림은 혁명 이후 1830년 7월 왕정 복고에 반대하며 봉기한 시민군의 모습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진 위키피디아]

1792년 프랑스 혁명 당시 마르세이유 시민군이 국기를 들고 진군가인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파리에 진격했다. 그림은 혁명 이후 1830년 7월 왕정 복고에 반대하며 봉기한 시민군의 모습을 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진 위키피디아]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29만 명의 노란 조끼 프랑스 시민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라며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이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그런데 취임 때 “공포와 분열에 굴복 않는다”고 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애국심을 강조하며 ‘라 마르세예즈’를 초등학생들에게 외우도록 하고 있다. 일부 교원 단체에서는 “지나친 강요”라며 반대했지만, 여론조사에서는 90%가 찬성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국가 가사를 외워 부르게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미국·중국 국가는 군가
미 해병, 해병대가에 부동자세
군가 들려주면 저절로 정신무장
멸공·아들·민족 가사는 기피

마크롱 대통령이나 이에 맞선 노란 조끼 시위대가 부른 ‘라 마르세예즈’는 처음엔 군가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생겼다. 프랑스 혁명이 나자 왕정체제를 유지하려는 주변국이 프랑스를 압박했다. 그러자 프랑스는 혁명에 간섭하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1792년 4월 25일 국경 도시 스트라부르의 시장이 프랑스 혁명군 공병 대위였던 클로드 조세프 루제 드에게 프랑스군을 격려하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루제 드 릴 대위는 그날 밤 ‘라인강의 군대를 위한 진군가’를 작곡했다. 마르세유 시민군은 이 군가를 부르며 파리로 입성했다. 그게 ‘라 마르세예즈’다. 마르세유에서 출발한 시민군이 부른 노래라는 의미다.
 
1795년 프랑스 국민회의는 이 노래가 프랑스 혁명을 지켜냈다며 정식 국가로 정했다. ‘라 마르세예즈’ 가사는 섬뜩하다. “나아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이여…피 묻은 전쟁의 깃발이 올랐다.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다…진격하자!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발을 적실 때까지.” 가사는 과격하고 폭력적이지만,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켰다.(정성엽 『군가 이야기』) 대통령과 시위대가 함께 부르는 이유다.
  
군인의 전투 의지와 국민의 단결 수단
 
1814년 9월 13일 미국 볼티모어 체사피크 만에서 영국 함대 공격을 막아낸 매킨리요새의 성조기.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의 소재가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1814년 9월 13일 미국 볼티모어 체사피크 만에서 영국 함대 공격을 막아낸 매킨리요새의 성조기. 미국 국가 ‘별이 빛나는 깃발’의 소재가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은 해군가였다. 1814년 9월 영국 함대가 미국 볼티모어 앞바다인 체서피크 만을 지키는 매킨리 요새를 공격했다. 영국의 함포 사격은 25시간이나 지속했다. 그때 영국군에 억류된 친구의 석방을 위해 영국 함정에 타고 있었던 변호사 스콧 키는 매킨리 요새가 불타 함락됐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난 새벽 요새에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였다. 미군과 민병대가 영국 함대의 공격을 막아냈고, 조국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감동한 키는 ‘매킨리 요새의 방어’라는 시를 지었다. 이후 시의 제목을 ‘별이 빛나는 깃발’로 바꿔 해군 군가로 불렀다. 1931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제의로 국가로 지정했다. 중국 국가도 1930대 초반 일제 항전 영화 ‘풍운아녀’의 주제곡인 ‘의용군 진행곡’이다. 중국 공산당은 1935년 이 곡을 국가로 제정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어…과감하게 적의 포화를 뚫고 전진하자!”
 
전쟁이란 국가 위기에는 군인은 전투에 나아가 희생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군가는 군인의 전투 의지와 국민의 단결 수단이었다. 지난해 10월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전투 추모 기념식 때 미 해병대 군가가 울렸다.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미 해병대 장성은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로 따라 불렀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미 해병 1사단이 영하 37도의 추위 속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은 대탈출작전이었다. 전우를 두고 가지 않는다는 미 해병대는 6000명에 가까운 전사·실종자를 냈다. 그 희생으로 흥남철수가 이뤄졌다. 부동자세로 해병대가를 부른 미 해병대 장성은 선배들의 희생과 명예를 기린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수난을 겪은 우리에게도 당연히 군가가 있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강제 해산하자 ‘의병창의가’와 ‘의병격중가’가 나왔다. 전 해군 정훈공보실장 정성엽(예비역 대령) 한국군가정책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곡조를 땄으니 군가답지는 않았다. 1919년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항일전선가’ ‘최후의 결전’ 등 독립군 군가가 지정됐다. 주로 일제에 뺏긴 조국을 되찾자는 내용이다. 1920년대 청산리전투를 앞두고 이범석 장군이 ‘기전사가’를 지었다.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압록강 행진곡’ ‘선봉대가’ 등도 나왔다.
 
우리 군의 본격적인 군가는 해방 이후부터다. 최초 군가는 ‘해방행진곡’이다. 초대 해군총장을 지낸 손원일 제독이 노랫말을 썼고, 부인인 홍은혜 여사가 작곡했다. “삼면의 바다, 나라의 흥망도 이곳에 있고…생명선 이 바다로, 지키자 싸우자 이바다에서”라며 충무공 정신을 강조했다. 지금 해군가인 ‘바다로 가자’도 손원일·홍은혜 작품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에도 많은 군가가 불렸다. ‘멸공돌격가’ ‘보병의 노래’ ‘비행행진곡’ ‘해병대의 노래’ 등 20곡이 넘는다. 현재 우리 군가는 300곡 정도다.
  
‘검은 베레모’ ‘행군의 아침’ 신청 많아
 
“군가는 군인정신을 집약한 것이다.” 육군 정훈장교 출신인 하두철(예비역 중령)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조직국장의 경험담이다. 그는 “‘진짜 사나이’를 계속 부르면 정말 진짜 사나이가 된다”고 했다. 군가를 통해서 정신무장이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하 국장은 “긴 행군에서 지칠 때 군가를 틀어주면 병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힘을 내고 발을 맞춘다”고 기억했다. 그래서 군가는 대부분 4/4박자로 경쾌하다. 군인을 군인답게 만든다.
 
일반 국민이 군가를 들으면 군이 지켜준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방송에서 군가를 내보내면 여성들도 ‘힘이 난다’는 메시지를 보내온다”고 말했다. 그는 국군방송FM에서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를 진행하고 있다. 군 복무 시절 힘들었지만, 그때가 건강하고 용기가 있었다는 남성들 얘기도 있다. 일반인들이 자주 신청하는 군가는 ‘검은 베레모’ ‘행군의 아침’ ‘빨간 마후라’ ‘영원한 해병대’ 등이다. 2015년 창단한 대한민국군가합창단장인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는 “군가를 부르다 보면 가사 내용에 눈물이 날 때도 있다”고 했다. 군가는 자연사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랩 스타일의 군가 등장
 
박효신이 부른 신군가 ‘나를 넘는다’ 뮤직 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박효신이 부른 신군가 ‘나를 넘는다’ 뮤직 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군가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신세대 장병에게 맞는 랩 스타일의 군가도 불린다. 가수 박진영이 노래한 ‘군진수칙’은 “어떤 군가보다 자극적이고 애국심이 생기게 한다”고 이 아나운서가 말했다. ‘나는 대한민국 군인이다…나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겠다. 나는 전력을 다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군진수칙 내용을 담고 있다. 가수 박효신이 현역 시절 부른 ‘나를 넘는다’(심재희 작사·김형석 작곡)도 가요 형식의 신세대 군가다. 듣고 있으면 어려운 군 생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고 한다. 중국도 최근 랩 스타일 군가로 모병을 독려하고 있다.
 
박효신이 부른 신군가 ‘나를 넘는다’ 뮤직 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박효신이 부른 신군가 ‘나를 넘는다’ 뮤직 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요즘 군대에선 군가를 덜 부르는 분위기다. 육군 관계자는 “지휘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과거보다 군가에 관심이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멸공’ ‘아들’ ‘민족’ 등 용어가 포함된 군가는 기피한다”고 했다. 남북관계와 성차별·다문화 가정 등 영향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군대에서 군가·함성·총성만 우렁차면 사고도 적고 전투력도 높아지는데 요즘 근대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걱정했다. 이번에 북한 어선 귀순을 놓친 것도 이처럼 군의 사기와 명예심이 떨어진 탓이 아닐까. 25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수많은 국군이 참호 속에서 군가로 두려움을 달래고 전투 의지를 다졌을 거다.
 
선호군가 12곡
1 독립군가
2 육군가
3 진짜사나이
4 용사의 다짐
5 전우
6 진군가
7 전선을 간다
8 아리랑겨레
9 최후의 5분
10 푸른소나무
11 조국을 위해
12 승리의 함성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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