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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시장·군수 가까운 이장·면장이 보조금 심사…‘거수기’ 우려

중앙일보 2019.06.20 01:30 종합 4면 지면보기
 
#1. 15명으로 구성된 경상남도 창원시의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는 지난해 단 한 차례만 대면회의를 열었다. 나머지 일곱 차례는 모두 서면회의로 대체했다. 공모사업 보조사업자 선정은 물론 지방보조금 관련 조례를 개정하는 심의 역시 서면으로 대체했다. 창원시의 지난해 지방보조금은 1660억원(예산 기준), 국고보조금은 5700억원이었다. 김우겸 창원시의회 의원은 “위원회가 형식적이고 졸속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조금심의 위원 3092명 직업 분석
지역 단체장 등 지역 유지 20.8%
명확한 선정 기준 없이 형식적 운영
창원시, 지난해 딱 1번 대면 회의
전문가 풀 구성한 서울시 모델 주목
행안부, 지방재정법 위반 지적 논란

 
4월 12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 많은 지자체가 국고보조금 개편을 요구하지만 정작 지방바조금심의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중앙포토]

4월 12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총회. 많은 지자체가 국고보조금 개편을 요구하지만 정작 지방바조금심의위원회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 [중앙포토]

 
#2. A기초단체는 군수와 같은 정당 소속인 도당 부위원장이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간위원 11명 역시 대부분 소위 ‘지역 유지’다. 전 군의원, 전 새마을회장, 전 이장·면장, 전·현직 새마을부녀회장 등이다. B기초단체는 15명까지 둘 수 있는 심의위원이 단 7명뿐이다. 위원장은 전직 공무원이고, 현직 공무원을 제외한 민간위원 4명에는 자영업자 3명이 포함돼 있다.

 
지방보조금 예산을 편성하고 보조사업을 선정·심의하는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이하 보조금위원회)의 실상이다. 기초단체별로 15명 미만의 심의위원이 한 해 수백, 수천 개의 안건을 처리한다. 또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나 지방자치단체장과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들이 자리를 차지한 곳이 대부분이다. ‘거수기 위원회’일 수 있다는 의미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국 243곳 광역·기초단체의 보조금위원회 위원 수는 3574명이다(4월 8일 기준). '탐사하다 by 중앙일보'가 이들의 직업을 분석했다. ‘풀(pool)’을 구성해 보조금위원회를 운영하는 서울시는 분석에서 제외했다. 심의 때마다 참석하는 위원들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분석 대상 3092명 중 현직 공무원(698명, 22.6%)을 제외하면 지역의 단체장이나 협회장 등 소위 ‘지역 유지’로 불리는 이들이 643명(20.8%)으로 가장 많았다.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이가 적지 않았다. 다음은 대학교수로 529명(17.1%)이다. 전직 공무원은 254명(8.2%)이다. 세무·회계사는 168명(5.4%), 변호·법무사는 100명(3.2%)이었다. 시민단체 관계는 79명(2.6%), 전 기초의원은 76명(2.5%)이었다. 보조금의 수혜 대상자인 어린이집 원장도 17명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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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보조금위원회 운영은 각 지자체의 행정사무 감사 때 지적을 받는 단골 메뉴다. 대부분 지자체의 조례에는 ‘지방보조금의 운용 및 관련 분야에 전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을 민간위원으로 위촉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많은 기초단체가 전문성이 부족한 지역 인사들을 명확한 선정 기준도 없이 위촉해 형식적으로 운영한다.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대학 하나 없는 농촌에서 전문가를 모시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며 “15명 이내 위원들이 수백 건의 보조사업을 심의해야 하는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 관계자는 “보조사업이 너무 많다 보니 관리·감시는커녕 지방회계시스템(e-호조)이나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에 보조금을 정산하는 일에도 행정력이 달릴 지경”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15명 이내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500명에 가까운 전문가 '풀(pool)'로 구성된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 [중앙포토]

서울시는 15명 이내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500명에 가까운 전문가 '풀(pool)'로 구성된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 [중앙포토]

 
이런 점에서 서울시 모델이 주목받는다. 서울시는 지난해 조례를 바꿔 482명의 보조금심의위원을 위촉했다. 김형근 서울시 보조금관리팀장은 “15명으로 방대한 서울시의 보조사업을 심의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실질적인 심의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 풀을 구성했고 안건마다 적합한 전문가를 불러 심의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위원회 구성을 바꿀지 고민 중이다. 법 위반이라는 행정안전부의 지적 때문이다. 지방재정법은 ‘지방보조금심의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지방행정 전문가는 “보조금이 몇백억 되지 않는 시골 지자체도 15명으로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서울시나 광역시 같은 대도시의 보조금위원회 수를 15명으로 못 박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중앙정부가 지방분권·재정분권을 통제하고 방해하는 전형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