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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⑧

중앙일보 2019.06.20 00:12 종합 27면 지면보기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지금까지 문학과 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계속 마셔대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술고래들이 과연 어떤 말로를 걸었는지, 또 어떤 수준의 작품을 남겼는지 한 번 냉정하게 살펴보십시오.… 타인에게 고용되어 밤낮없이 일하고, 대인관계의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인생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생명의 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를 구가하면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창조의 길을 돌진하려는 이에게는 청산가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 마루야마 겐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중에서
 
 
애주가라면 은근히 기분 나쁠 수 있다. 나의 풍류인 술을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의 살기 위한 몸부림’ 쯤으로 깎아내리니 말이다(TV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직장인 회식 장면을 떠올린다면 그리 과장도 아니다). 그러나 겐지가 진짜 겨냥하는 것은 술로 재능을 탕진하는 것을 예술가연 하는 어떤 풍토다. 올해 76세의 노작가인 그는 일절 문단과 교류하지 않고 집필에만 전념해온 은둔의 작가다. 그에게 소설은 구도의 길이다. 정신과 육체를 갈아 바치는 ‘피땀눈물’이다. 그의 문학론이 너무 고전적으로 들리는가. 그러나 “땀으로 씻어낸 다음에 남는 것, 땀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쓸 가치 있는 주제”라는 말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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