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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부하 모욕, 러시아 내통 탓 줄줄이 낙마, 트럼프 인사 ‘난맥상’

중앙일보 2019.06.20 05:00
가정불화, 부하직원 모욕, 러시아 내통….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고위 인사가 제대로 임기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중도 낙마하게 된 사유들이다. 미 국방 수장인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9년 전 벌어진 가정사에 발목 잡혀 인준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결국 물러나자 그간 잇따라 좌초됐던 트럼프식 인사 시스템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역대 최장 기간 대행을 맡고 있던 섀너핸이 이날 사퇴함에 따라 미 국방 수장은 공식적 장관이 없는 상태를 무기한 더 이어가게 됐다. 섀너핸은 비군인 출신으로 트럼프의 ‘예스맨’으로 분류됐고, 청문회 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결국 인준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18일(현지시간) 가정사 문제로 결국 자진사퇴하겠단 입장을 밝힌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 [로이터=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가정사 문제로 결국 자진사퇴하겠단 입장을 밝힌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 [로이터=연합뉴스]

섀너핸 대행에 앞서 지난해 3월엔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이어 트럼프 주치의였던 해군 장성 출신 로니 잭슨이 군인 시절 하급 직원을 모욕적으로 대하고 근무 중 술을 마시는 등 음주 습관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 등에 휘말려 국가보훈처 장관 후보에서 사퇴했다. 잭슨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으로 정신 건강 테스트를 한 후 “대통령의 인지력에 문제가 없으며 건강이 아주 좋다”는 의견을 밝혀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때문에 행정 경험이 전혀 없던 그가 트럼프의 호의 때문에 지명된 것이란 지적이 일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취임 후 첫 건강검진을 마친 뒤 병원을 떠나면서 백악관 주치의 로니 잭슨 박사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소재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취임 후 첫 건강검진을 마친 뒤 병원을 떠나면서 백악관 주치의 로니 잭슨 박사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트럼프 취임 초 백악관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은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으로 인해 24일 만에 낙마한 바 있다. 트럼프는 예비역 중장 출신으로 대선 캠프에서 일찍이 자신을 지지한 플린을 인수위에 참여시켜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에 발탁했었다. 플린의 낙마에 이어 한 달도 안돼 앤드루 퍼즈더 노동장관 내정자 역시 인준 이전에 불법 가정부 고용 문제로 스스로 물러났다. 
 
그런가 하면 지난달엔 트럼프 대통령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 후보로 낙점한 허먼 케인과 스티븐 무어 등 ‘친(親) 트럼프’ 인사 두 명이 자질 논란에 따라 모두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 언론들은 후보 자질에 대한 철저한 검증보다 트럼프 자신과의 친분이나 선호도에 의존하는 트럼프식 인사 난맥상을 드러냈단 비판을 쏟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의 텅 빈 내각’(Trump’s empty Cabinet)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패트릭 섀너핸의 퇴진은 행정부의 텅 빈 고위직을 부각한다”고 지적했다. 섀너핸 등 조기 낙마한 이들을 거론하며 “공통되는 맥락이 있다면, 정부 경험 여부와 관계없이 본능에 따라 많은 고위직 임명자를 뽑는 경향이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것이고, 백악관의 조사 검증 또한 전혀 철저하지 않다는 점”이라고도 썼다.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층에는 대통령의 첫 번째나 두 번째 선택도 아닌 그 모든 옵션이 사라진 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년여 전 트위터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한 직후 “이제 내가 원하는 내각을 구성하는 데 거의 근접했다”며 내각 개편에 낙관적으로 앞서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대신 트럼프 내각은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해 채워지거나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는 인물로 채워졌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AP=연합뉴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AP=연합뉴스]

실제 차기 비서실장으로 지명이 유력했던 닉 에이어스 전 부통령 비서실장 인선이 틀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메도우스 공화당 하원의원과 크리스 크리스티 전 뉴저지 주지사 등을 물망에 올려놓고 후보로 검토했다. 그러나 이들 카드 모두가 무산되자 결국 대행을 맡은 믹 멀베이니를 정식 비서실장으로 임명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 바 있다. 유엔대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연말 사임한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 후임으로 트럼프는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을 지명했지만 나워트가 내정자 신분서 물러나겠단 뜻을 밝히면서 지난달 켈리 크래프트 캐나다 주재 대사를 유엔 주재 미 대사로 공식 지명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레온 파테나 전 국방장관의 비서실장을 지낸 제러미 배시는 폴리티코에 “대부분 내각 인사 임기가 짧다는 걸 고려했을 때 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계 경험이 없는 트럼프가 비전통적 방식으로 인사를 등용하면서 위험을 가중하고 있다”라고도 우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내각 구성이 즉흥적인 경영 방식에 따른 결과라는 얘기다.
 
그간 반기를 드는 이들에 숙청 수준의 대대적 물갈이를 하고 정부 수장을 대행체제로 연명해온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EPA=연합뉴스]

트럼프는 대행체제를 고수하는 것과 관련, 올 초 “내가 임명한 대행들은 일을 정말 대단히 잘한다”며 “나는 대행을 좋아한다. 대행일 때 이동시키기가 더 쉽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안전성을 위해 중요한 자리엔 의회 승인 등을 받은 인사를 앉혀야 한다”고 우려한다. 앞서 워싱턴포스트는 “공무를 우습게 아는 대통령에 의해 대행체제가 남용되고 있다”며 “부처의 정책 결정력 및 리더십을 마비시키고 조직 수장의 권위를 대내외적으로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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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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