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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9시간 근무, 상사 괴롭힘에 극단선택 30대...7%만 산재 인정

중앙일보 2019.06.20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주당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어서면 우울증 발생률이 14% 올라가고 한국ㆍ일본ㆍ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위험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중앙포토]

주당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어서면 우울증 발생률이 14% 올라가고 한국ㆍ일본ㆍ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위험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사와 관계 없는 사진입니다. [중앙포토]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25>
 

연장근무, 직장내 괴롭힘, 폭언
유가족이 직접 피해 입증해야
"전문기관에 맡기는 방안 마련을"

유명 교육 스타트업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했던 장모(36)씨는 1년 넘게 주 69시간의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다. 회사는 포괄임금 계약을 내세워 휴일ㆍ야간 근무를 강요했다. 며칠 밤을 새워 끝낸 디자인 작업을 대표 한마디에 처음부터 다시 하는 일이 빈번했다. 직장 상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도 당했다. 채식주의자인 장씨에게 “고기를 먹어야 머리가 돌아간다”며 육식을 강요하거나, 주말에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는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지시에 시달렸다. 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던 장씨는 지난해 1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리나라 자살자 가운데 33.9%(4231명)는 장씨와 같은 근로자이지만 산업재해(산재)로 인정받는 사례는 연간 29명(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인아 한양대의대 교수(직업환경의학교실)는 19일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 자살예방포럼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일하는 사람들의 자살 현황 및 예방을 위한 제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는 근로자가 자살하면 가정불화나 경제적인 문제 등 개인적인 원인에만 집중한다. 한데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 감정노동 등으로 업무 스트레스가 목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는 이른바 ‘과로 자살’인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로는 장시간 노동뿐 아니라 주말 근무, 직장 내 괴롭힘, 상사의 폭언 등 업무의 양뿐 아니라 질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35개국 18만9729명의 근로자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보면 주당 근로시간이 55시간을 넘어서면 우울증 발생률이 14% 올라간다. 특히 한국ㆍ일본ㆍ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위험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국내 전체 자살자 수보다 산재 신청률이 극히 낮다”고 말했다. 2017년 전체 자살 사망자는 1만2463명이고 이중 근로자는 4231명이다. 하지만 산재 신청자는 59명에 그쳤고, 인정을 받은 건 29명(49.2%)이다. 
 
현행법상 과로자살이 산재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에 한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숨진 장씨의 언니 장향미(40)씨는 동생이 과도한 업무 때문에 숨졌다는 걸 인정받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장씨는 이날 포럼에서 “업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산재 인정을 받는데 과로자살은 유가족이 모든걸 직접 입증해야 하고 자료를 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이 숨진 뒤 동생의 직장동료들을 만나 증언을 부탁하고, 회사에 근무기록과 업무내역을 요청하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재직 중인 동료 직원들은 증언을 거부하기 일쑤였고, 회사는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힘들게 산재 신청을 했지만, 결정이 언제 나올지 기약이 없다.  
 
그는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면 회사를 그만두지 그랬냐'고 쉽게 말하지만 과로 자살자들은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정신 상태가 악화된 상태에서 죽음에 내몰리게 되는 것"이라며 "동생이 나약해서 죽음을 택한게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양두석 가천대 교수(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는 “피해를 입은 유가족에게 입증 책임을 물리는 건 가혹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며 “과로 자살 입증 의무를 기업과 전문기관에 맡기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양대 김 교수는 “일본은 과로사방지법을 제정하고 일 때문에 생기는 정신질환이나 자살을 예방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라며 “우리도 산업안전보건법에 회사가 과로, 직장내 괴롭힘, 감정 노동 등 위험 요인에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주승용 국회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바른미래당)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긴 노동시간과 높은 업무 강도로 번아웃 증후군, 가족과 단절 등을 겪는 근로자들의 정신건강을 살피는 사회 안전망을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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