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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다원화된 사회의 시작

중앙일보 2019.06.20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20여 년 전, 미국에 대학원 진학을 했을 때다. 첫 학기 ‘출산력 분석’이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다. 당시 필자는 사회학을 전공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듣고 싶은 수업은 석사과정 첫 학기 학생이 꼭 들어야 하는 강의들과 시간이 겹쳐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그냥 신청했던 과목이 ‘출산력 분석(fertility analysis)’이었다.
 

90년대 중후반 우리 첫째 출산은
25~26세에 정점 찍고 이후 급락
최근 한국도 ‘연령봉우리’ 사라져
출산추이도 다양성이 더 큰 이득

199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는 가족계획도 그만두고 인구현상에 대한 관심이 요즘 말로 ‘1도 없던’ 때였다. 당연히 한국의 사회학도 학부과정에서 인구니 출산이니 하는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출산력 분석 수업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었던 게 당연했고, 첫 수업에서 나의 눈은 흐리멍덩해 보였을 터였다. 그래서인지 교수님의 첫 질문이 나에게 주어졌다.
 
“학생은 어느 나라에서 왔나?” 거의 딴 짓을 하고 있는 나는 깜짝 놀라 떠듬떠듬 “한국입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교수님은 나에게 매우 큰 흥미를 보이시더니 강의를 위해 한아름 들고 오셨던 자료를 뒤적이고는 종이 두 장을 찾아 나와 동료들에게 보여주셨다. 한 장은 1990년 한국의 연령별 출산율 그래프였고 다른 한 장은 1995년 미국의 연령별 출산율 그래프였다. 연령별 출산율은 어느 연령에 여성들이 주로 자녀를 출산하는지 연령 분포를 나타낸다. 그 때까지 출산력 분석이라는 수업에 관심도 기대도 거의 없던 나는 교수님이 보여 주신 두 장의 그래프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구학의 ‘인’자도 모르던 내가 인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순간이었다.
 
1990년 우리나라 여성들의 첫째 자녀 출산은 25세~26세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연령대를 지나면 급속하게 떨어졌다. 그래프가 20대 초반까지 매우 낮다가 25세~26세에 쭉 올라가 매우 높고 뾰족한 봉우리를 만들었고 27세를 지나면서 급속하게 떨어졌다. 반면 미국의 1995년 그래프는 꼭지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20대 초반부터 점차 올라가서 20대 중반, 후반, 심지어 30대에도 출산율이 급속히 낮아지지 않았다. 즉 1990년대에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여성이 20대 중반에 첫째 자녀를 낳았던 반면 미국은 특별히 첫째 아이를 낳는 특정 연령이 없었던 것이다.
 
교수님은 두 그래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셨다. 한국의 연령별 출산율 그래프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모습인데, 출산의 연령이 25~26세에 몰려 있다는 것은 혼인 및 출산과 관련하여 사회에 매우 강력한 연령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가 없는데, 최소한 혼인과 출산에 있어 연령규범은 없다는 것이다.
 
강력한 연령 규범이 있다는 것은 같은 연령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여기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안하게 느끼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더더욱 연령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연령규범이 없는 사회는 뭔가 매우 복잡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사회에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이렇게 설명하시면서 교수님은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다양성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니, 한국의 강력한 연령규범이 좀 유연화 되면 사회도 따라서 발전해 있을 것이다.” 당시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그래프 하나에 덧붙여진 사회적 해석이 멋져 보여 인구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17년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가 약 35만 명으로 급락 했다며 난리법석이 났던 때였고, 기회가 되어 어린이집 교사 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많이 줄어서 운영이 어려우신가요, 아니면 아이들이 줄어 오히려 한명, 한명 보살피기가 편하신가요’ 라며 문답을 주고 받을 때였다. ‘아이의 수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학부모의 연령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소통 방식 고민을 많이 해야 해요.’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20여년 전 교수님께서 하시던 말씀도 생각이나, 강연이 끝나자마자 통계를 찾아보았다. 놀라웠다. 29세, 30세, 31세 연령의 봉우리를 찾기가 어려울 뿐 더러, 40세 이상에서도 첫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가 그 동안 출산율과 아이의 수에 집중을 하는 동안 연령 곡선은 내가 20여년 전에는 미국 사회로 알고 있었던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모두 다 비슷한 연령에 혼인을 하고 출산을 하는 나라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궤적이 같은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궤적이 어우러진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다양성이 높아지면 사회에는 갈등이 심화되기도 하고 갈등의 종류도 다양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성이 높아진 열려있는 사회가 가져올 이득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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