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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하다

“복지비 더 달라” 시너 협박···광주 북구청 씁쓸한 비상벨

중앙일보 2019.06.20 01:30 종합 5면 지면보기
 
‘긴급 상황 시 비상 버튼을 누르십시오’.
 
광주광역시 북구청 복지과 직원들 책상 밑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비상벨이 달려 있다(사진 참조). 벨을 누르면 청원경찰이나 인근 경찰이 출동한다. 복지 관련 일부 민원인의 폭언·폭행이 잇따르면서 올 초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최웅철 북구청 총무계장은 “복지보조금을 더 내놓으라며 휴지통에 소변을 보거나 시너를 가지고 와 위협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올 초 광주광역시 북구청은 복지과 직원들 책상 밑에 비상벨을 설치했다. 복지 관련 민원인들의 잦은 폭행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광주북구청 제공]

올 초 광주광역시 북구청은 복지과 직원들 책상 밑에 비상벨을 설치했다. 복지 관련 민원인들의 잦은 폭행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광주북구청 제공]

 
광주시 북구는 지난해 말 기준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69.9%로 제주특별자치도와 세종특별자치시를 포함한 전국 228곳 기초자치단체(이하 기초단체) 중 가장 높다. 예산이 100원이면 70원가량은 복지비로 나간다는 얘기다. 문인 북구청장은 “복지비 부담이 크게 늘면서 예산이 없어 구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다른 사업은 손도 못 댄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의 자체사업(지역 개발을 위해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예산) 비중은 9.4%로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낮다.
 
급증하는 복지 보조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아우성이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확산하고 있다. 세수 변화는 거의 없는데 의무적으로 분담해야 하는 복지 분야 국고보조사업이 급증하면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실제로 국고보조금에서 ‘복지 편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에 따르면 2015년 전체 국고보조금에서 복지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47.8%(27조9100억원)였다. 올해는 59.2%(46조1000억원)로 급등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파르게 올랐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대비 올해 전체 국고보조금은 18조2000억원 늘었는데 같은 기간 복지 보조금은 15조5000억원 증가했다. 국고보조금 증가분 대부분이 복지 분야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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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새 복지 보조금이 50% 넘게 증가하는 동안 과학기술 분야 보조금은 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물류 분야 역시 7% 줄었다. 일반·지방행정 분야는 1% 감소했고, 문화·관광과 환경 분야는 각각 1.8%, 4.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올해 예정된 국고보조사업은 1900여 개. 이 중 보조금 규모가 큰 상위 5개 사업이 모두 복지 분야다. ▶기초연금(11조4900억원) ▶의료급여(6조3900억원) ▶기초생활보장(3조7500억원) ▶영유아보육(3조4100억원) ▶아동수당(2조1600억원)이다. 전체 국고보조금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규모가 큰 상위 20개 사업으로 넓히면 14개가 복지사업이다.
 
괴로운 것은 지자체다. 국고보조사업은 개별 사업별로 중앙정부의 보조율이 정해지면 나머지 예산은 지자체가 의무적으로 부담하는 구조다. 더욱이 복지 분야 국고보조사업은 대통령 공약 등에 따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윤영진 계명대 명예교수는 “중앙정부 복지 프로그램이 지방정부의 복지 재정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의사 결정권은 갖지 못하면서 부담만 안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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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자체 부담만 증가한 것은 아니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사회 복지로 100원이 지출될 때 중앙정부 54원, 시·도 20원, 시·군·구는 26원 정도를 분담한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은 “복지나 일자리 분야의 지방비 부담이 절대적으로 증가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중앙정부의 재정 부담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복지 수요는 많은데 재정이 열악한 지역이다. 광역시 소재 기초단체가 특히 그렇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전국 기초단체는 지난해 전체 예산 중 평균 35%를 사회복지 분야에 지출했다. 반면 6대 광역시 소재 기초단체 44곳의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평균 56.7%였다. 광주시 북구(69.9%), 부산시 북구(69.6%), 대구시 달서구(65.1%), 부산시 해운대구(64.4%) 등이 특히 높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렇다고 이들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 국고보조금이 많은 것도 아니다. 본지 분석 결과 지난 2년간 44개 광역시 소재 기초단체 주민이 받은 국고보조금은 한 사람당 평균 62만원으로 전국 평균(74만원)에 못 미쳤다. 인구는 많은데 자체 세원(구세)은 없고,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국고 보조 복지사업 비용이 많으니 다른 분야의 국고 보조 사업을 따낼 엄두를 못 내서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추진하는 자체 사업은 더더욱 하기 어렵다. 지난해 광주시 동구의 자체사업 비중은 8.2%, 대전시 중구와 부산시 북구는 각각 8.5%, 9.1%에 그쳤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무원 인건비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행정 경비를 고려하면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 기초단체의 평균 자체사업 비중은 27.2%였다.
 
전문가들은 복지 분야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책임과 권한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성은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복지 부분은 국고보조율 개편과 국고보조사업의 기능 이양이라는 두 가치 방향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원 부경대 행정학과 교수는 “차등 보조율 등을 조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분권 차원에서 복지 등 국고보조사업의 상당수를 국가사업으로 전환하는 등 큰 틀에서 국고보조금을 개편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문현경 기자 pin21@joong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